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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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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고등학교 졸업
- 2016.05.~2020.05.제20대 국회의원
- 2014.07.~2016.04.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
- 2014.05.~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 2013.04.~2016.05.제19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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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
- 2010.06.~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 2010.05.~2011.05.한나라당 원내대표
- 2008.05.~2012.05.제18대 국회의원
- 2007.10.~한나라당 최고위원
- 2004.~2008.05.제17대 국회의원
- 2000.~2004.제16대 국회의원
- 1996.05.~2000.05.제15대 국회의원
- 1994.~제48대 내무부 차관
- 1993.~대통령실 민정수석 비서관
- 22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중영도 출마를 선언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15일 공천 신청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김 전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부산 중영도 선거구에 등록한 후보들을 한 달간 지켜보니 모두 훌륭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돼 이제 제 역할이 끝났다고 판단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공천이 계파공천, 전략공천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는 여론이 팽배한 모습에 선거 패배의 가능성을 보았다”며 “이에 1월 1일 KBS 라디오 대담부터 시작해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서 상향식 공천이 최고의 정치 혁신이라는 주장을 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부족함을 느껴 1월 15일 출마선언을 하고 한 달간 열심히 선거운동을 해 오던 중 공관위에서 시스템 공천을 정착시켜 잘 진행이 되고 있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낀다”며 “당의 승리를 위해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겠다”고 전했다. - 부산일보 2024.2.15
- 국민의힘 전신인 새무리당 대표를 지낸 김무성 전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 영부인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의 이른바 명품가방 수수 의혹 논란에 대해 "깨끗하게 사과하시면 이것은 국민들 마음에 수용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에 대해서는 당내에서 제2부속실 설치와 특별감찰관 임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김무성 전 대표는 26일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뉴스를 보니 김건희 여사께서 전해지는 말로 상당한 수준의 사과 발언을 지금 하고 계시다"며 "기왕 그렇게까지 언론에 보도가 될 정도 같으면 그냥 깨끗하게 사과하시면 국민들 마음에 수용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24일 TV조선에 보도된 "사과를 해서 사안이 해결된다면 천번이고 만번이고 사과를 하고 싶다"는 발언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표는 "국민들의 마음이라는 것은 마치 우리 부모님의 마음과 같아서 '본의 아니게 이런 잘못된 결과가 나왔으니 용서해 달라' 이렇게 말하면 부모의 마음으로 다 받아들여지게 돼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야권에서 수사 이야기가 나온다'는 질문이 이어지자 김 전 대표는 "그런 것은 국민 판단에 맡겨야 한다"며 "야당이라는 것은 원래 그렇게 과한 주장을 하는 것 아닌가"라고 답했다. 그는 공천 과정에서 불만을 가진 의원들이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에서 이탈 표를 던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공천에 탈락한 분들도 나와 갖고 당론 투표에 응하는 것을 제가 목격한 적이 있다. 그런 우려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대표는 '김건희 리스크'에서 촉발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간 갈등에 대해서는 "외람된 말씀이지만 양쪽 다 정치 경험이 부족한 데서 오는 문제"라며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중재자들이 있지 않나? 이 중재자들의 정치력 부족 때문에 오는 문제"라고 평했다. '공천 국면에서 갈등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는 질문에 그는 "정당이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특히 공천은 민주적 상향식 공천을 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고 했다. - 프레시안 2024.1.26
-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가 15일 오는 4월 총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김 전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정치 경험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선거 경험이 없는 분들”이라며 공천 파동 가능성을 우려했다.
김 전 대표는 이날 부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랜 번민 끝에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부산 중·영도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김 전 대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정치권이 비민주적으로 퇴보하고 있다”며 “타락한 정치와 국회를 바로잡아 합의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를 복원시켜야 한다는 공적인 사명감으로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2020년 정계 은퇴를 선언한 지 4년 만의 번복이다. 김 전 대표는 기자들에게 “제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후 정계를 은퇴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후선에 있으면서 지켜본 정치권은 목불인견의 모습이었다”며 “누군가는 잘못된 정치권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비분강개하는 마음으로 출마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 전 대표는 ‘컷오프(공천 탈락)되면 받아들일 것이냐’는 기자들 질문에 “마땅한 이유가 있어야 수용하는 것이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저항할 수밖에 없다”며 “분열된 공천은 자중지란이 일어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는 ‘무소속 출마까지도 고려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도 “부당한 공천이 있는데 저항하지 않으면 공인될 자격이 없는 것 아니냐”고 답했다.
