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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형사 재심 청구에 관한 유족 입장]
유족 대표 김성신 (김재규 셋째 여동생 김정숙의 장남)
김재규 장군 유족의 자격으로서, 우리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꼭 40년이 되는 올해, 10.26 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합니다.
하지만 유족이 10.26 재심을 통해 궁극적으로 구하고자 하는 바는, ‘판결’이기보다는 ‘역사’입니다.
10.26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크게 바꾼 역사적 사건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엄청난 역사적 사건을 두고, ‘민주주의를 위한 혁명’이었는지, 아니면 ‘권력욕을 위한 행위’인지를 설왕설래하는 수준에서 우리는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무려 40년을 허비했습니다.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보도는 철저히 통제되었고 재판 역시 당시 권력의 부당한 감시와 외압 속에서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우리 국민에겐 10.26의 진실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나 정보가 거의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10.26에 대해 어떤 입장이든 간에 그것은 모두 ‘짐작’의 수준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역사란 짐작일 수 없습니다. 역사가 필요한 이유는, 과거를 비추어 지금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치관’을 세우고, 그것으로 국가의 미래와 희망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역사는 후대의 끝없는 재해석을 통해 살아있는 역사가 됩니다.
즉, 김재규라는 인물이 당시에 어떤 생각과 마음이었는지를 짐작하거나 단정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재심신청은 ‘10.26에 대한 짐작과 단정을 대한민국의 역사로 전환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유족들은 판단했습니다. 새로 발굴된 당시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10.26을 역사로서 해석해볼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옳다고 신념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가망이 없는 싸움에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 그것을 ‘희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충성’이란, 국민과 나라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봉건 시대’에는 왕이라는 한 사람을 위한 희생이 곧 충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국민이 곧 국가’인 ‘민주공화국’에서는 권력자 개인을 위한 희생은 충성이 아니며, 오히려 그것이 곧 국민과 국가에 대한 반역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10.26은 5천 년 역사의 이 나라에서 ‘충성의 전근대적 개념’을 붕괴시킨 사건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10.26이라는 사건을 기점으로 ‘충성’의 개념은 '국민과 국가,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으로 그 의미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즉 10.26은 국민주권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달리하도록 만든 상징적 사건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10.26은 바로 이런 면에서도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유족들은 생각합니다. 저희 유족은 이번 재심을 계기로 10.26이 다시 한번 대한민국 국민의 기억 속에 소환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재심의 과정에서 10.26과 김재규라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논의의 수준이 진화하고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해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깊이 생각하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5월 26일 재심신청유족대표 김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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