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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기자들의 8일자 성명 전문
꼭 3년 전이다. 2020년 6월 한 선배의 퇴사 소식에 기자들은 "퇴사를 당한 것"이라며 참담해했다. 그리고 최근, 또 다른 배제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박일근 뉴스룸국장 후보자 청문회를 몇 시간 앞둔 지난달 30일 오후, 사장은 김희원 논설위원에게 새로 만들 '뉴스 스탠다드실'(명칭 미정) 실장 인사 발령을 사전 통보했다고 한다. 또 인사가 나도 '김희원 칼럼'을 계속 쓰고 싶다는 본인의 의사에 '스탠다드실 업무 관련 칼럼만 쓰라'고 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기시감을 느낀다. 회사는 2017년 1월 미디어전략실을 신설하고 이희정 전 논설위원을 실장으로 발령냈다. 하지만 이 전 실장이 낸 보고서는 이유 없이 사문화됐고, 사실상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정도로 역할도 주지 않았다. 이에 논설위원실 복귀 의사를 수차례 밝혔지만 번번이 묵살당했고, 이 전 위원은 결국 3년6개월 만에 회사를 떠났다. 아직 단행되지 않은 김 위원 인사에 많은 기자들이 우려와 분노, 좌절감부터 쏟아낸 것은 그때의 학습효과 때문일 것이다.
사장은 5일 노조와의 면담에서 "김 위원에게 실장 자리를 제안한 것이며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라며 "뉴스스탠다드실은 뉴스이용자위원회를 관장하며 정기적으로 뉴스룸국 콘텐츠를 피드백하는 곳이다. 이 조직이 신설되면 현재 회사의 전략, 실행(생산) 파트와 함께 이를 견제하고 피드백하는 구도가 완성된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역할과 권한이 없는 한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면담 후 회사는 ①김 위원 실장 임명 후 '김희원 칼럼' 계속 집필 ②다른 기자를 실장으로 발령 중 하나를 택하겠다고 노조에 알려왔다고 한다.
노조의 문제제기에 귀 기울인 것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우려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최근 회사의 여러 행보는 구성원들에게 매우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는 지난해 퇴사 후 고문이 된 이충재 전 주필에게 다른 고문과는 달리 칼럼을 쓰지 못하게 했다. 또 지난 3월 이 전 주필을 고문에서 해촉했다. 다른 매체에 정부 비판적인 칼럼을 기고한다는 이유로 사상 첫 고문 해촉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김희원 칼럼' 역시 주로 정치 분야를 다루며 정부와 국회 등 권력에 날선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지난 2월에는 김 위원이 발제한 김건희 여사 관련 사설 <'김 여사 의혹' 왜곡이란 대통령실, 검찰이 판단케 해야>가 당일 오후 1시까지 지면계획에 포함돼 있다가 경영진에 의해 빠지기까지 했다. 실장 인사가 결국 김 위원의 펜을 꺾으려는 시도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또 최고 선임 여성 기자 두 명이 몇 년 사이 비슷한 방식으로 기자 본래 업무가 아닌 직무를 맡게되는 것은 여성 기자 배제라는 의구심을 부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현재 뉴스룸국 부장 10명 중 여성 부장은 단 1명뿐이며 여성은 한 차례도 국장에 임명된 적이 없다. 한겨레 세계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중앙일보 연합뉴스 등은 이미 여성 편집국장이 취임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일보는 뉴스룸국장 후보에 오를 수 있는 연차의 여성 기자가 있음에도 후보로 거론된 적 조차 없다. 한국일보만 유독 여성 기자 수가 적거나, 그들의 역량이 부족한 탓은 아닐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단지 이충재 전 주필, 김희원 논설위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열정과 능력을 갖췄으며 조직을 위해 평생 헌신하더라도 권력에 비판적인 기자, 여성인 기자의 마지막은 결국 소외와 배제뿐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절망한다. "김 위원에 대한 인사 시도는 정부 비판이 더욱 위축되고 우경화되는 신호탄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이번 인사 시도는 여성 구성원 전체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여기가 끝이다'", "이 회사에선 내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 회사가 지속적으로 보내는 메시지에 대한 답이다.
우리는 안팎의 권력에 고개 숙이지 않는 기자들, 또 여성인 기자들에게 오랫동안 지속돼 온 공공연한 배제와 차별이 해소되기는커녕 도리어 공고해지려 하는 지금의 상황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우리는 기자 본연의 의무인 권력 비판에 충실한 기자가 존중받는 곳, 성별을 이유로 조직에서 열외되지 않는 곳,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곳, 그곳이 한국일보가 서야 할 자리라고 믿는다.
2023년 6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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