김 전 대표는 “우리나라는 정치적 분단상태”라며 “이쪽에서 저쪽으로 절대 안 넘어간다. 양 진영 중 분열 공천하는 곳이 지게 돼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정치 경험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선거 경험이 없는 분들이다. 제가 자꾸 이런 이야기(공천 분열 우려)를 해서 주의를 환기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 2024.1.15
-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가 4월 총선 출마 여부와 관련해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는 이런 타락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역할을 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굳혀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는 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사실상 결심을 굳힌 것 아니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마지막 수순이라는 게 있다. 통보할 때 통보하고 또 지역에 가서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유권자들에게 상의하는 그런 과정이 있어야 된다"면서 "정치라는 건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6선 의원 출신의 김 전 대표는 19, 20대 의원을 지낸 부산 중·영도 출마를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어 '과거 70세 이후에는 선출직에 안 나서겠다고 한 발언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것 때문에 지금 결심을 좀 망설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1951년생인 김 전 대표는 72세다.
김 전 대표는 "가족과 많은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게 제일 큰 행복이란 걸 비로소 깨닫게 됐고 그래서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했는데, 정치가 더 좋아지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급격하게 더 나빠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매일신문 2024.1.8
-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내정됐다고 여권 관계자가 18일 밝혔다. ‘알박기’ 논란에 휩싸였던 전임 수석부의장인 이석현 전 국회부의장은 전날 대통령실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 관계자는 “이미 오래전 윤석열 대통령이 김 전 대표를 수석부의장으로 점 찍었다”고 전했다.
민주평통은 평화 통일 달성을 위한 정책 수립 등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자문하는 헌법기관이자 자문 기구다. 민주평통 의장은 대통령이 맡는다. 수석부의장은 통상 장관급 이상으로 분류되고, 그간 다선 의원이나 원로 혹은 대통령 측근들이 주로 자리를 맡았다 - 중앙일보 2022.8.18
- 별명이 ‘무성 대장(무대)’인 김 전 대표는 여권의 선 굵은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끈 상도동계의 막내 격으로 정치에 입문해 6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 당시 대표를 돕는 등 친박 핵심이었지만, 2010년 5월 한나라당 원내대표로 선출되는 과정에서 친박계와 멀어졌다. 하지만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지지율 위기를 겪자 총괄선대본부장으로 투입돼 대선 승리에 일조했다.
2014년 7월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는 친박계 핵심인 서청원 전 의원과 치열한 경쟁 끝에 대표로 선출됐지만, 박근혜 청와대와는 줄곧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다는 평가다. 반면 2015년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28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주가를 올리기도 했다.
2016년 새누리당 총선 공천 과정에서 ‘진박 공천’ 논란이 일자 김 전 대표는 공관위 추천장에 대표 직인 날인을 거부하며 이른바 ‘옥새 파동’을 벌였다. 그해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당초 전망과 달리 민주당에 1당 자리를 내줬고, 김 전 대표는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후 김 전 대표는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등 정치 가도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 중앙일보 2022.8.18
- 1951년 부산에서 아버지 김용주와 어머니 방연숙 사이에서 태어났다.
YS를 도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며 정계에 입문하여 상도동계가 되었으며, 민주화추진협의회에도 참여하였다. 1986년에는 민주화추진협의회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임되었고, 1985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이사직을 역임했다. 1987년에는 통일민주당 제13대 대선 대책본부 재정국장이 되었는데, 후보단일화 실패로 인해 당시 통일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던 김영삼은 선거에서 2위로 낙선하였다. 같은 해에 통일민주당 총무국장, 당 기획조정실 차장을 역임하였고, 1989년에는 국회 행정실장을 역임하였다.
