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전 국회의원전 장관
출생 1958년 1월 21일,
경북 상주시
나이64세 (만 63세)
소속 더불어민주당
가족 딸 윤세인
학력사항
1976.~1987.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1994.~1999.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졸업
~1975. 경북고등학교 졸업
1968.~1971. 대구중학교 졸업
~1968. 대구초등학교 졸업
경력사항
2017.07.~2019.04. 행정안전부 장관
2017.06.~ 행정자치부 장관
2016.05.~2020.05. 제20대 국회의원
2012.01.~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 경기 군포에서 국회의원 하다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고향 대구애서 출마. 낙선했었지만 20대 당선. 다시 21대 낙선 후 문재인정부의 행정안전부 장관 역임.
* 함나라당에 몸담있다가 2004년 열린우리당 창당 때 합류한 이른바 독수리 5형제 중 1인.
*선거 경력
2위2020년 제21대 국회의원선거 | 수성구갑 | 더불어민주당 | 39.3% 2위 |
당선2016년 제20대 국회의원선거 | 수성구갑 | 더불어민주당 | 62.3% 당선 |
2위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시도지사 | 대구광역시 | 새정치민주연합 | 40.3% 2위 |
2위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선거 | 수성구갑 | 민주통합당 | 40.4% 2위 |
당선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선거 | 군포시 | 통합민주당 | 50.8% 당선 |
당선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선거 | 군포시 | 우리당 | 49.6% 당선 |
당선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선거 | 군포시 | 한나라당 | 45.5% 당선 |
3위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선거 | 과천시·의왕시 | 민주당 | 18.0% 3위 |
5위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선거 | 동작구갑 | 한겨레 | 3.3% 5위 |
*
김부겸 전 의원의 아내인 이유미입니다.
큰오빠인 이영훈 교수로 인해 김부겸 의원에 대해 안 좋은 말이 떠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하소연을 드릴까 합니다.큰오빠가 대학 때 학생운동으로 제적이 되고 도망 다니던 시절, 형사들이 우리 집을 들락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오빠는 학생운동으로 투옥되어 재판을 받고 3년여간 옥살이를 했습니다. 남동생은 대학 졸업 후 美 문화원 폭파 사건으로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2년여 옥살이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민주화 운동을 하던 집안에서 성장했습니다. 남편도 79년 가을에 친구였던 셋째 오빠의 소개로 만나, 82년 초에 결혼하였습니다.
저 역시 80년, 86년, 92년, 세 차례에 걸쳐 경찰과 안기부에 끌려갔습니다. 80년에는 연애할 당시입니다. 광주항쟁이 나자 서울대 복학생이던 남편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전국에 지명수배했습니다. 한은 대구지점에 다니던 저를, 애인이라며 경찰청 대공분실에서 나와 잡아갔습니다.
군복으로 갈아입히고 수건으로 눈을 가렸습니다. 두 명이 밤새 취조 했습니다. 한 명은 달래고, 한 명은 때렸습니다. 그중 한 명은 훗날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당시 고문에 가담했던 경찰관입니다. 남편의 소재를 캐물었지만, 실제로 어디 있는지 저도 몰랐습니다.
그러자 서울로 압송해갔습니다. 저를 큰오빠의 신혼집 근처 여관에 가둬두고 도청 장치를 붙였습니다. 큰오빠 집으로 연락하겠다고 했던 남편에게서 연락이 올 것이라 예상하고 덫을 놓은 것입니다. 남편은 잡힐 뻔했지만, 큰오빠의 기지로 간발의 차로 도주했습니다. 다시 대구로 데려가 절 풀어주고는 한 달 동안 감시를 붙여 미행했습니다.
결혼을 한 후 86년 남편이 복학해 서울대 앞에서 백두서점을 운영할 때였습니다. 관악경찰서에서 나와 수시로 책을 압수해갔고, 둘째를 가져 만삭인 저는 두 차례 연행되었습니다. 좌경용공서적을 소지, 판매했다는 죄였습니다. 당시 근처에서 광장서적을 하던 남편의 선배인 이해찬 대표님도 함께 연행되었는데, 대표님이 거세게 항의해주신 덕분에 며칠 만에 풀려나곤 했습니다.
