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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 없는 세상으로 가는 길 - <기후변화는 어떻게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가> 폴 길딩

길찾기91 2023. 9. 3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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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 없는 세상으로 가는 길

 

부가 증대되면서 빈곤 퇴치 운동에 대한 도덕적 의무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캠페인의 정당성은 강화되었다. 전 세계가 경제 성장을 거듭하며 충분히 나눌 것이 생겼다는 의미였다. 예를 들어, 우리는 전 세계 인구에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칼로리를 생산할 수 있다. 물, 에너지, 그 외 다른 자원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보면 경제성장은 마치 그 누구도 극도의 빈곤을 겪을 필요가 없는 풍요로운 세상을 보장하는 묘안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14억 인구가 1달러 25센트보다 적은 돈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극빈층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오래전부터 경제성장과 세계시장이 빈곤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주장해왔다. 물론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특히 중국과 인도의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며 빈곤에서 벗어나게 된 수백만 국민은 세계시장에서 새로운 중산층으로 부상했다. 그결과 중국과 서구의 소득 격차가 크게 줄었으며, 중국의 1인당 GDP는 1978년 대비 2004년에 무려 7배 증가했다. 이 기간 동안 중국은 선진국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이와 같은 성공 사례가 있는 반면 실패 사례도 많다. 2002년 유엔개발계획은 지금의 속도로 세계경제가 성장한다고 가정할 때 기아를 퇴치하기까지 무려 130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았다. 또한 발전의 정도에 있어서도 국가별 격차가 컸다. 서구권 국가 경제는 1980년대에서 1990년대를 거치며 꾸준히 성장한 반면, 같은 시기 경제성장을 이뤄낸 개발도상국은 20개국에 불과했다. 그 밖의 40여 개국은 짧게는 15년 정도의 경기 침체기를 겪거나 1인당 국민 소득이 감소하는 현상을 겪었다.

이렇게 이룬 경제적 성과가 적하 효과로 이어지며 낙후 부문에 돌아간 혜택이 분명 있지만, 여전히 많은 비중의 부는 상류층의 소유로 남아 있다. 2000년 기준으로 볼 때, 전 세계 인구 중 최상위 부유층 1퍼센트가 전 세계 자산의 40퍼센트를, 상위 10퍼센트가 전 세계 자산의 85퍼센트를 차지한 반면, 하위 50퍼센트에 속한 이들의 자산은 전 세계 부의 1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소득 측면에서 역시 상위 20퍼센트가 전체 소득의 74퍼센트를 차지하며 부의 편중 현상이 나타났다. 일부 국가에서 이 같은 현상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펼쳐졌으나 전반적인 추세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1950년에는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의 평균 소득이 북아메리카나 호주·뉴질랜드에 사는 사람들의 평균 소득보다 11배 낮았
으나, 2000년이 되자 그 격차는 19배로 벌어지고 말았다. 지난 50년간 부는 이론에서 예측하듯 위에서 아래로 흘러넘치기는커녕 되레 중력을 거슬러 위로 올라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현상을 단순히 불평등과 불공정의 문제로 치부하고 끝내기에 가난은 너무 혹독하고 고통스럽다. 유니세프가 내놓은 2001년 자료에 따르면 에티오피아의 다섯 살 미만 아동 중 51퍼센트가 만성 영양실조로 발육 부진을 겪고 있다. 이처럼 안타까운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경제성장 덕에 나타난 긍정적인 변화들도 물론 있으나 안타깝게도 그런 성과만으로 현실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전 세계적으로 늘어난 부의 양이 막대한 반면 빈곤 실태는 이토록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시 앞으로 130년을 기다려야 기아를 없앨 수 있다는 예측에 부끄러움이 앞선다. 부자가 더 부유해지고 남은 잉여 자산이 빈곤층으로 흘러내려 가 이들을 극빈으로부터 구제한다는 기본 생각부터가 도덕성과는 거리가 멀다. 에티오피아에서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는 아이를 둔 엄마에게 이런 논리를 설명해야 한다고 상상해보라.
지난 수십 년 동안 빈곤과 관련해 논란이 된 주제들은 무척 다양하다. 예를 들어, 빈곤이 본질적으로 안고 있는 부도덕성, 개혁을 추진하는 시장과 성장의 힘, 부의 공정한 분배 방식, 빈곤국들이 개방적인 시장경제를 갖춰야 할 필요성 등이 모두 논란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아무런 득도 없는 이런 논란을 멈추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기후변화는 어떻게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가> 폴 길딩, 더블북, 2023, 396-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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