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든: 세상을 바꾸는 힘. 2020.
감독 앤드류 헤클러, 출연 포레스트 휘태커, 가렛 헤드룬드,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등
영화를 보다가 오늘을 생각했다.
영화는 시골의 한 마을 이야기다. 겉으로는 공존하고 지내는 곳이었으나 KKK는 자신들의 지분 또는 영역을 넓히려 하고, 흑인들은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결국 충돌이 일어날 것은 자명한 일.
백인들은 강자의 위치에 있지만 여전히 흑인들의 구역 또는 확장을 불편해한다. 그리고 강력한 무력을 사용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반면, 흑인들은 그 와중에도 사랑이 기저에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싸움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 형국. 과연 이 싸움은 어떤 결말을 가져오게 될까. 이후엔 전혀 다르게도 극적인 분위기도 나오고 종교적 모습이 나오며 이른바 감동 영화로 자리매김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오늘의 우리 현실에 대입해 보자.
이른바 강자 또는 기득권인 이들은 약자 또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들을 몹시 불편해 한다. 그렇기에 싹을 밟으려 하고, 권력을 잡으면 매우 강력한 방법을 도입한다. 주저함이 없다.
반면 사회 전체적으로는 약자에 속하는 진보는 매우 조심스럽다. 반발이나 역풍을 우려하여 매우 점진적인 한걸음을 내딛을 뿐이다. 물론 그렇게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겠지만 어떤 이들에겐 매우 답답한 현상일 뿐이다. 그래서 돌아서기도 한다.
그래서 진보의 어느 부류는 매우 강력한 독재적 상황을 연출하기 원한다. 때론 나도 가슴으로 동의하며 응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 가만히 보면 매우 보수적이거나 점잖은 스타일인가보다. 그보다는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것을 원하며, 느려 보여도 그 길을 걷다 보면 이루어지는 날을 볼 것이라는 믿음으로 사니 말이다.
사회는 매우 넓은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 좌측의 끝에서 우측의 끝까지 얼마나 많은 다른 스타일들이 존재하는지 가만히 돌아 보자. 한 사안에 대해서도 얼마나 많은 해법 또는 해석이 있는지 다들 알 것 아닌가. 그 와중에 이른바 보수는 작은 공통의 목적만 통한다면 이전에 적이었던 이들과도 손을 잡고 기어이 빼앗아 간다.(이 부분을 존경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가 지난 주에 친구에게 욕 엄청 먹었다. 그래 너 잘났다. ㅋ) 반면 진보는 작은 차이에도 전부를 부정하며 척을 지고 만다. 그러니 권력 획득이 드물 수밖에.
정답은 없다. 다만 작은 다름에 주목하여 큰 같음을 방기하여 전체적인 승리의 시간과 기회를 버리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간절하다.
우화가 있다. 물에 빠진 동료를 구하려는 동물들의 이야기. 손에 손을 잡고 끌어내려 애쓰지만 하나하나 더해져도 이루어지지 않던 구출이 마지막에 아주 작은 동물의 손보탬에 의해 구출이 이루어지는 그런 우화. 그러면 여기서 마지막에 힘을 보탠 생쥐가 가장 중요한건가 아니면 모두의 힘모음이 중요한건가. 그냥 크게 봐서 완전한 적이 아니라면 어지간하면 손을 잡자. 큰 변화를 만들고 그 이후에 지분 다툼을 하는게 맞지 목적을 이루기도 전에 지분 다툼부터 하면 결코 이루지 못할 목적은 어찌할 것인가.
몹시도 적응 안되는 선거의, 몹시도 적응 안되는 후보를 선택한 유권자로서, 이 마음이 매일 든다.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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