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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가 고상만이 본 - 곽노현 전 교육감의 진심
제가 곽노현 전 교육감님과 인연을 맺게 된 때는 1995년입니다. 근 29년 전 입니다. 당시 재야단체에서 인권위원회 부장으로 일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니 마음만 부자였을 뿐, 늘 점심값도 걱정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사무실에 밥솥을 가져와 돌아가며 밥 당번도 했고 또 어느 날은 시장 순댓국밥 한 그릇을 먹으며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토요일 어느 날, 방송통신대학교 법대 곽노현 교수님이 “점심 전이면 내가 밥 사줄 테니 대학로로 오라”는 것 아닌가요.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곽노현 교수는 원래 운동권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 출신의, 그리고 미국 로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거친 분입니다. 이런 분이 골수 운동권이었던 우리에게 스스럼없이 밥 사 주는 관계가 된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 해 95년의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전두환, 노태우 등 5.18 학살자들을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한 검찰을 향해 분노로 들끓었습니다. 전국연합에서는 <5.18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를 구성했는데, 이때 어렵게 모셔온 분이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대외협력위원장으로 봉사하던 곽노현 교수였습니다.
이후 곽 교수는 자신이 회장으로 일하는 <민주주의법학연구회> 교수들과 함께 전두환, 노태우 처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의견서를 작성하여 147명의 법학교수 명의로 헌법재판소에 의견서를 제출하는데 적극적 역할을 주도했습니다.
특히 <5.18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대책위> 대변인을 맡아 법 제정의 당위성을 특유의 설득력 있는 논리로 제기하여 훗날 5.18 특별법 제정에 큰 공을 세우게 됩니다. 이런 공로로 97년 <5.18 광주민중항쟁 유족회>로부터 ‘5.18 시민상’을 받는 등 뚜렷한 공적을 세운 분입니다.
이런 분이 점심을 사준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두어 정거장 거리인 대학로까지 대여섯 명의 활동가들이 몰려가 종종 기분 좋은 점심을 얻어먹곤 했습니다. 그런 점심 중에 잊을 수 없는 한 끼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고급 스테이크 집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 것입니다. 그 음식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습니다. 맨날 라면과 순댓국만 먹다가 대학로에서 먹어본 스테이크.
이어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잔잔한 음악과 함께 차 한 잔을 마시니 그 낭만에 젖어 모두가 행복했습니다. 그런 우리들 모습을 보던 곽노현 교수가 기분 좋은 약속을 또 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자리를 종종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각박하게 일에만 매달리면 사람 본성의 여유를 잃게 된다며, ‘싸울 땐 싸우더라도’ 잠시 낭만도 느껴야 한다는 말씀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저는 곽노현 교수를 생각하면 여유로움과 낭만, 그리고 따뜻한 포용력 같은 느낌이 먼저 생각납니다. 그런 기억 중에 또 하나의 기억이 있습니다. 2012년 5월 어느 날의 이야기입니다.
청렴 교육 상근 시민감사관때 추억
그때 저는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엄격한 공개공채 전형을 거쳐 ‘외부인으로는 최초로’ 감사관실 공무원에 임용되어 일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예정에 없던 구내방송이 시작되는 것 아닌가요.
“아, 아……. 이거 지금 되는 거예요?”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뜬금없는 ‘방송 사고’.
적막 속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 순간 손길을 멈추고 모두들 구내 방송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웅성웅성. 그때, 이내 들려온 낯익은 음성.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 저, 교육감 곽노현입니다.”
“아…….”
직원들 사이에서는 짧은 경탄과 반가움,
그리고 의외의 상황에 놀라는 복합적인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서울특별시교육청 생긴 이래 ‘서울의 교육 대통령’이라 불리는 교육감이 마이크를 직접 들고 구내 방송에 등장한 사례가 ‘처음’ 이었기 때문입니다.
교육청 내에 무슨 큰일이라도 발생한 걸까.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교육감이 직접 마이크까지 들고 등장한 것일까. 직원들은 순간 ‘두런두런’ 속삭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또 이어진 곽노현 교육감의 말씀.
“교육감이 방송을 해서 놀라셨죠? 죄송합니다. 자주 좀 뵙고 해야 하는데, 사정상 그렇지 못해 늘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고생하시는 여러분께 시 하나 낭송해 드리고 싶어 이렇게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좀 들어 주시겠습니까?”
