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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1억 톤의 고기와 3억 톤의 분뇨 -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by 길찾기91 2020.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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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 낸 <랩걸>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호프 자런의 새로운 책이다.

호프 자런은 그가 살아온 50년간 일어난 일들을 중심으로 생태계를 살핀다. 인구, 수명, 식량생산 방식, 에너지 소비 등의 변화와 그 영향에 대한 이야기를 논문식이 아닌 편안한 문장으로 안내한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풍요로워진 건 사실이지만 그 이면의 어려운 과제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설명하는 능력.

아래 부분은 책 가운데 일부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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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학은 발전하면서 동물 질병에 대한 새로운 치료제를 내놓았고, 시장에서의 육류 거래를 위해 동물의 영양상태에 관한 지식을 많이 생산하기도 했다. 70년 동안 주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농업연구소와 실험실에서 진행된 통제된 교배 프로그램이, 동물생리학의 놀라운 변화를 지금도 이끌어가고 있다. 헌신적인 과학자 수천 명의 놀라운 연구 덕에, 전 세계에서 도축되는 모든 소와 돼지와 닭은 1969년에 비해 몸집이 20~40퍼센트 커졌다. 더 적은 개체 수로부터 더 많은 고기를 얻게 된 것은 빠른 성장, 높은 번식력, 낮은 신진대사 등 모순적인 특징들의 당황스러운 총합에 수여되는 의심스러운 상이다.

20세기 들어 모든 사람에게 어린 시절의 의미가 변했겠지만, 송아지만큼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진 경우도 없다. 1950년대에, 송아지는 생후 3개월이 지나야 45킬로그램을 넘어서는 것이 보통이었다. 오늘날은 태어난 지 50일 만에 90킬로그램을 넘어선다. 오늘날 젖소는 매일 20리터의 우유를 생산하는데 이는 50년 전의 두 배가 되는 양으로, 다른 존재에게 젖을 먹이느라 시간을 보내온 누군가는 크게 감사할 통계 수치라 하겠다.

미국의 모든 가족은 변했는데 그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게 변했다. 특히 어미 돼지의 경우 더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1942, 돼지우리에서 젖을 먹는 한배 새끼 돼지는 다섯 마리였는데 오늘날에는 열 마리로 늘어났다. 여기에 새끼를 1년에 한 번이 아니고 두 번 낳는다는 사실까지 고려해야 한다. 평범한 로스트치킨에 사용되는 닭은 60년 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물체인데, 1957년에 0.9킬로그램짜리 닭을 키우는 데 필요했던 사료의 양이 오늘날 4.5킬로그램짜리를 키우는 데 필요한 양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중략)

손이 덜 가는 농장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살을 앞둔 튼튼한 수소는 280일의 임신 기간 동안 특별한 먹이를 먹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젊은 암소에게서 태어난다. 송아지가 태어난 후에는 거세가 필요하고 그 후 18개월 동안 건초를 운반하고, 배설물을 삽으로 모아 퇴비를 만들고, 목초지를 옮기고, 울타리를 보수하고, 물을 대고, 벌레를 잡고, 마지막으로는 도살을 위해 살을 찌워야 한다.

(중략)

육류를 생산하려면 엄청난 자원 투입이 필요하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양의 자원이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 집중 투입되는 과정이라 하겠다. 인간이 지구상에서 사용하는 담수의 30퍼센트는 고기를 얻기 위한 가축의 생산과 사육, 도살에 쓰인다. 감금 상태에서 도축을 기다리는 250억 마리의 소와 돼지, 닭에게는 엄청난 양의 약이 주어진다. 1990년만 해도 미국에서 사용된 항생제의 3분의 2가 고기를 얻기 위해 동물들에게 투여됐다. 이는 명백히 성장 촉진과 폐사율 저하를 위한 것이었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 두 가지 목적 중 어느 것에도 효과를 내지 못했다.

이런 약 대부분은 동물의 몸속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배설물과 섞여 방출되어 지표수에 스며들어 농장을 떠나게 된다. 항생물질은 지하수로 흘러들어 미생물에게 연습훈련을 제공해준다. 땅속 깊은 곳의 박테리아는 몇 세대에 걸쳐 시행착오를 겪으며 유서 깊은 기술을 구사해 약제를 사용한 인간의 방어에 저항할 방법을 연구한다.

육류 생산을 위해 동물에게 투입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곡류, 정말이지 엄청난 양의 곡류다. 우리는 매년 16억 톤이 넘는 곡류, 대부분의 경우 옥수수, , 밀을 가축에게 먹이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가축이 먹은 곡류는 살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일에도 사용된다.

