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철 전 국회의원
소속 국민의힘
-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졸업
-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 학사 졸업
- 광주 제일고등학교 졸업
- 2020.04.~2020.05.미래통합당 당대표 권한대행
- 2020.02.~2020.05.미래통합당 원내대표
- 2019.12.~자유한국당 원내대표
- 2016.06.~2018.05.제20대 대한민국 국회 전반기 부의장
- 2016.05.~2020.05.제20대 국회의원
- 2012.05.~2014.07.새누리당 최고위원
- 2012.05.~2016.05.제19대 국회의원
- 2010.12.~2011.05.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
- 2010.06.~한나라당 경기도당 위원장
- 2009.05.~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 2008.08.~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
- 2008.08.~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위원
- 2008.05.~2012.05.제18대 국회의원
- 2007.09.~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
-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위원
-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 본부장
- 국회 전략기획위원회 위원장
-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 2004.05.~2008.05.제17대 국회의원
- 국회 장애인특별위원회 간사
-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 한나라당 운영위원회 위원
- 한나라당 제3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
- 한나라당 대외협력위원회 위원장
- 국무총리 공적자금특별위원회 위원
- 국무총리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위원
- 2000.05.~2004.05.제16대 국회의원
- 1980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되었고, 당시 '서울의 봄' 정국에서 신군부에 맞서 계엄해제를 요구하는 학생운동 세력의 대표인물로 떠올랐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앞에는 서울대, 고려대 등 전국 18개 대학에서 온 학생 10만 명이 모여 계엄해제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하였는데, 심재철은 이때 대학 총학생회장단 대표를 맡았다. 해가 저물면서 시위대는 철야농성을 하느냐, 아니면 자진해산을 하느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 신계륜은 철야농성을 주장했지만, 심재철은 서울대 학생처장 이수성의 권유에 따라 자진해산을 주장했고, 결국 10만 시위대는 자진 해산하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서울역 회군이다.
- 2019년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TV 방송에 출연하여 서울의 봄 당시를 이야기 했는데, 심재철이 당시의 진술서 전문을 공개하며 본인 뿐만 아닌 당시 사건에 연루된 여러 인물들이 민주화 인사들을 실토하여 목에 칼을 겨눈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유시민은 누구도 심재철의 당시 신군부의 합동수사본부의 조사 진술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임이 분명했기에)에 대해 비판하지 않았는데, 배신자 프레임을 받아 많이 억울한 것 같다고 말했고, 심 의원과 서울대 77학번 동기인 유기홍 전 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나도 합수부로 끌려갔지만, 당시 비공개 지도부 '무림'의 일원이었던 내 신분은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유시민은 모든 일을 밖으로 드러나 있던 공개 지도부로 돌리고 비공개 지도부를 성공적으로 지켜냈다"며 심 의원을 비판했다.
- 건국절을 주장했다. 그 이유로 "국가가 성립하려면 영토와 국민과 주권, 그리고 전 세계적인 인정, 유엔의 인정 이 같은 4가지 요건이 결합해야만 한다"며 "임시정부는 임시정부였을 뿐"이라면서 당시는 "엄연히 일제 치하, 국토를 빼앗기고 주권이 없는 상태였지 않은가"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건국절 제정은 "대한민국이 식민지에서 벗어나 국민 투표라는 합법적인 과정을 거쳐 세운 바로 근대국가라는 생일을 올바르게 세우자는 그런 취지"라는 말도 덧붙였다.
-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특위’(불법 사찰 국정조사)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14개월 동안 단 1차례도 회의를 열지 않고 방치하면서 월 600만 원씩 1년간 받았다고 한겨레신문이 2013년 8월에 보도했다. 민간인사찰특위는 6개월 정도의 활동시한을 정한 다른 특위와 달리 ‘본회의 의결 때까지 활동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하지만 정치 공세가 반복되면서 단 한 번도 열리지 못했던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당시 심 위원장은 "저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확실히 지켰고 18대와 19대 국회에서 모두 세비 반납 운동을 주도해왔다"며 당시 특위로 받았던 활동비 전액을 국회 사무처로 반납했다.
- 2013년 3월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누드 사진을 보고 있는 모습이 본회의를 취재하던 기자에게 포착된 적이 있다. 심재철 의원은 '누가 카카오톡으로 뭔가를 보내줘 이게 뭔가하고 열어봤더니 그런 사진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민중의 소리'가 심재철 의원 본인이 직접 '누드 사진'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공개하면서 진실이 들통나 버렸다.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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