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돌고래 아니라 박쥐]
윤석열 후보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불구속 수사하려 했다”는 <동아일보> 보도를 봤다. 윤석열과의 두 차례 만남이 떠올랐다.
# 2016년 11월
박근혜 특검이 꾸려지기 전인 2016년 11월 어느 날. 윤석열로부터 “저녁 한번 하자”는 제안이 왔다.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는 사이였지만 약속을 잡았다. 마포의 어느 중국집이었다.
하지만 당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취재로 정신이 없어 약속시간에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나의 결례에도 윤석열은 내내 공손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고 뵙자고 했습니다. 저로서는 박근혜 3년이 수모와 치욕의 세월이었습니다. 한겨레가 지난 두 달 동안 끈질기게 추적보도 하는 걸 가슴조리며 지켜봤습니다. 한겨레 덕에 제가 명예를 되찾을 기회가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박근혜에 원한 맺힌 한 사내가 고개를 꺾어 인사했다. 그 직후 윤석열은 박근혜 특검의 수사팀장으로 인사가 났다.
#2017년 2월
특검팀의 수사가 마무리돼가던 2월 어느 날. 윤석열로부터 “소주 한잔 하자”는 연락이 왔다. 강남의 어느 한식집이었다.
첫 번째 만남이 정중했다면 두 번째 만남은 유쾌했다. 자정이 넘도록 윤석열은 박근혜 수사에 얽힌 무용담을 펼쳐 보였다. 현직 판사 두 명도 함께 하는 자리였지만 그 둘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짜릿한 복수극’을 안주로 삼아 들이키는 폭탄주. 잔을 돌리는 윤석열의 손길이 점점 빨라졌다.
나는 그날 태어나서 가장 많은 술을 마셨고, 2박3일 동안 숙취로 끙끙 앓았다. 윤석열이 ‘말술’임을 몸으로 확인한 자리였다.
# 두 차례 만남 어디쯤에 ‘불구속 수사’라는 방침이 끼어들 수 있었을까? 원한과 복수 사이에 정녕 관용이 들어설 여지가 있었던 것인가?
윤석열이 박근혜 불구속을 생각했다는 것은 2019년 4월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박근혜가 건강을 이유로 형 집행정지를 신청했을 때 이를 허가하지 않았던 사실과도 배치된다. 당시 형 집행정지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있었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윤석열을 ‘돌고래’라고 했다. 친구이니 가능한 비유이다. 돌고래의 특징 중 하나가 의리이기 때문이다. 어려움에 처한 동료를 끝까지 보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을 대하는 윤석열의 태도 어디에도 돌고래는 없다.
오히려 불구속 수사 운운하는 보도를 보며 이솝 우화에 나오는 박쥐가 떠오른다.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박쥐의 최종적인 운명은? 날짐승과 들짐승 모두에게서 버림받고 결국 컴컴한 동굴에서 혼자 살게 된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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