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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연설, 성명

1989년, 저는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 이세숙(안승문의 아내, 이한열 누나)

by 길찾기91 2024.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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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저는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글쓴이 : 이세숙 (중등교사경력 30년, 안승문의 아내, 이한열 누나)

  1989년 8월 23일 저는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을 탈퇴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전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왜냐면 연세대 2학년 재학중이던 동생 이한열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1987년 3월 인천의 중등교사로 발령받고 6월 9일 한열이가 그 일을 당하고 난 후 늘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 사명감, 책임감 이런 것들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87년 가을 쯤 수업준비를 하는데 전두환의 5공화국을 찬양하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내동생의 삶을 앗아간 살인마 전두환을 교과서에서 보게 될 줄이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꿔야 했습니다. 그 당시 교육에 대해 고민하던 교사 단체 ‘민주교육실천 전국교사협의회’가 있어서 참여하게 되었고 이것이 발전하여 전교조가 결성된 것입니다. 전교조를 탈퇴하면 징계하지 않겠다는 당시 정부의 방침을 이한열 누나인 제가 어찌 따를 수 있겠습니까?  

  전교조 해직교사로 날마다 길거리에서 참교육을 외치며 돌아다니던 그때, 전교조는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도 불렀던 ‘참교육’ 노랫가락을 지금도 머릿속으로 부르고 있는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참교육이 뭘까?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의 구체적 내용이 뭘까? 를 고민하던 즈음 교육전문월간지 ‘우리교육’ 이 발행되었습니다. 정신없이 읽었습니다. 그래 이런 거였어... 복직되면 이렇게 해야지... 꿈을 안고. 인천 해직교사들과 ‘우리교육’을 들고 이 학교 저 학교 다니면서 선생님들께 건네 드리며 참교육을 하자고 했고 많은 환호를 받았습니다. 아! 전교조는 이런 것을 하는 거구나, 더더욱 내 활동에 대한 자부심은 커져갔습니다.

  1992년 안승문을 만났습니다. ‘우리교육’ 초창기부터 쭉 편집장으로 활동한 이 사람을... 과연 만나보니 안승문의 머릿속은 온통 참교육으로 가득 차 있었고 헌신을 다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순진하고 투박하며 교육만을 생각하는 그의 삶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이 사람과 함께하면 늘 희망을 안고 살겠구나. 숨통이 트였습니다. 교육을 바꿀 열정으로 가득 찬 안승문과 같이 살면 삶이 희망에 가득하겠구나..

물론 아이도 키우고 집안도 살펴야 하는데 바깥활동으로 바쁜 안승문은 남편으로서 저를 많이 지치게 했습니다. 매일 11시, 12시가 귀가 시간이었죠. 그러나 때로는 밤에 아이가 울면 저는 듣고도 못 들은 척 돌아누워 버리고,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는 남편 안승문이 일어나서 아이를 재우곤 했습니다. 설거지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자고 일어나면 부엌은 깨끗해지고 아침밥까지 해놓습니다. 아무리 밤늦게 들어와도 새벽 5시면 일어나 공부를 하고 집안일을 거드니 저는 그것으로 만족하며 살기로 했습니다.

  안승문은 40여년을 한결같이 교육만 생각합니다. 우린 데이트 할 때부터 교육만 이야기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 큰 눈을 굴리며 내 생각 어때? 선생님들이 좋아하겠지? 아이들이 좋아하겠지? 하며 내 의견을 묻습니다. 그때 마다 저는 ‘당신 지금 괜찮아?’ 라고 한번만 물어보길 바라고 살았고, 지금은 포기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제가 선택한 길인데..

  인천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저는 놀라운 경험도 했습니다. 안승문이 서울 장승중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만들었던 진로탐색자료 ‘나의 꿈 나의 미래’ 와 거의 흡사한 책자를 5,6년 후 우리학교가 만들고 있었습니다. 진로탐색활동이 시절이어서 서울에서 인천까지 전파된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내 남편이 시작한 건데’ 하며 미소를 지었고 이것은 저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었습니다.

  교육은 거대한 외침만으로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교사들끼리 연구하며 아이들을 위한 내용들을 서서히 채워나가야 합니다. 저는 30년의 교직경험을 갖고 있는 교사로서 교육이 발전하려면 제일 먼저 필요한 조건은 ‘선생님을 존중하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라’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을 우선하지 않는 교육혁신은 없습니다. 선생님들을 존중하면 그들은 신나서 춤추며 올바른 교육을 논할 것입니다. 안승문은 선생님을 존중할 것입니다.

  안승문의 꿈은 교육이 발전하여 학생들이 행복한 성장기를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소통·자율·자치를 통한 공감하는 학교를 만들어 공감하는 사회를 이루는 초석을 놓고자 합니다. 안승문은 40년을 준비했습니다.

안승문의 진심과 열정의 일면이나마 알리고 싶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글을 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9.7.이세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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