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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수사 혹은 연출의 기술 - 이연주 변호사

by 길찾기91 2021.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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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혹은 연출의 기술

 

큰 바위에 정으로 구멍을 파고, 그 구멍에 잘 마른 나무쐐기들을 박습니다. 나무쐐기들에 물을 부으면 쐐기는 물을 머금은 만큼 야속하게 부풀어 오르고 어느새 바위는 아픈 생살을 내보이며 ‘쩍’ 하고 갈라집니다.

검사들이 선택적으로 흘리는 과잉의 정보가 우리의 마음을 현혹하는 과정도 그와 같습니다.

그 정보는 “저 사람마저도 혹시”라는 우리의 의심을 부풀립니다. 의심은 점점 자라나 확신과 환멸이 되고, 결국 우리는 한때 우리가 의지하고 사랑했던 사람을 허공으로 등떠밀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제부터 우리를 현혹시키는 검사들의 스토리텔링 비결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검사들은 중요한 사건일수록 잘 팔리는 스토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중요한 요소 하나는 참고인 또는 증인 단속입니다.

조민씨의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허위인턴증명서 발급 의혹 사건에서 한영외고 동문인 장모씨는 오전 9시 35분에 검찰청에 도착했으나 조사는 오후 1시 5분에 시작되었습니다. 검찰이 총력전을 벌이는 사건인 만큼, 바로 본편을 찍을 수는 없지요. 2시간 반의 사전면담의 기회에 단도리 또는 리허설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과유불급이라고 해야 할 것이, 김학의 전 차관 사건에서 검사들은 공판 전에 증인을 불러서 단속을 하다가 딱 걸려서 파기환송을 먹었습니다.

대법원이 “검사가 재판에서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할 사람을 특별한 사정 없이 소환해 면담하고 증인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경우, 검사가 회유·압박, 답변의 유도, 암시 등의 방법으로 법정진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이 담보되어야 신빙성이 있다”고 한 것이지요.

뭐, 이건 피고인인 전직 검사가 올린 쾌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인이라면 증인신문절차 전에 검사가 증인을 따로 부르면 그저 부르나보다 할 텐데, 전직 검사인 피고인은 “너희가 밀실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한편 검사들이 위 두 사건보다 증인연출에 훨씬 더 심각하게 심혈을 기울인 사건이 있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의 정치자금법위반죄 사건입니다.

그 사건에서 한만호는 2010년 4월부터 12월까지 총 79회나 검찰에 출정을 했는데, 조사결과로서 남아있는 것은 1번의 진술서와 5번의 진술조서입니다.

진술서는 4번째의 출정인 2010년 4월 4일에서야 비로소 작성되는데, 한만호는 첫 출정인 2010년 4월 1일에는 오후 1시부터 저녁 7시반까지, 두 번째 출정인 다음 날은 오후 1시에서 새벽1시까지 꼬박 12시간동안, 3번째 출정인 그 다음 날에는 오후 1시 30시에서 저녁 8시 25분까지 검찰청에 머물렀습니다만, 조사과정에 대해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씨의 비망록에 따르면, 그 3일동안 검사들이 기업의 경영권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겠다고 회유하고, 한신건영의 남모 이사가 검사들에게 협조하지 않으면 추가건으로 고생하게 된다고 압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토록 많은 출정이 필요했던 이유는 증언내용을 반복해서 외우고 한명숙 전 총리 변호인의 반대신문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검사들의 스토리텔링은 나치 독일의 계몽선전장관 괴벨스의 가르침, “진실과 거짓을 섞어라”를 쫓고 있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거짓말은 진실을 가지고 하는 거짓말, 즉 사실을 재가공한 거짓말이라는 걸 잘 아는 겁니다.

한명숙 전 총리 1차 사건에서는, 한 전 총리가 총리공관에서 곽영욱으로부터 5만 달러를 받았다는 본래의 혐의를 둘러싸고 검사들은 그 둘의 친분에 관한 이야기를 흘립니다.

한 전 총리가 제주에 있는 곽영욱의 골프빌리지를 한 달간 무상으로 이용했다거나, 여성부 장관에 임명되었을 때 함께 골프용품 매장에 가서 곽씨가 1000만원 대의 일제 골프채를 구입해 건네줬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한 전 총리는 마음만 받겠다고 거절하고 골프모자만 하나 골라왔다고 하는데, 어쩐지 검사들의 이야기를 더 그럴싸하게 보이게 합니다.

검사들은 이런 이야기를 흘리는 의도를 이해시키려고, 기소할 사안은 아니지만 “한 전 총리와 곽 전 사장의 관계를 보여줄 정황증거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작은 걸 받았으면 큰 거도 받을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부득이 그렇게 흘러갑니다.

한만호로부터 정치자금 9억원을 받았다는 정치자금법위반죄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씨에 대한 검찰의 증인신문은 그가 운영하던 건설회사 한신건영이 시공한 건물의 일부 공간을 한 전 총리에 사무실로 임대하였는데, 임대보증금을 시세보다 싸게 해주었다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한편 검사들의 스토리텔링에 가장 먼저 매혹되는 사람들은 법조기자들입니다.

한 전 총리가 정치자금법위반죄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안타까움에 임관혁 부장검사에게 위로문자를 보내고, 항소심에서 유죄로 뒤집어지자 축하메시지를 보낸 이들이 바로 그 기자들입니다.

그런데 검사들의 스토리텔링은 결국 잔혹동화에 이르고 마는데, 그것은 바위가 아프게 갈라지고 나서야, 거위의 배를 가르고 나서야 검찰이 있다고 떠벌이던 그 무엇이 그 안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 이연주 변호사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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