이 같은 곽 교육감의 뜬금없는 말씀에 순간 직원들의 표정에서는 긴장감 대신 살포시 미소가 일었습니다. 교육감의 깜짝 방송도 특이한 일이지만 “혹여 무슨 큰일이라도 났나” 싶어 긴장했던 우리들 모습에 서로 웃음이 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곽노현 교육감의 시 낭송. 이날 교육감은 시인 김부조 님의 시,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를 낭송했습니다.
‘이제 날도 저무는데,
번지 없는 허공을 돌아 나오다
막다른 궤적에서 무너지는 새들아.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바람 잘 날 없는 숲 속에서,
상생을 위한 뿌리를 내리다 목마른 침묵으로 시드는 나무들아.
너희들도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각본 없는 하루를 따라나서,
차가운 세상에 시린 등만 내주다 서둘러 속울음을 배워버린,
너도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날도 저무는데 우리 모두 집으로 가자.
따뜻한 집으로 가자.’
교육감의 시 낭송이 끝나자 직원들 사이에서 또다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작게 박수치며 웃기도 했지만 남자 직원들은“뜬금없는 시 낭송을 하다니 뭐야”라는 어색한 반응도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곽 교육감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또 이어졌습니다.
“교육감이 왜 저러나 당황스러우셨죠? 죄송합니다. 사실은 제가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수요일입니다. 수요일은 정부가 ‘가정의 날’로 지정한 야근 없는 요일입니다.
그런데 교육청의 여러 업무로 바빠 수요일에도 늦게까지 근무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만은 야근하지 마시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셔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시라는 의미에서 방금 시를 한 편 골라 봤습니다.”
아. 그제야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습니다.
그러자 또 이어지는 방송.
“그래서 오늘 저도, 이 방송을 마치는 대로 퇴근을 하겠습니다. 교육감인 저부터 퇴근을 할 테니 오늘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마시고 바로 퇴근하셔서 모두 집으로 돌아가 오늘만큼은 가족과 함께 행복한 저녁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서울 교육도 행복하고 건강하지 않겠습니까? 고맙습니다.”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의 일화는 이후 교육청 내에서 작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구내방송을 하는 사고를 친 교육감에 대한 신뢰가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하지만 아시는 것처럼 곽노현 교육감은 안타깝게도 임기 4년을 온전히 마치지 못한 채 중도 하차하게 됩니다. 이른바 후보 <사후 매수죄>로 알려진 그 사건 때문입니다.
당시 검찰은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시나리오로 기소를 합니다.
하나는 곽 교육감이 2010년 지방선거에서 경쟁 후보 중 한 명인 박명기 후보에게 대가 지급을 약속하고 단일화를 하였으며 그에 따라 선거 후 대가를 지급했다는 통상적인 <후보 매수죄> 시나리오입니다.
다른 하나는 단일화 당시 후보 매수 약속을 하진 않았지만 선거 후 박 후보에게 제공한 금품이 후보 사퇴 대가이기 때문에 처벌한다는 후보 <사후 매수죄> 시나리오입니다.
1심과 2심 법원은 물론 대법원까지도 사전 약속에 따른 전자의 시나리오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배척합니다. 반면 1, 2, 3심 법원 모두 후자의 시나리오, 즉, <후보 사후 매수죄>에는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더욱이 <벌금 3천만 원>을 선고한 1심과 달리, 2심과 3심은 <징역 1년>을 선고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이명박 정권에 의한 정치적 보복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무상급식 전면실시와 관련한 논쟁이 뜨거웠던 그때에 이를 반대하던 당시 정권과 여당이 무상급식 논쟁을 주도했던 곽 교육감을 주저앉히고자 벌인 무리한 법 적용이라는 측면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상황을 살펴봐도 상당히 가능성 있는 추론입니다.
2011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 전면실시에 반대하며 이를 주도하는 곽노현 교육감과 극심하게 대립합니다. 그러던 중 오세훈 시장이 충격적인 카드를 뽑아 들었습니다. 무상급식 전면 실시 여부를 두고 서울시민 전부에게 찬반 투표를 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삽시간에 모든 정국은 무상급식 전면실시 찬반 의견으로 갈렸습니다. 주민투표는 서울에서만 하는 것인데, 그와 상관없이 전국적 이슈로 부각되었습니다. 한편 무상급식 전면실시 여부가 아니라 그걸 결정하는 방법으로 주민 투표를 실시하는 것이 옳으냐를 놓고 또 다른 논쟁이 격화되는 기현상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의 태도는 완강했습니다.
한번 던진 정치적 승부수를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주민투표에 자신의 서울시장직까지 걸었습니다.