마지막은 92년입니다. 남편은 김대중 총재의 민주당 대변인실 부대변인이었습니다. 김대중 총재는 대선 출마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이선실'이라는 할머니 간첩을 내세워 남편과 저희 가족을 간첩단으로 몰았습니다.
남산 안기부로 저와 저의 어머니, 남편을 잡아갔습니다. 이선실이 간첩임을 알고 있지 않았냐고 몰아붙였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몰랐다고 버티자, 사흘 만에 어머니와 저를 풀어주었습니다. 그때는 민주화 이후라 매질은 하지 않았지만, 제가 앉은 의자를 발로 차는 등 폭력적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가끔씩 찾아오던 그 할머니를 만났던 제 친정어머니를 가혹하게 몰아붙였습니다. 남편은 재판 끝에 대부분은 무죄를 받고, 불고지죄만 유죄를 받아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이렇게 험난한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오직 남편이 하는 정치가 올바르다 믿고 뒷바라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 저의 친정 오빠로 인해 곤혹스런 처지를 당하니 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옛날의 고통스런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쓰고 있자니 눈물이 흐릅니다. 부디 정치인 김부겸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고, 여러분이 널리 이해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더 낮은 자세로 성찰하고 쇄신하겠습니다
- 박영선, 김영춘을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지난 주말에는 벚꽃 활짝 핀 부산 거리에 서 있었습니다.
짠 내 나는 바닷바람을 타고 전해 오는 김영춘 후보의 절절한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과거 함께 했던 시간이 아련한 추억으로 스쳐 지나갔습니다. 곡절 많은 세월이었습니다.
2000년 저는 경기 군포에서, 김 후보는 서울 광진에서 어렵게 당선되었고, 정치개혁의 기치와 ‘독수리5형제’란 이름으로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며 한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 후 영남출신으로 故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길, 동서화합을 위해 각자의 고향인 대구,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지역주의 철벽에 금을 내는가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작년에는 저희 둘 다 실패의 쓴 잔을 들어야 했습니다.
저는 김영춘이 노무현 대통령의 못다 이룬 꿈을 완성하길 소망합니다.
부산시민들께서 다시 한 번 김영춘의 진심과 의리를 헤아려 주시고, 그의 손을 잡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부산의 변화를 위해 그동안 들여왔던 노력과 미래 비전을 살펴봐주십시오. 부족하게 느끼시겠지만, 정말로 어렵게 한걸음씩 전진해 왔습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박영선 후보는 정말 일 잘하는 후보입니다. 국회의원 시절 강단진 모습으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고, 서민들의 아픔에 함께 눈물 흘리는 공감의 정치인입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습니다.
준비된 행정가이며, 서울시민들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울시민들의 고통을 덜고, 일상을 하루빨리 되찾게 할 수 있는 후보 박영선을 부탁드립니다.
이틀 후면 4.7 재보궐 선거가 있습니다. 지금 국민들의 비판과 질책이 엄중하다는 것을 어느 때 보다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국정운영을 책임진 여당의 일원으로서, 송구한 마음을 감출 길 없고, 고개 들 면목도 없습니다. 성찰하고 혁신하겠습니다.
그래도 염치불구하고, 다시 한 번 호소 드립니다.
박영선, 김영춘은 지난 촛불시민혁명에서 국민 여러분들이 보여주신 뜨거운 열망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당이 사려 깊지 못한 언행으로 거듭 실망을 안겨 드렸지만, 대한민국 공동체의 희망을 위해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십시오.
민주공화국의 정신과 가치를 존중하며, 거듭 성찰하고 쇄신하는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더 낮은 자세로 일하겠습니다.
- 2021. 4. 5 페이스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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