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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하듯” 사람을 죽이는 수사 - <그것은 쿠데타였다> 이성윤, 오마이북

길찾기91 2024. 5. 2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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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하듯” 사람을 죽이는 수사

 

윤석열은 여주지청장 시절이던 2013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수사라는 게 초기에 사태를 장악해야 한다. 표범이 사냥하듯 수사해야 한다"라고 수사를 사냥에 비유해서 공개적으로 발언한 일이 있다. 그는 평소에도 "사냥하듯” 표적을 수사하라는 비유를 즐겨 사용한다.

 

‘수사는 사냥이다'라고 할 때, 검찰이 어떻게 수사를 하는지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언론보도 등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요즘은 초등학생이 울기만 해도 "압수수색 들어온다“라고 하면 뚝 그친다는 유행어가 시중에 돌 정도다. 그 만큼 압수수색이 많고 또 강압적이라는 뜻이리라.

 

압수수색이 언론에 지나치게 자주 보도되면서 그 폐해도 심각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2019년 3월 시작한 사법농단 재판을 지금도 받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이 2021년 4월 자신이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는 재판정에서 "한 언론이 실시간으로 중계방송한다고 할 정도로 수사상황이 쉬지 않고 보도되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모든 정보가 왜곡되고 결론이 마구 재단되어 일반 사회에서는 직무수행 과정에서 상당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젖어 들게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이는 '윤석열 사단'의 수사방식을 지적한 것이라 짐작된다.

 

이른바 '윤석열 사단' 검사들은 민생 사건보다는 기획·표적·보복 수사에 집중한다는 비판이 많다. 사람을 살리는 수사가 아니라 죽이는 수사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윤석열 정부의 경찰도 예외가 아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골목의 압사사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마약사범을 잡으려고 경찰을 동원하느라 교통정리 인력을 배치하지 못한 인재였다는 지적이 나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에서 일반 대중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다 보니 좀 더 자극적인 이슈를 필요로 한다. 연예인과 마약은 과거부터 정치검사들도 선호하는 조합이고 단골메뉴다. 그들은 이윽고 연예인을 끌어들여 불리한 상황을 전환시킨다.

 

배우 이선균의 죽음이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 윤석열의 배우자인 김건희의 디올백 수수 현장이 찍힌 영상이 보도되고 주가조작 사건을 특검으로 수사하라는 여론이 들끓자 유권자의 관심을 돌릴 만한 흥밋거리가 필요했을 거라는 짐작이 나만의 심증일까. 영화 <기생충>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이선균이 마약수사의 제물이 되어 언론의 '조리돌림'을 당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비보를 접하고 나는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그리하여 2023년 12월 27일은 내게 몹시도 아픈 날이 되었다. 그는 세 차례나 약물검사에서 음성판정을 받았음에도 포토라인에 반복적으로 세워져 징역보다 치명적인 '명예상실의 형벌'을 받았다. 재판도 없이 회복 불가능한 처벌부터 받은 셈이다.

 

불현듯 윤석열 전 총장과 그 사단의 수사에 치를 떨던 순간이 내 눈앞에 스쳤다. 검찰은 유사 이래 처음으로 현직 서울중앙지검장인 나를 기소했다. 또 내가 이임한 이후에 또 다른 사건 수사를 핑계로 서울중앙지검 입구에 나를 세웠다. 나는 기관장으로 재직하던 바로 그 건물 현관에서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언론을 동원한 망신주기'를 당해본 나는 이선균 사건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다.

 

권력 기관에 패거리 문화가 자리잡으면 법과 원칙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정치적 결정을 하는 등 엉뚱한 생각에 빠지게 되므로 견제와 균형에 따른 결정을 할 수 없다. 패거리 문화에 휩쓸리는 자들은 피의사실공표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다. 이러한 불법적 관행부터 없애는 것이 개혁의 시작이 될 것이다.

 

<그것은 쿠데타였다> 이성윤, 오마이북, 2024, 12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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