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만 교장의 노무현이야기] 룰라 대통령 - “Give me a cigarette!”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한국에서도 꽤 인기가 많은 진보적인 정치인이다. 룰라는 ‘낡은 브라질’을 개혁하는데 성공, 국민지지도가 70~80%에 달할 정도로 절대적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브라질은 신흥경제강국인 브릭스(BRICs) 국가로 남미 경제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다. 남미시장 개척을 해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브라질과의 경협 확대가 필수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룰라 대통령을 만나러 갔다. 2004년 11월 브라질 대통령궁. 두 정상 모두 밑바닥에서부터 산전수전 다 겪고 대통령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기(氣)가 펄펄 넘치는 지도자였다.
노무현과 룰라. 보좌관과 수행원을 배석 한 채 확대정상회담을 했다. 주요 의제는 경제협력이었고, 핵심 현안은 통상문제였다.
두 정상은 자국의 국익 앞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회담 초기부터 은근하게 긴장감이 흘렀다. 외교적 수사(修辭)가 소리 없는 총알처럼 교환되었다. 팽팽한 ‘샅바 싸움’이었다.
룰라가 선제공격을 했다. “한국의 쇠고기 값이 너무 비싸다”며 한국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브라질산 쇠고기 수입을 늘려달라는 ‘압박’이었다. 노무현이 특유의 순발력을 발휘하여 대응했다. “우리는 비싼 쌀, 비싼 쇠고기를 먹는 나라입니다. 그런 만큼 사람도 비싸게 대접받으려고 합니다.” 엄숙하기만 하던 회담장에 폭소가 터졌다.
룰라가 갑자기 시가(궐련)를 집어 들었다. 엄숙해야 할 정상회담장에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자기나라에서 아무리 인기가 높고, 자신이 애연가라 할지라도 공식적인 정상회담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외교적으로 큰 결례였다. 룰라는 뭔가 불편한 심기를 그렇게 노출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노무현으로서는 분위기 반전이 필요했다. 이역만리 브라질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 그것은 시쳇말로 ‘같이 망가지는 것’이었다. 좋은 말로 친구처럼 어깨동무하는 것이다. 노무현이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했다. 통역을 거치지 않고 투박한 영어실력으로 룰라에게 직접 말했다. “Give me a cigarette(시가 한 대 주시오)!” 한 살 차이로 동갑내기 격인 두 정상은 창졸지간에 ‘담배 친구’가 되어 맞담배를 피우면서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노무현과 룰라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진기한 정상회담이었다. 두 정상 모두 서민출신이어서 가능한, 서민적인 풍경이었다.
‘맞담배 정상회담’, 그것은 외교사에 남을 만한 수준의 파격이었다. 두 정상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화기애애하게 회담을 진행했고, 서로 많은 성과를 얻었다. 흡족한 회담이었다.
노 대통령은 각종 사업 제안마다 브라질 측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이 번에 너무 많은 선물을 받아서 이를 가져가려면 비행기가 뜰지 모르겠다."고 말해 회담장에 다시 폭소가 터졌다.
노무현은 종종 담배를 피웠지만, 공식 석상에서는 한 번도 담배를 피운 적이 없었다. 룰라와의 정상회담 때 말고는.
페드로 파울로 아숨프상 주한 브라질 대사가 이날의 ‘맞담배 정상회담’에 대해 특별 브리핑을 했다.
“룰라 대통령이 담배를 꺼내들고 불을 붙였다. 외교 관례상 회담장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아 자리에 있던 보좌진들이 크게 당황했다. 그러자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Give me a cigarette!’라고 말씀 했고, 두 대통령의 담배연기와 함께 양국 사이에 있던 걸림돌이 모두 사라졌다.”
아숨프상 대사는 정상들이 직접 대면해서 하는 외교의 효과가 어떻게 극대화되는지를 노 대통령과 룰라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사례로 들어 설명했다. 이 ‘사건’은 당시 브라질 언론에 공개되어, 브라질 국민들에게 알려지면서 한국과 브라질의 관계가 한층 가까워졌다는 것이 브라질 대사의 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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