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연구·정책경험 겸비한 대북 전문가, 이종석 국정원장 후보자 프로필 및 경력
이종석 사회과학 연구원, 전 장관
출생 1958년, 경기 남양주시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 박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 석사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
2013.01.~한반도 평화포럼 공동대표
2007.08.~남북정상회담 자문위원단
2006.02.~2006.12.제32대 통일부 장관
2006.02.~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
2003.03.~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
2003.~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분과 위원
2001.05.~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제1분과 정치행정 위원
2000.~남북정상회담 대통령 특별수행원
국방부 국방정책자문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1994.09.~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국회 정보위원회가 23일 이종석 국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국회 정보위는 이날 국회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여야 합의로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의 건을 의결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첫 사례다.
신성범 정보위원장은 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을 언급하며 "북한의 반응도 향후 한반도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에서 조속한 국정원장 임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보고서 채택을 통해 국정원이 본연의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여야 간 인식이 있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국회 정보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박선원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에 더해 미국의 이란에 대한 직접 타격과 참전이 경제 분야에서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북한도 핵무기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것이 미칠 동북아 정세 영향을 고려했을 때 아직 이재명 정부에서 안보팀 장관 인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국정원장마저 공석이어선 안 된다는 큰 결단을 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자는 모든 면에서 적격 판정을 받았다"며 "이 순간부터 국정원은 정상적으로 기능함으로써 우리 안보의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서 역할하게 됐다"고 했다.
국회 정보위 국민의힘 간사 이성권 의원은 "국민의힘은 (이 후보자가) 국정원장으로서의 인식에 있어 북한 친화적 인식을 가진 게 아니냐는 우려를 했다"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군 파병이 이뤄지는 시점이기 때문에 국가 안보 수장을 공백으로 남겨놓는 건 여야를 떠나 국익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보고서 채택에 협조했다"고 언급했다. - 아시아경제 2025.6.23.
- 17일 이성권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통일부는 이 의원이 요청한 이 후보자의 방북 기록에 대해 “후보자가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아 제출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답했다. 통일부가 이 후보자의 방북 내역과 방북 목적, 결과보고서 등을 확인하기 위해선 이 후보자의 개인정보가 필요하다.
이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과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대북통(通)’이다. 세종연구소에서 일하던 2000년에는 6·15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이후 2021년 5월 19대 대선 경선 레이스를 앞두고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전국 지지 모임인 ‘민주평화광장’의 공동대표를 맡았고, 정책 자문그룹인 ‘세상을 바꾸는 정책 2022’ 공동대표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20대 대선에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선거대책위 평화번영위원장을 맡아 외교안보통일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지난 4일 이 후보자를 국정원장에 지명하며 “특히 경색된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열 전략을 펼칠 인사”라고 소개했다.
이성권 의원은 “과거 대북 협상을 위해 수차례 방북했고, 본인이 2018년에도 수차례 다녀온 사실을 공개했는데 정작 국회의 자료 제출에 비협조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2018년 12월 경기도가 주최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중심, 경기도 평화토론회’에서 “학자 시절에 7~8번 북한을 방문했고, 2007년에 마지막으로 평양에 다녀왔다”며 “이후 11년 만에 (2018년에만) 세 곳을 갔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개성의 남북연락공동사무소 개소식(9월), 평양에서 열린 10·4 공동 선언 11주년 공동 행사(10월), 금강산 관광 20주년 남북 공동 행사(11월)를 위해 북한을 찾았다고 밝혔다. 이어 11년 만에 평양을 다녀온 소감에 대해 “평양은 여전히 선전 도시이지만, 표정도 많이 살아있고 많이 달라졌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후보자는 통일부 장관 재직시기 등을 비롯해 2018년까지 남북공식 행사 참석을 위해 여러 차례 방북했다”며 “국회가 직접 요청하면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19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열린다. - 중앙일보 2025.6.17.
- 이재명 정부의 초대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약 40년간 북한의 정치와 남북관계 등을 연구해온 베테랑 대북 전문가다.
