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민주동문회 성명서]
서울 한복판 이태원에서 벌어진 세월호보다 더한 참사, 국가가 책임져라!
- 축제의 현장을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만든 자 누구인가?
지난 10월 29일 서울 이태원 골목길에서 158명이 사망하고 196명이 부상을 당하는 최악의 압사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핼러윈데이를 즐기기 위해 주말에 몰려나온 인파로 꽉 찬 좁고 경사진 골목길에서 사람들이 넘어지면서 엉키고 눌려 초대형 참사가 발생한 것입니다.
구조대와 시민들이 깔린 사람들을 빼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사람들이 서로 엉키고 눌려 있어서 즉시 구조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1시간 넘게 지속되었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 이들이 의식을 잃으면서 사고 현장에서 사망 판정을 받은 사람이 45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2014년 진도 해상에서 세월호가 바다로 가라앉는 것을 구조하지 않고 지켜보던 이 나라에서, 또 다시 어처구니 없는 참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그것도 주말을 즐기러 나온 인파로 가득 찬 수도 서울의 시내 한복판에서 말입니다.
304명의 승객들이 구조되지 못하고 가라앉는 세월호를 지켜보는 것도 엄청난 충격이었지만,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압사당하는 것을 지켜보았을 사람들이 느꼈을 충격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된 사진과 동영상들을 통해 참사의 현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참혹함에 오열을 참을 수 없는데...
그런데 이러한 참혹한 죽음 앞에서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재난을 막았어야 할 위정자들은 무책임한 변명과 책임 회피로 일관하면서,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웃으며 농담을 던지는 국무총리와 '웃기고 있네'라는 대통령실 수석을 보며, 뻔뻔함을 넘어 국민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위정자들의 인간성마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고 후 드러나고 있는 당시 상황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8년이 지났지만 재난에 대한 국가의 위기관리체계는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이태원에는 핼러윈기간에 엄청난 인파가 몰렸었고 코로나 이후 재개된, 마스크 없이 처음 열리는 축제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재난관리의 법적 책임을 진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용산구는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참사가 발생하기 약 4시간 전인 저녁 6시 34분부터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시민들의 신고가 112신고센터에 10건도 넘게 접수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찰 수뇌부는 5시간이 지나서야 관련 보고를 받는 등, 경찰 지휘본부가 사실상 마비된 상태였고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 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더 많은 인파가 몰리는 집회나 시위도 아무런 사고 없이 안전하고 질서 있게 수없이 열리는 이 나라에서, 축제의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도대체 왜 일어난 것일까요?
반드시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여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행정 담당자들에게 확실하게 책임을 물어야합니다.
바둑에서는 대국을 치룬 뒤, 첫 돌부터 마지막 돌까지 하나하나 다시 두어보면서 검토하는 복기 과정을 통해 잘못된 부분이나 실수를 분석하고 검토합니다. 다음 대국을 위해 지난 과오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번 참사가 일어난 여러 가지 상황을 복기하고 또 복기하며 되짚어봐야 합니다. 어떤 부분이 잘못되어 이런 참혹한 사고가 발생했는지 국가의 시스템을 살피고 정비하여,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민주당 정부의 실패 이후, 정치권에만 맡겨둬서는 우리 사회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이번 참사에서는, 처리과정을 똑바로 지켜보면서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위정자들에게 분노하여 의견을 표명하고 광장에서 촛불을 드는 집회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참사의 반복을 막기 위한 대책을 세우는 과정에 시민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그들이 무엇을 해주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우리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바꿔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인 축제 현장에서 벌어진 이번 참사에서는 20대 희생자들이 105명으로 가장 많습니다. 10대 때 세월호의 아픔을 겪었던 청년들이 20대에 또 다시 이런 엄청난 참사의 충격으로 슬퍼하면서 국가에 대한 희망을 잃고 암담해할 것을 생각하니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청년 여러분,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접고 체념하며 '나의 안전과 생명은 내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길로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무능한 정치권과 부패한 기성세대를 용서하지 말고, 공동체를 바꾸기 위해 연대하고 행동하십시오.
우리가 지금 누리는 민주주의는 군사독재정권의 군홧발을 뚫고 청년들이 앞장서서 싸우며 이룩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을 요구합니다.
- 참사의 원인과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책임자를 확실하게 처벌하라
- 참사현장에서 고군분투한 경찰과 소방대원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국가 재난의 지휘본부인 국무총리,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청장, 그리고 직무태만, 무대책으로 참사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서울시장, 용산구청장에게 책임을 물어라
- 국회는 이번 참사에 대해 국정조사를 즉각 실시하고, 특검으로 철저하게 수사하라
- 이러한 참사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충분한 시간을 들여 국가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빈틈없이 세워라
- 참사 피해자, 유가족뿐 아니라, 참사 현장에 있었거나, 미디어를 통해 참사 현장을 목격하고 트라우마 증상을 겪는 모든 사람들에게 국가는 적극적으로 트라우마 치료를 제공하라
2022년 11월 17일
서울대학교 민주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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