만약 서울시민 투표율이 33.3%에 미달되어 투표가 무산되거나, 또는 개표 뒤 과반수 찬성을 얻지 못할 경우 미련 없이 ‘시장직을 사퇴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과연 그 결과는 어찌되었을까요? 최종 결과는 서울시민 투표 참여율 33.3% 미달. 따라서 주민투표 개표 자체가 무산되고 만 것입니다.
사실상 무상급식 전면실시를 주장해온 곽노현 교육감의 정치적 승리였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오세훈 서울시장은 약속대로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그간 학교에서의 무상급식 전면 실시 여부를 놓고 끊임없이 갈등하던 모든 ‘밥’ 논쟁에 마침표가 찍힌 날입니다. ‘급식도 교육’이라는 진보 교육감 쪽의 주장에 국민이 동의해 준 역사적인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에 발생한 충격적 사건. 모두가 상상도 못한 소식이 속보를 타고 전파되었으니, 그것이‘이명박 정치 검찰에 의한’ 곽노현 교육감 <후보 사후 매수죄> 수사 착수 발표였습니다.
<무상 급식 논쟁> 마침표와 동시에 터진 사후 매수죄?
도대체 <사후 매수죄>가 무엇일까요? 처음엔 법조계 내에서도 낯익지 않은 단어였습니다. 그래서 혼란도 있었습니다. 도대체 그 죄가 어떤 혐의냐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법 적용’이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사실 관계를 따지면 이렇습니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로 돌아가겠습니다. 진보와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교육감 후보가 여러 명 출마하여 열띤 경쟁을 합니다. 진보진영에선 곽노현 후보가 경선 끝에 민주진보 단일후보로 선출됩니다. 반면 전교조 출신의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는 이 경선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진보진영에서는 곽노현 후보의 경선승리 이후 진보후보로 꼽히던 박 후보에게 사퇴 압력을 가합니다.
하지만 박 후보는 완주 의사를 피력하면서 요구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본 선거운동을 하루 앞둔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박 후보가 곽노현 후보를 지지하며 후보직을 사퇴한 것입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선거 비용의 100% 보전을 요구하던 박 후보가 ‘아무런 조건 없이’ 곽노현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보고를 받은 곽노현 후보는 박 후보에게 깊은 고마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곽노현 교육감이 ‘알고 있었던’ 단일화 과정의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육감으로 당선되고 약 6개월여가 지나가던 시점에 곽노현 교육감은 지나가는 풍문 하나를 접하게 됩니다. 후보 사퇴와 함께 자신을 지지해 준 인연으로 늘 고맙게 여기고 있던 박명기 교수가 자기를 원망하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곽 교육감이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형편이 매우 어렵다”며 비난한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곽 교육감 입장에서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소 친분이 깊은 모 교수에게 부탁하여 소문의 경위를 알아봐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처음 듣게 된 이야기,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고 합니다.
사실은 박명기 후보 측과 곽노현 선거운동본부에서 일하는 실무자 한 명이 박 후보의 사퇴 선언 직전에 만났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박명기 후보가 사퇴하면서 곽노현 후보를 지지할 경우 무엇을 어찌하겠다는 식의 무책임한 약속을 아무 권한도 없는 ‘그들끼리’ 했다는 것을 처음 들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사실을 정말 ‘곽노현 당시 후보가 알고 있었냐’는 것입니다. 그랬다면 검찰의 주장이 사실이겠지요.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1심과 2심 법원에서도 공히 확인된 사실관계에 의하면 당시 곽 후보는 이런 실무자들의 대화 사실을 전혀 들은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전혀 듣지도 못했고, ‘사후 보고 역시 받은 적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거가 다 끝나고 교육감으로 재직중 자기도 모르는 말들이 오고 갔다는 말을 뒤늦게 알고 곽노현 교육감은 ‘그야말로 경악’했다고 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이런 논의를 했다는 그 관계자를 불러 사실 관계를 확인한 후 곽 교육감은 ‘뒤늦게’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곽 교육감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고민이었고 그야말로 ‘곽노현이라는 사람이기에’ 가능했던 고민이었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일로 화가 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해들은 그 쪽 사정이 너무도 딱했다는 것입니다. 곽 교육감이 책임질 일은 아니지만 선거운동 과정에 빚어진 경제적 고통으로 누군가가 힘들어 한다는 말이 내내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돌이켜보면 그냥 외면해도 될 일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랬으면 정말이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딱한 사연에 마음이 약해진 곽 교육감이 결심했다고 합니다. ‘인간적 연민의 마음으로’ 일종의 기부행위처럼 생각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후보 매수니, 사후 매수니 하는 따위의 법적 부정행위는 이유가 없었습니다. 당연했습니다. 공직선거법상 공소제기 시효가 6개월인데 이미 시효도 훌쩍 지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 받는 누군가를 돕는 것은 법률상 불법도 아니니 ‘나름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겠거니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마침 지난 선거운동 기간 중에 법이 개정되어 교육감 후보 역시 후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처음에 교육감 출마를 결심 했을 때는 기대하지도 않았던 후원금이 약 1억 6500만 원 정도 모금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후원금을 받고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마침 형편이 어렵다는 그 분에게 전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곽 교육감은 이런 생각을 아내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곽 교육감의 아내는 “박 교수가 당신을 잘못 만나 오랜 교육감의 꿈을 접어야 했고 그로인해 지금은 선거 빚으로 힘들다 하시니 안타깝네요. 우리는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던 후원금까지 받았으니 여기에 우리가 저축한 돈 일부를 보태어 만들어주면 어떨까요? 그러면 박 교수님도 2, 3년 안에 다시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지 않겠어요.”라며 맞장구를 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전달하게 된 돈이 이른바 검찰에 의해 만들어진 이 사건의 전모, <사후 매수죄>입니다. 정말 이게 어떤 이익을 목적으로 행한 잘못일까요?