이재명 대통령은 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정원장 후보자로 이 전 장관을 지명했다. 이 대통령은 "이 후보자는 국정원의 정보 수집 능력을 강화하고 정보 전달체계를 혁신했던 경험으로 통상 파고 속 국익을 지켜낼 적임자"라면서 "전문성을 토대로 경색되어 있는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열 전략을 펼칠 인사"라고 밝혔다.
이 후보자는 1977년 서울 용산고를 졸업했다. 성균관대 행정학과에 입학한 그는 1984년 학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정치학과에 입학하며 북한 연구를 본격화했다. 그는 북한에 대한 내재적·비판적 접근을 강조하며 북한·남북관계·북중관계를 연구했다.
이 후보자는 1994년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 연구위원을 맡아 북한의 정치와 남북관계를 집중 연구했다. 이때 대북 포용 정책을 본격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을 맡으며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 설계에 기여했다.
햇볕정책은 남북한의 긴장관계를 완화하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대북 포용정책을 말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6월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할 때 '대통령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3월 NSC 사무차장으로 임명됐으며 2006년 2월 통일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겨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실세'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여파로 그해 12월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세종연구소에서 수석연구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공직을 맡지 않다가 약 19년 만에 정부 당국자로 복귀하게 됐다. 이번 대선에선 글로벌책임강국위원회의 좌장을 맡았으며 그간 이재명 대통령의 통일·외교 노선 수립에 깊이 관여해왔다. - 머니투데이 2025.6.4.
- 이재명 정부의 첫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 문제에 있어 연구와 정책 실무를 모두 경험한 베테랑 대북전문가다.
참여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과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며 외교안보라인의 실세로 평가됐지만,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여파로 그해 12월 통일부 장관에서 사임했다.
이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공직을 맡지 않다가 이번에 19년만에 정부 당국자로 복귀하는 것이다.
연구자 시절 노동당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북한연구 1세대'로 노동신문 전문을 하루도 빠짐없이 꼼꼼히 읽고 분석한 것으로 유명하다. 세종연구소에 재직하던 2000년에는 6·15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대통령실은 이 후보자 지명을 발표하며 "NSC를 책임지며 국정원의 정보 수집 능력 강화하고 정보전달 체계를 혁신했던 경험을 토대로 통상 파고 속 국익을 지킬 적임자"라며 "전문성을 토대로 경색되어 있는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열 전략을 펼칠 인사"라고 기대했다.
▲ 경기 남양주(67) ▲ 성균관대 행정학과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남북관계연구실장 ▲ 연세대 석좌교수 ▲ 중국 베이징대 객좌교수 ▲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 제32대 통일부 장관▲ NSC 상임위원장 ▲ 민주평화광장 공동대표. - 연합뉴스 2025.6.4.
- 1958년 5월 11일, 경기도 양주군에서 출생했다.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 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78학번) 졸업 후 금성사(現 LG전자)에 취직하여 2년 반 동안 재직했다. 금성사에 재직 중, 공부에 대한 흥미가 생겨 퇴사해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서 장을병 교수를 사사하여 <북한 지도집단의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연구>, <조선노동당의 지도사상과 구조변화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각각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종석은 이미 대학원생 시절에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논문이 포함될 정도로 북한 연구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김일성 가짜설을 반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1994년부터 세종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북한학 연구에 나섰으며, 특히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꾸준히 주장하면서 햇볕정책의 당위성을 옹호하는 대표적 인물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2000년 국민의 정부의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수행원의 일원에 포함되기도 했다.
