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이야기
오염된 지하수처럼 스며든 비극 - <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 올든 워커
길찾기91
2024. 4. 2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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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된 지하수처럼 스며든 비극
섬유 제조 중심지를 안내해 줄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하자마자 수자타 시바그나남Sujatha Sivagnanam이라는 인권 저널리스트가 연락해 왔다. 그는 티루푸르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인 코임바토르 출신으로, 티루푸르에서 수년간 살고 일하면서 풍부한 인맥을 보유하고 있었다. 수자타의 안내는 인도 니트웨어의 수도로 가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동력이었다.
2022년 5월의 따뜻한 봄날 저녁 티루푸르에 도착했을 때, 섬유 공장들이 급격한 면화 가격 인상에 저항하기 위해 집단으로 사업장 폐쇄를 고려 중이라는 패션업계 전문 매체의 보도를 접했다. 의류 공장들은 생산 제품 변경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전 세계시장은 대부분 합성섬유 제품을 요구하고, 우리는 이와 관련해 구매자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제품 다변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가 한 달쯤 전에 인도 신문 《파이낸셜 익스프레스Financial Express》에 이렇게 말했다. 역사 깊은 일반 면직물보다 기능성 섬유가 훨씬 더 수지가 맞는 투자다. 그들은 미국 섬유 회사 밀리켄이 50년 전에 확인했던 교훈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았다. 티루푸르까지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수자타는 전화 통화를 했고, 긴 근무 시간을 마치고 퇴근하는 한 의류 노동자의 집을 방문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34세의 릴라바티는 통통하고 둥근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방에 모인 다른 네 명의 의류 노동자처럼 그 역시 작은 금귀걸이와 화려한 사리를 착용하고 있었다. 다른 식구들이 오가며 바로 옆에 자리한 부엌의 가스레인지에서 끓고 있는 저녁 식사를 살펴보았고, 매콤한 음식 냄새가 대기 중에 가득했다. 수자타의 통역 도움을 받아 나는 이들에게 건강이 괜찮은지 질문했다. 한 여성은 하루 종일 재봉틀에 앉아 있으면 다리와 허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재봉틀을 돌리려고 페달을 밟는 다리 말고 다른 쪽 다리는 마비될 정도로 저려서 아들이 매일 밤 혈액 순환을 위해 마사지를 해 준다고 했다.
피로 문제도 등장했다. 일반적으로 12시간 교대 근무를 해야 값싼 옷을 만드는 공장의 탐욕스러운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 통근시간에 가족을 위해 식탁을 차리는 시간까지 더하면 여성 의류 노동자의 매일 밤 수면 시간이라고는 4~5시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2018년 인도의 건강 설문조사에 따르면, 시골에서 일하는 비농업 분야 근로자 중 83퍼센트는 건강보험이 없다. 공장주들은 정기 건강검진 의무를 피하려고 정규직 채용을 20명 이하로 유지하며, 노동자들을 여러 공장으로 돌려 가며 일을 시킨다고 지역사회 보건 의사가 연구자들에게 말했다.
몇몇 사람이 분명하게 지적한 것처럼, 건강 문제의 많은 부분은 영양실조, 긴 근무 시간, 예방 치료 부족, 열악한 생활 조건 등과 분리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연구를 통해 의류 공장 노동자들이 겪는 독특한 질병을 확인할 수 있다. 비정상적인 폐 기능, 천식, 울혈을 비롯한 호흡기 문제가 가장 흔한 증상이었다. 2021년 티루푸르에서 진행된 연구는 면직기에서 나오는 미세 먼지가 어떻게 노동자들의 코와 폐에 들어가 기관지염과 체중 감소를 일으키는지 설명했다. 계속 콧물이 흐르고 덥기 때문에 공장 안에서 마스크를착용할 수가 없다. “마을에 있는 1차 보건소에 가면 동력 직조기 작업자를 위한 특별한 약이 있습니다." 이 지역의 25세 남성 노동자가 말했다.
미국 연구자들은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확인했다. 길이가 짧은 섬유로 합성 벨벳을 만드는 공장 노동자들 사이에서 미세 섬유 때문에 일종의 간질성폐질환이 발생했는데, 이 폐질환이 폐암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증거가 등장한 것이다.
수자타와 나는 의류 노동자 출신의 노동조합 간사인 G. 삼파스Sampath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면직물을 재봉해 티셔츠나 반바지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만성 천식을 얻었다. 아직도 집 안을 빗자루로 쓸 때면 머리를 창밖으로 내밀어 자주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셔야 한다고 했다. 대부분이 남성인 염색 공장 노동자들이 느끼는 공포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다. 2019년 몇몇 노동자가 지시에 따라 지하 염료 폐기물 저장 탱크에 들어갔다가 유독 가스에 질식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또 다른 지역 활동가는 염색 공장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염료 작업 때문에 손과 팔뚝 피부가 번들거리고 여기저기 갈라져서 고생한다고 알려 주었다.
이 산업의 비애는 지하수에 스며든 염료처럼 티루푸르 사회에 스며들었다. 20년 전, 이 지역 출신의 소설가인 수브랍하라티 마니안Subrabharathi Manian은 피부병에 걸린 염색 공장 노동자의 이야기를 썼다. 남편의 모습을 견디지 못한 아내는 그와 가까이하길 거부했다. 모욕을 느낀 남편은 아내를 강간하고 아내는 자살한다. 1999년 타밀나두 정부로부터 최우수상을 받은 소설의 줄거리다.
고통받는 것은 염색 공장 노동자만이 아니었다. 연구에 따르면 기계를 조작하는 의류 노동자들은 피부병, 심혈관 질환, 위통, 설사를 앓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건강 문제가 작업장 대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 연기, 분사물, 증기의 화학적 위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의류 노동자들에게 피부 문제에 대해 물었더니, 릴라바티가 타밀어로 뭐라 외치며 자신의 팔에 난 흉터를 보여 주었다. 그런 다음 다리를 보여 주려고 청록색과 금색의 폴리에스테르 사리를 끌어올렸다. 아직 남아 있는 물집을 보니 숨이 막혔다. 사리 밖으로 드러난 팔은 바느질 일을 그만둔 직후에 좋아졌지만, 다리는 어떤 이유에선지 회복이 더뎠다. 어쩌면 찌는 듯한 인도의 더위 속에서 형형색색의 폴리에스테르 사리가 매일 다리에 닿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 올든 워커, 부키, 2024, 23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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