농장의 동물들이 움직이고 숨을 쉬고 소리를 내고 배설할 때마다 근육이 수축하고 뉴런이 발화하는데, 이때 먹이를 연소해 얻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움직임을 억제하면 음식을 통해 얻은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기에 케이지 닭장이나 암퇘지용 철제 우리의 사용이 늘어났는데, 그러면 공간이 극도로 제한되어 동물들은 고개를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돌리지도 못하게 된다. 이런 새로운 고안물 안에서조차, 동물에게 3킬로그램의 곡물을 먹여서 얻는 고기는 0.5 킬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인간이 10억 톤의 곡물을 먹어 소비하는 동안 또 다른 10억 톤의 곡물이 동물의 먹이로 소비되고 있다. 그렇게 먹여서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1억 톤의 고기와 3억 톤의 분뇨다.

(중략)

오늘날 이루어지는 도살 행위가 50년 전보다 더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훨씬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맞다. 생물종의 하나인 인간이 고기를 얻기 위해 올해 도살한 동물의 수는 1969년에 비해 여섯 배나 많은데, 그중 10퍼센트는 미국 내에서 일어난다.

(중략)

만일 미국인들이 붉은색 살코기와 가금류 섭취량을 매주 1,800그램에서 900그램으로 절반 정도 줄인다면 15,000만 톤의 곡류를 절약할 수 있다. 이렇게 육류 섭취를 줄이는 것이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육류를 매주 900그램 정도 먹는다는 것은 많은 선진국의 소비와 비교할 때 상당한 양으로, 우크라이나의 평균 육류 소비량보다 높은 수준이다. 미국에서 꼭 필요하지 않은 육류를 만들어 내느라 쓰이는 곡류를 절약할 수 있다면 전 세계 식량용 곡류 공급이 15퍼센트 정도 높아질 것이다.

만일 (북미와 유럽, 이스라엘, 호주, 뉴질랜드, 일본을 포함하는) OECD 36개국이 함께 육류 소비랑을 절반으로 줄인다면 세계의 식량용 곡물 생산량은 40퍼센트 가까이 늘어날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도 생각해 보자. OECD 국가들이 매주 하루만 '고기 없는 날'을 정해 지킨다면, 올 한 해 배곯는 사람들을 모두 먹일 수 있는 12,000만 톤의 식량용 곡물이 여분으로 생기게 된다.

우리는 영양실조로 시달리는 8억 명 이상의 인류와 이 지구를 나누어 쓰고 있다. 이들은 '일상 활동 유지에 필요한 식이 에너지가 최소 수준 이하'에 해당하는, 다른 말로 굶주리고 있는 아이이고, 여성이고, 남성이다. 누군가는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상황에서 살아야 하고 또 이런 상황에서 죽어야 한다. 굶주림은 지구의 공급 능력 때문이 아니라, 생산한 것을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우리의 실패로 등장한 문제다. 육류를 생산하느라 지구상의 먹을 수 있는 곡물 3분의 1이 사라지는 것을 빼고도 우리는 여전히 75억 인구가 매일 2,900칼로리씩 섭취할 수 있는 정도의 음식을 생산하고 있다. 이는 USDA가 제시한 건강한 삶을 위해 필요한 1인당 에너지 필요량을 공급하고도 남는 정도다.

전 세계 인구 증가와 관련한 가장 보수적인 과학적 예측으로 추산해보면, 2100년에 세계 인구는 100억 명에 이를 것이다. 지금보다 적어도 25억 명이 더 추가된다는 이야기다. 이는 당신과 내가, 나머지 세상 전부가 연간 2,000조 칼로리를 추가로 생산하고 이를 공정하게 배분하는 방법을 찾아내어 대형 기근을 피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8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인류는 전에도 지금과 똑같은 혼란에 빠진 적이 있는데, 세계 인구가 40억을 넘을 것이 명백해져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 생산량을 늘린 1950년대였다.

(중략)

얼마 되지 않는 고기와 엄청난 양의 배설물을 얻느라 우리가 매년 곡물의 90퍼센트를 가축 사료로 적극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조만간 재고해야 할 것이다. 미래는 상당 부분 불명확하지만, 사람들은 무언가 먹어야 한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전체 인구가 늘어가고 있기에, 그들을 모두 먹일 수 있는 방법을 일찌감치 찾아 나설 필요가 있다. 지금 이 문제를 무시한 채 포크를 손에 들고 고기 한 조각을 더 먹는다면, 매일 세 번씩 손자들보다 우리 자신을 선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김영사, 2020, 7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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