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에서 외교안보분야의 실력자로 급부상하였다.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외교통일안보 분과 인수위원에 포함된 것을 시작으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의 사무차장으로 재직했다. 외견상으로는 NSC의 2인자였지만, 실제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안보정책의 수립, 집행을 실질적으로 설계 및 주도한 주역이었다는 것이 대내외의 중론. 평화번영 정책, 균형적 신용외교, 협력적 자주국방 등 외교안보 분야 큰 그림을 그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라크 전쟁 추가 파병 규모를 3,000명 이내로 제한, 대북 포용정책의 옹호, 수평적 한미관계에 입각한 대미 자주외교 등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서 논란의 한가운데에 위치했으며, '자주파 대 동맹파'에서 자주파의 간판주자로 알려져 왔다. 참여정부에서는 실체가 없는 구도라고 반박했지만, 대부분의 언론에선 믿지 않는다(...). 실제 양쪽이 반목했었다는 얘기는 이런저런 소스들을 통해 제법 나온 편. 대략 소속을 통해 나눌 수 있는데, 당시 이종석을 위시해서 북한학자 출신으로 청와대 NSC에 등용된 외교 안보 라인이 자주파, 윤영관 교수를 비롯한 국제정치학자 출신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장관 등을 위시한 친미성향의 외교부 관료들이 동맹파로 분류되었다. 때문에 보수 진영에서는 '대표적인 친북/반미인사'라는 비난의 표적이 되어왔다. 아무튼 파병 규모까지 최종 확정된 후 노무현 대통령은 "파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신중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갖춘 관료의 중요성을 절감하였다."며,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이 아니었으면, 이라크 파병 규모를 3,000명으로 줄이지 못했을 것이라는 소회를 밝힌 바 있다. 당시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관료들은 7,000명 규모를 지지했는데, 개인 성향대로라면, 파병을 반대했을 사람(이종석)이 미국 측 관리들과 적극 협상에 나서 파병 규모를 3,000명으로 줄이는 데 애썼다는 것. 이 파병 규모 협상으로 노 전 대통령의 큰 신뢰를 얻은 이종석은 2006년에 통일부장관으로 중용되어 대북정책을 관장하게 되었다. 1958년생이니 50세도 안 된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장관이 되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2005년, BDA(Banco Delta Asia:방코 델타 아시아) 제재라는 역대 제일 수준의 대북(對北) 제재를 실시하자[4], 북한은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이듬해(2006년) 6자회담을 깨트리고 동년 7월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를 포함한 미사일 7발을 발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어 10월에는 첫 핵실험을 강행하는 초강수를 두며 미국을 압박한다. 이 북한 핵실험으로, 우리나라가 한반도 내에서 유지하고 있는 군사적인 우위구도에 변화가 생기면서, "남-북 경제협력(개성공단) 자금이 북핵개발자금으로 전용되었다."는 보수 층의 거센 비난의 화살이 이종석 당시 통일부장관에게 쏟아졌다. 결국 그 해 12월,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의미로 외교부장관, 국방부장관 등과 함께 교체되어 공직에서 물러난다.
이후 세종연구소로 복귀하여 연구활동에 전념했으며, 그 외에도 북한 문제에 대해 언론에 글을 기고하거나 인터뷰, 조언을 구하는 정치인들에게 자문을 하는 모습이 종종 언론에 보도되었다. 2021년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외곽조직인 "민주평화광장"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여기에는 우희종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와 황석영 소설가, 곽노현 전 서울특별시교육감, 하승창 전 청와대 사회혁신수석 등이 발기인으로 참석했다.
2021년 4월,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권은 한미 동맹 강화를 축으로 중국을 포함한 다자간 협력을 추구하는 자세를 취한다"며, "물론 어떠한 경우에도 한미 동맹이 기초가 되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동시에 현실 외교는 국익 관점에서 동맹과 다자간협력 밸런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한중 관계는 예를 들자면 캐나다와 미국의 관계와 닮아있다. 대립할 수 없는 지리적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저서로는 『제재 속의 북한 경제』(2019,공저), 『Peace on a Knife’s Edge』 (2018), 『북한-중국 국경: 역사와 현황』(2017), 『칼날위의 평화: 노무현시대 통일외교안보비망록』(2014), 『통일을 보는 눈』(2012), 『한반도평화통일론』(2012), 『북한의 역사 2: 1960∼1994』(2011), 『새로 쓴 현대북한의 이해』(2000), 『북한 - 중국관계: 1945∼2000』(2000), 『분단시대의 통일학』(1998), 『현대북한의 이해』(1995), 『조선로동당연구』(1995) 등이 있다.
2025년 6월 4일 이재명 정부의 초대 국가정보원장으로 지명됐다. -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