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작가가 정경심 교수를 위해 작성한 탄원서]
탄 원 서
존경하는 임정열 부장판사님, 오늘도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 모두가 행복을 누리는 밝은 세상을 선도하기 위하여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저는 소설 ‘태백산맥’을 쓴 조정래입니다. 여러번 숙고하다가 이렇게 글월을 올리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정경심 교수의 사건 때문입니다.
정 교수의 부군 조국 교수와는 많은 나이 차이를 초월하여 아주 오래 전부터 동일한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동시대의 지식인으로서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며 깊은 교분을 나누어온 삶의 길벗입니다. 그런 인연으로 그 부인의 사건을 대하고 보니 저의 가슴에도 근심이 얹히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운 것은 정경심 교수가 저와 같은 순수한 문학가로서 그동안 당해온 고통이 너무나 가혹하고, 훼손된 명예가 너무나 애석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영·미권으로 유학을 가면 60~70%가 박사 과정을 포기하고 만다고 합니다. 더구나 ‘영문학’ 전공은 더욱 어려워 90%가 포기하거나 전공을 바꾼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에 비해 영국은 훨씬 더 전통적이고 고답적인 것 또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경심 교수가 영구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은 그가 순수한 열정을 얼마나 치열하게 바쳐 학문 연구를 한 문학자인지 잘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그런 문학가가 구치소에 갖히는 영어의 몸이 되어 6개월 동안이나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 고통의 무게와 아픔이 얼마일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 육체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문학가와 학자의 명예가 땅에 떨어진 영혼의 고통은 얼마나 극심했을지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심이 클 정 교수에게 격려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정 교수는 ‘어서 진실이 밝혀져 다시 문학 연구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심정을 담담하게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 의연한 태도에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정 교수는 지난 한 해 동안 영육의 고통을 당한 것만이 아닙니다. 오해의 험담과 곡해의 악담 속에서 ‘사회적 형벌’까지 당해야 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부군인 조 교수와 아들과 딸까지 많은 언론들의 지나친 취재와 악의적 보도, 그리고 전 가족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적 수사로 온 집안이 망가지는 멸문지화를 당했습니다. 그 어떤 처벌이 이보다 더 가혹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 가족이 겪은 그 형용할 수 없는 고통으로 충분한 처벌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바른 마음을 가진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조 교수 일가족을 향한 검찰의 행위가 ‘표적수사’이고 ‘과잉수사’라고 입 모아 비판하고 있습니다.
검찰의 그 부당행위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은 법원만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께서 현명한 혜안으로 부디 넓고 깊게 살피시어 조국 교수 일가족이 입은 상처를 하루빨리 치유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고 정경심 교수도 아무 억울함 없이 자유의 몸이 되어 이 나라 문학 발전을 위해 그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기를 거듭 간절히 바라옵니다.
2020. 11. 12.
조 정 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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