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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버섯은 인간이 교란한 숲에 산다 - <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움트 칭, 노고운 역, 현실문화
길찾기91
2023. 9. 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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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버섯은 인간이 교란한 숲에 산다
1945년에 히로시마가 원자폭탄으로 파괴됐을 때, 폭탄 맞은 풍경 속에서 처음 등장한 생물이 송이버섯이었다고 한다.
원자폭탄을 손에 넣은 것은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인간의 꿈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 꿈은 무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폭탄으로 상황은 달라졌다. 갑자기 우리는 인간이 의도했든 아니든 지구의 거주 적합성을 파괴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오염, 대멸종, 기후변화에 대해 알아갈수록 이러한 인식은 더욱 커졌다. 현재의 불안정성 중 그 절반은 지구의 숙명에 관한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종류의 인간에 의한 교란을 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 지속가능성이 이야기되고는 있지만, 우리가 다종의 후손들에게 거주할 만한 환경을 물려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히로시마에 떨어진 폭탄은 현존하는 불안정성의 나머지 절반 즉 전후 발전의 놀라운 모순을 생각하게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개발한 원자폭탄은 근대화의 증거로 여겨졌다. 따라서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누구든지 그 혜택을 누릴 터였다. 미래의 방향은 익히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러한가? 한편으로는 전후 개발 기구를 통해 구축된 글로벌 정치경제가 세계 곳곳에 손을 뻗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계속 발전될 것이라고 약속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 수단을 잃어버린 것 같다. 공산주의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 모두 근대화를 통해 일자리를, 그것도 그냥 아무 일자리가 아니라 안정적인 임금과 혜택을 제공하는 '표준 고용'을 제공할 거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 일자리는 이제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은 훨씬 더 비정규적인 생계 수단에 의존한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자본주의에 의존하고 있지만 거의 어느 누구도 이전에 '정규직'이라 불리던 직업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불안정성과 함께 살아가려면 우리를 이런 처지에 빠뜨린 자들을 탓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그러는 것이 유용해 보이고, 나 또한 그렇게 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며 이 이상한 신세계에 주목하고, 상상력을 펼쳐 이 세계의 윤곽을 감지해야 한다. 이때 버섯이 도움을 준다. 폭탄 맞은 풍경 속에서도 기꺼이 나타나고자 하는 송이버섯 덕택에 이제 우리는 함께 사는 집인 이 폐허를 탐색할 수 있다.
송이버섯은 인간이 교란한 숲에 산다. 쥐, 너구리, 바퀴벌레처럼 송이버섯도 인간이 만든 환경 문제의 일부를 기꺼이 참아주고 있다. 하지만 송이버섯은 유해 생물이 아니다. 송이버섯은 귀한 고급 식재료이며, 적어도 일본에서는 높은 가격 때문에 종종 지구상 가장 귀한 버섯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송이버섯은 나무에 영양분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척박한 땅에서도 숲이 조성될 수 있도록 돕는다. 송이버섯을 따라가다 보면 환경 교란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우게 된다. 이것이 환경을 더 훼손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여하간 송이버섯은 협력적 생존의 한가지 방식을 보여준다.
송이버섯은 글로벌 정치경제의 균열도 분명히 보여준다. 지난 30년간 송이버섯은 북반구 전역의 숲에서 채집되어 신선한 상태로 일본에 배송되면서 글로벌 상품이 되었다. 많은 송이버섯 채집인은 삶의 터전과 선거권을 빼앗긴 문화적 소수자다. 예컨대 미국 태평양 연안 북서부에 거주하는 가장 상업적인 송이버섯 채집인들은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 이주해온 난민이다. 송이버섯은 가격이 높기 때문에 어디에서 채집되든 생계에 큰 도움이 되며, 문화 회생을 촉진하기도 한다.
그러나 송이버섯 상업은 20세기식 발전의 꿈으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나와 이야기를 나눈 버섯 채집인 대부분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등 끔찍한 일을 경험했다. 생계를 이어갈 다른 방도가 없는 이들에게 상업적 채집은 근근이 살아가는 방식보다 더 나은 방법이다. 하지만 이는 어떤 종류의 경제인가? 송이버섯 채집은 자영업이며, 채집인을 고용하는 회사는 없다. 임금이나 혜택도 없으며, 채집인은 그저 자기가 찾은 버섯을 팔 뿐이다. 버섯이 나지 않는 해도 있는데, 그런 시기에 채집인은 경비손해에 더해 수입도 없다. 상업적 야생 버섯 채집은 사회보장이 제공되지 않는 불안정한 생계의 한 예다.
<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움트 칭, 노고운 역, 현실문화, 2023, 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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