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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 - 고등어는 죄가 없다

by 길찾기91 2020.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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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의 역사는 수렵과 함께 시작됐다. 수렵 도구가 발달할수록 인간의 먹을거리는 풍족해지고 다양해졌다. 물고기를 비롯한 조개, 게 등 해산물은 인류가 본격적인 농경문화를 일구기 전에 인류를 먹여 살린 고마운 생물종인 것이다. 호주 카카두국립공원에서 발견된 고대 동굴 벽화에는 물고기가 그려져 있는데, 그 생김새며 내장까지 정교하게 묘사돼 있어 당시 고대 인류의 수렵생활에서 물고기를 비롯한 해산물이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 역시 계절마다 다양한 해산물이 잡혔다. 해산물 없는 우리네 밥상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바다와 해양생물을 대하는 우리의 문화는 어딘지 아쉽다. 쌀을 주식으로 먹는 사회라서 농경문화는 그나마 보존되고 발전해 왔는데, 수산문화는 상대적으로 빈곤하다. 바닷물고기를 비롯한 해산물은 밥반찬으로 여겼을 뿐이고, 더욱이 신분제가 존재했던 시대에 어민들은 천하다 하여 그들의 삶을 기록하거나 고유의 문화로 인정하고 정립하지도 않았다. 수산이 그나마 주목을 받은 것은 일제강점기 회 문화가 보편화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함께 곁들이는 술 때문에 유흥의 이미지가 강했다.

 

해양생물로서 조사되고 연구된 것 역시 최근의 일이다. 주식도 아니고, 바닷가나 강변이 아니면 쉽게 발견되는 것도 아니니 주목을 받지도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해산물에 대한 정보는 검증되지도 않았고 왜곡된 것이 많다.

 

얼마 전, 미세먼지가 문제가 되자 환경부는 엉뚱하게 고등어구이가 주범이라는 웃지 못할 발표를 했다. 미세먼지 발생의 원흉을 고등어에게 돌린 것이다. 이로 인해 생선구이 식당들은 타격을 입었고, 고등어 가격 역시 폭락해 어업인들도 울상을 지었다. 사실 고등어를 비롯한 생선구이는 폐쇄된 실내 공기의 질을 떨어뜨릴 뿐 문제가 되고 있는 대기 중 미세먼지의 직접 원인은 아니다.

 

중국 베이징에 가면 길거리 꼬치구이에 술 한 잔 마시며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는 서민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꼬치구이가 2013년 중국에서 악명 높은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지적되어 '공기정화계획'에 포함된건데, 베이징 시민은 물론 그걸 바라보는 외국인조차 고개를 갸우뚱거린 일을 우리나라가 그대로 반복한 셈이다. 국가적 차원의 미세먼지 종합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싱황에 애꿎은 고등어에게 불똥이 튄 것이다. 고등어가 말을 할 줄 몰라 망정이지 사람 말을 할 줄 알았다면 나 억울하다며 땅을 치고도 남을 일이다. 또 얼마 전에는 일본 원전사고 해역에서 잡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산물을 수입하여 사회적 물의를 빚은 사건도 있었다. 이래저래 물고기가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사실 물고기는 아무 죄가 없다. 인간의 탐욕이 늘 문제다. 물고기가 사는 서식지를 파괴하고, 수산물 유통과정에서 장난을 치는 주범 역시 바로 우리 인간 아니던가. 이제 해산물에 씌운 누명을 벗겨 줄 때다.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 황선도, 서해문집, 2017.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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