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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궁극의 검찰주의자 - 이연주 변호사

by 길찾기91 2021.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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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검찰주의자

 

2016년 겨울 탄핵정국 때 당시 대전고검 검사이던 윤석열 전 총장은 국정농단 취재에 앞장선 어느 기자를 청해서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고맙다. 자기가 이 나쁜 정권 아래서 정말 고생이 많았는데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거듭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특검 때에 박근혜는 애초 불구속 계획이었다고, 존경할 부분이 있는 대통령이며 수사에 대해서는 송구한 부분이 있다 합니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열린 학내 모의재판에서 검사 역할을 맡아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했다거나 혹은 판사 역할로 사형을 선고했다는 그는 이제 6월민주항쟁에서의 이한열을 못 알아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궁극의 검찰주의자는 생물 분류로는 아메바였던 겁니다. 형태가 시시각각 변하는 무정형이고, 맑은 물에도 짠물에도 흙에서도 살며, 살아있는 작은 생물을 위족으로 감싸서 먹지만 때론 썩어가는 먹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무소신과 무책임이라는 검찰정신의 정수를 이어받은 적자로서 현란한 변신과 변절이 특기인 그는 툭하면 민주주의 걱정을 합니다.

대선 출마선언에서도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하면 독재와 전제를 민주주의라 말하는 선동가들과 부패한 이권 카르텔이 판치는 나라가 되어 국민들이 오랫동안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무신념과 무책임이야말로 악이 번성하는 배지가 되어 민주주의를 위협합니다. 그의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1986년 6월 부천경찰서 소속 경찰관 문귀동이 5.3 인천항쟁 시위가담자인 권인숙을 고문한 사건에서, 인천지검 특수부 검사들은 문귀동의 독직폭행죄에 대해 결정문 초안을 두 개 작성했습니다. 하나는 대검에서 내려온 지시대로이고, 다른 하나는 수사한 결과를 정직하게 반영한 결정문입니다.

검찰은 항상 그러했습니다. 한 사건에 대해서 정반대의 두 가지 결정이 가능합니다.

안에서 검사들은 “비정상적인 성도착증 환자와 같은 자를 왜 보호하는지 그 의도를 모르겠다”며 부글부글 끓어올랐습니다. 그러나 부장검사는 검사장이 나서 주기를, 검사장은 장관과 총장이 대통령에게 직언해주기를 바랄 뿐 스스로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한 평검사는 대성통곡을 하면서 검사장실로 들어와 검사장인 김경회에게 자기들이 함께 할 터이니 용기를 내라고 합니다. 김경회는 회고록에서 그 사건을 떠올리며 본인도 “회의를 끝낸 다음 문을 걸어 잠근 채 울었다”고 하고, “거대한 조직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보잘 것 없는 하나의 물거품 같은 자신이 서글펐다”고 합니다.

이렇게 모두 도덕적 고뇌의 코스프레를 하는 것으로 양심의 가책을 날려버렸으므로 김수장 부장검사의 수사결과 발표는 이러했습니다.

“권양이 성적모욕을 당했다고 허위사실을 주장한 것은 운동권 세력이 상습적으로 벌이는 의식화투쟁의 일환으로서 자신의 구명과 아울러 수사기관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정부공권력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

“이러한 사실은 권양이 학원 의식화투쟁을 벌이다가 성적불량으로 제적 후 가출한 후 위장취업으로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어 반정부, 반체제 투쟁활동을 전개한 전력을 볼 때에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음”

한편 검찰의 불기소결정에 대해 박원순, 조영래 변호사 등 166명의 변호사가 나서서 재정신청을 하자, 김 부장검사는 가당치 않다고 평합니다. 단순폭행에 불과하다는 수사결과가 뒤집히지는 않을 것이고 문귀동에 대한 기소유예 처분이 정당하다고 강변하면서 말입니다.

문귀동이 권인숙에게 “네가 당한 일을 검사 앞에 나가서 얘기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검사나 우리나 다 한 통 속이다”라고 말했는데, 딱 그리 되었던 겁니다.

그러나 아메바와는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대하지만 위대한 척 하지도 않습니다.

1987년 1월 박종철의 시신을 처음 본 의사는 연구실로 몰려든 기자들에게 “조사실엔 욕조가 있었고 폐에선 수포 소리가 났다. 바닥에는 물이 많았다”고 말합니다. 물고문을 암시한 그의 발언은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고, 그는 검찰과 경찰에서 20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은 다음 호텔에서 일주일간 숨어 지냈습니다.

또한 시신을 부검했던 의사는 회유와 협박을 물리치고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라고 부검보고서에 기재했습니다.

두 사람은 민주주의 어쩌고 하며 비장하지도 않습니다.

“민주주의를 이뤄야겠다는 거창한 의도로 말한 건 아니었다. 환자의 상태에 대해 사실대로 얘기하는 건 의사로서 당연한 본분이다”, “직업 윤리에 따라 행동한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담담할 뿐이었습니다.

아메바들이 저 의사들처럼 정직했다면 1986년의 부천서 사건은 전두환 정권을 더 빨리 무력하게 만들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과 같은 희생이 더 없었을지도, 그 부모가 자식의 이른 죽음을 목도하고 삶이 무너져 내리는 일은 겪지 않았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메바들에게 그런 도덕적 상상력은 없으므로 마음이 괴로울 일도 없습니다.

“염소의축제”라는 소설에서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 트루히요의 암살에 가담한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유를 가질 때야만 비로소 커피 한 잔이나 럼주 한 잔도 더 맛있게 음미할 수 있다”

우리 평범한 국민들이 그 귀중한 자유를 싸워서 얻었습니다. 한국적 민주주의 또는 정의사회 구현이니 하는 분을 처바르고 영원한 권력을 꿈꾸던 독재자들의 추한 얼굴이 드러날라 치면 더 두껍게 분을 발라주던 사람들은 바로 검찰엘리트들이었지요.

그래서 궁극의 검찰주의자는 민주주의를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쩍벌과 도리도리를 걱정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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