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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 속의 정보
정보를 사회적 연결 고리nexus로 보면, 정보를 재현으로 보는 순진한 정보관을 가진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드는 인류 역사의 여러 측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관점은 점성술뿐만 아니라 <성경>처럼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의 역사적 성공을 설명할 수 있다. 점성술을 인류 역사의 이색적인 곁가지 사건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성경>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정보의 주된 역할이 현실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이었다면, <성경>이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텍스트 중 하나가 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성경>은 인간사를 기술하는 대목에서나 자연 과정을 기술하는 대목에서나 많은 심각한 오류를 범한다. 창세기는 칼라하리사막의 산족과 호주 원주민을 포함한 모든 인간 집단이 약 4,000년 전 중동에 살았던 한 가족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창세기에 따르면 홍수 이후 노아의 모든 자손들이 메소포타미아에서 함께 살았지만 바벨탑이 파괴된 후 그들은 네 방향으로 흩어져 현존하는 모든 인간의 조상이 되었다. 하지만 사실 산족의 조상들은 수십만 년 동안 아프리카를 떠난 적이 없으며, 호주 원주민의 조상들은 최소 5만년 전에는 호주에 정착했다. 유전자 증거로 보나 고고학 증거로보나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호주의 고대 집단들이 약 4,000년 전 홍수로 전멸한 후 중동 이민자들이 이 지역에 들어와 정착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
훨씬 더 심각한 왜곡은 전염병에 관한 사실에 있다. <성경>은 전염병을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처벌로 묘사하고 전염병을 멈추거나 예방하기 위해서는 기도와 종교 의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염병은 당연히 병원체 때문에 발생하고, 전염병을 멈추거나 예방하려면 위생 규칙을 준수하고 약과 백신을 사용해야 한다. 이 사실은 오늘날 교황 같은 종교 지도자들조차 받아들이는 상식이다. 교황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사람들에게 모여서 기도하는 대신 자가격리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의 기원, 이주, 전염병의 현실을 제대로 표현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억 명의 사람들을 연결하고 유대교와 기독교를 탄생시키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DNA가 수십억 개 세포를 유기적 네트워크로 묶는 화학 과정을 개시하듯이, <성경>은 수십억 명의 인간을 종교 네트워크로 묶는 사회적 과정을 개시했다. 그리고 세포 네트워크가 하나의 세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듯이, 종교 네트워크도 사원을 짓고 법체계를 유지하고 기념일을 축하하고 성전을 치르는 등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요컨대, 정보는 현실을 재현하기도 하고 재현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정보는 항상 연결한다. 이것이 정보의 근본적인 특징이다. 따라서 역사에서 정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조사할 때 우리는 '현실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가? 진실인가 거짓인가?'를 물어야 할 때도 있지만, 대개 더 중요한 질문은 '사람들을 얼마나 잘 연결하는가? 어떤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가?'이다.
하지만 정보를 재현으로 보는 순진한 관점을 거부한다고 해서 진실이라는 개념을 거부해야 하는 것도, 정보를 무기로 보는 포퓰리적 관점을 수용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정보는 항상 연결하는 역할을 하지만, 과학책부터 정치 연설까지 몇가지 유형의 정보는 현실의 특정 측면을 정확하게 표현함으로써 사람들을 연결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이는 특별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며, 대부분의 정보는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더 강력한 정보 기술을 만들어내기만 하면 세상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순진한 관점이 틀린 이유가 여기 있다. 저울을 진실쪽으로 기울이기 위해 따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정보의 양과 속도가 증가할수록 비교적 드물고 값비싼 진실한 정보가 그보다 훨씬 흔하고 값싼 유형의 정보에 파묻힐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석기시대부터 실리콘 시대까지 정보의 역사를 살펴보면, 연결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진실이나 지혜도 함께 증가하지는 않았다. 순진한 정보관의 믿음과 달리 호모 사피엔스가 세계를 정복한 이유는 정보를 현실의 정확한 지도로 바꾸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피엔스의 성공 비결은 정보를 활용하여 많은 개인을 연결하는 일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능력은 거짓, 오류, 환상을 믿는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치 독일과 소련처럼 기술적으로 진보한 사회에서조차 사람들이 망상에 쉽게 빠진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하지만 그런 망상이 사회를 약하게 만든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치즘과 스탈린주의가 주입한 인종과 계급에 대한 망상에 집단적으로 빠진 덕분에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행진할 수 있었다.
<넥서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2024, 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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