1990년 3당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김영삼, 김덕룡 등과 함께 민주자유당 당원이 되었다. 이후 민주자유당의 의사국장과 의원국장 등을 지냈다. 1992년에는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대선 후보 추대대책위원회의 총괄국장을 맡았다. 1993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행정실장,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등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1994년에는 대한민국의 제47대 내무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1996년에 신한국당 소속으로 제15대 총선에 출마하여 부산 남구 을에서 당선되었다.
1998년 11월 서울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李胤承부장판사)는 3일 TRS(주파수 공용통신)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1996년 5월에 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이 구형된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부산 남을)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죄를 적용,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및 추징금 2천만원을 선고했다.
2005년에는 민주화추진협의회 회장 및 한나라당의 사무총장이 되었다. 2007년 제17대 대선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어 이명박 선거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2007년 11월에는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되었다. 이후 제18대 총선에서 친박으로 분류되어 공천에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그 해 7월 한나라당에 복당하였다.
2010년 5월부터 2011년 5월까지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냈고, 그 해 6월 대한민국 국회의 운영위원회 위원장, 국회의원 야구단 이구동성 단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한나라당의 당명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이 바뀌어,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이 되었다. 2010년에는 대한민국 국회의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정보위원회 위원을 맡으면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한중 의원외교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12년에 치러진 제19대 총선에는 또다시 공천에 탈락하여 출마하지 못하였으나 같은 해 12월 치러진 제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이 되어 새누리당의 대선 승리에 기여하였다. 이듬해 4·24 재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부산 영도구에서 당선되며 국회로 복귀하였다. 2014년 7월 14일에 제3차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되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서는 일명 '옥새런'이라 불리는 공천 파동이 일어났다. 친박계와 비박계 간에 공천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친박 성향의 이한구를 중심으로 한 공천관리위원회는 서울 은평구 을, 서울 송파구 을, 대구 동구 갑, 대구 동구 을, 대구 달성군에 친박 후보들을 단수 추천하였다. 그러나 비박으로 전향한 김무성 대표는 "당헌ㆍ당규를 위반한 공천장에는 도장(대표직인)을 찍어주지 않겠다"며 이 5곳의 도장 날인을 거부하였다. 최종적으로는 서울 은평을, 서울 송파을, 대구 동을 3곳은 무공천 지역구가 되어 비박 후보들이 출마하게 되었고, 나머지 2곳은 친박 후보들이 출마하였다. 2016년 4월 14일, 4.13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한 결과를 두고 20대 총선 결과는 새누리당이 초래한 것이라고 하며 새누리당 선거 참패에 모든 책임을 지고 당대표에서 사퇴하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나게 되자, 2016년 11월 박근혜에 대한 탄핵 추진을 시사했다.
이후 바른정당에 합류하였으나,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의 사퇴 이후 바른정당의 진로를 놓고 유승민 의원과의 갈등이 있었다. 유승민 의원은 자강론을 주장해온 반면, 김 의원은 자유한국당과의 보수통합론을 주장해왔다. 의원 만찬에서 유승민 의원과 키스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으나, 김 의원은 유승민 비대위 체제에 반대했다. 결국 2017년 11월 김 의원은 "사회 각계각층, 보수우파 국민들, 보수 시민사회 단체들과 함께 보수대통합을 이뤄서 좌파정권의 폭주에 대항하도록 하겠다"며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였다.
2018년 8월에는 "공화주의 정신에 입각해, 이데올로기가 아닌 보수라는 틀에서 벗어나 진정한 우파 정치를 만들어가야 한다."며 자신의 정치 철학을 설파했다. 그러면서 "공화주의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독주를 막을 수 있다"고 하였다. 공화주의는 유승민 의원도 내세우는 정치철학인이나, 두 사람이 중점을 두는 부분이 다르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도서에는 공화주의를 "군주 독재에 반하는 인민 주권에 의한 공동의 정치 형태"와 "사적 이익보다 평등을 목표로 한 공적 이익을 중요시하는 도덕 철학" 2가지로 정의했는데, 김 의원은 전자에, 유 의원은 후자에 중점을 두고 있다.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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