아닙니다.
곽 교육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누군가에 대해 본인이 할 수 있는 조건 없는 ‘선의의 부조’ 개념으로 행한 일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인간적인 평소의 곽노현 성품 그대로, 안타까워 선의로 행한 일이 정치 검찰의 목적에 의해 덧칠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사건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교육감직을 중도 사퇴하는 어마어마한 일로 발전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합니다. 거기에 더해 유죄 선고후 선관위로부터 보전 받은 선거비용 약 35억 원도 반환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곽 교육감은 본인이 무죄라는 신념으로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자신 명의의 부동산은 물론 예금 1원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모든 재산을 압류 당하고 그 처분 대금으로 4억 원 넘게 이미 국고로 환수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31억 원의 반환 채무가 남아있어 매달 나오는 국민연금마저도 그 일부를 꼬박꼬박 압류 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그 선의가 상상 그 이상의 고통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후 매수죄’를 풍자하여 나온 말이 있습니다. 운전을 마치고 난 후 집에서 술을 한잔했는데 그것이 음주운전이라며 처벌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입니다. 마찬가지로 선거가 다 끝난 후에 후보를 매수하는 사람도 있냐고 합니다. 그야말로 전 세계 어디에서도 없는 ‘대한민국에서의 최초이자 최후의 사건’일 것입니다.
하지만 유무죄에 대한 치열한 법적 논쟁 끝에 ‘권력을 쥔 자가 원하는 결론’으로 끝났습니다. 이에 따라 곽 교육감은 교육감 직위에서 끌려 내려와 1년간 수감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중도 하차하여 재임 기간 중 역점 사업으로 노력했던 ‘문예체 중심의 새로운 서울 교육’ 역시 그 꽃을 다 피워 보지 못한 채 중도 좌절되는 아픔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짧은 교육감 재직 기간이었으나 곽 교육감이 남긴 서울 교육의 변화는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서울의 학부모라면 누구나 반기는 혁신학교를 서울시교육청에 뿌리내리게 한 성과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것, 그리고 ‘국영수’ 중심의 교육을 ‘문예체’ 중심으로 바꿔 이후 2014년 이래 지난 10년간 조희연 진보 서울교육으로 이어지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한 것 역시 성과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과정이 없는 역사는 없습니다. 곽노현 전 교육감이 선의의 마음으로 행한 일이 모진 고난을 겪게 되었으나 그가 주도한 무상급식 및 체벌 금지의 전면적 실시와 전국적인 문화 안착은 대한민국 인권교육 역사로 남았습니다. 이 과정에 앞장서 온 곽노현 전 교육감을 이명박의 정치 검찰이 ‘전대미문의 악법으로 훼손한 불명예는 이제 바로 잡혀야’ 합니다. 그 일을 누가 해 줄 수 있을까요.
인권운동가로 살아온 저, 고상만이 지켜 봐 온 곽노현 전 교육감님은 진실합니다. 배신하지 않습니다. 한결같은 길을 걸어온 교육자입니다. 지난 2012년, 오세훈의 반대를 무너뜨리고 무상급식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계기를 만든 것처럼, 다시 한 번 진보 교육의 새로운 길을 열어나갈 확신과 철학을 가진 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곽노현 전 교육감님을 확신합니다. 함께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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