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성 목사의 리영희상 수상소감 전문
부족한 제게 리영희 선생님의 상을 받는 영광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그러나 교회 일보다는 환경을 지키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환경단체에 속한 환경운동가는 아닙니다.
글과 기사를 써서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일을 합니다.
또 그렇다고 언론사에 속한 기자도 아닙니다.
목사도, 환경운동가도, 기자도 아닌 박쥐같은 인생을 살아온 지 벌써 24년째입니다.
오늘 리영희 재단에서 지난 제 걸음들을
‘진실을 추구하며 우상을 깨트리는 용기’로 인정해주셨다는 사실에
염치없지만 기쁜 마음으로 상을 넓죽 받았습니다.
저는 십자가 달린 건물이 아니라,
신음하는 대한민국의 강과 산과 바다를 제가 돌봐야 할 교회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 누가 인정해주는 것도 아니지만,
자칭 ‘대한민국 교회’의 담임목사야~라며 오늘도 전국 곳곳을 열심히 누비고 있습니다.
성경에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린 소년 다윗은 전쟁에 나갈 ‘의무’도 ‘책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우상 앞에 분노하고 스스로 달려가 그를 무너트렸습니다.
목사인 제가 환경 일을 해야 할 의무나 책임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꼬마 소년 다윗처럼
생명에 대한 ‘사랑’과 불의를 향한 ‘분노’가 제 안에 있었나봅니다.
꼬마 다윗에겐 전쟁에 어울리는 날카로운 칼과 창이 없었지요.
보잘 것 없는 물맷돌로 아무도 감당하지 못하던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저 역시 단체도, 조직도, 교회도 없는 한 개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제겐 거대한 우상들을 무너트릴 수 있는
‘글’과 ‘사진’ 그리고 ‘열정’이라는 무기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국토가 작다하지만,
전국의 현장들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와 며칠을 끙끙거리며 기사 한편을 써내면 온몸의 진액이 다 빠집니다.
그러나 이 힘든 일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진실을 알리기 위해 글을 써야한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로써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한다’시던
리영희 선생님의 말씀이 제게 한줄기 빛이요, 위로였습니다.
제가 쓴 기사엔 ‘이게 진짜 기사다. 이건 기사가 아니라 논문이다’라는 댓글들이 자주 달립니다.
이는 “내게 글 쓰는 작업의 90%는 자료수집이었다”던
리선생님의 가르침에서 글쓰기를 배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학을 공부한 제가 쓰레기시멘트, 4대강사업, 산림정책, 난개발, 신재생에너지 등의 다양한 분야의 우상들과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발로 뛰는 현장조사와 함께, 리영희 선생님이 강조하시던 ‘치밀한 자료수집’ 덕이었습니다.
특히 “빙산의 일각 아래 숨어있는 거대한 진실의 덩어리를 찾아내라”던 리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제 기사는 다른 언론들이 지나쳐가는 작은 것에서 찾아내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언어로 풀어낸 빙산 아래 숨겨져 있던 진실의 덩어리들이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던 제 인생의 계획표엔 지금의 이 길이 없었어요.
그러나 이젠 자칭 [대한민국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어
이 땅의 강과 산과 바다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제 삶 자체가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교회를 바꾸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고자 오래전 강원도 영월 서강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아셨던 것이지요.
제 성격은 고요한 산 속에 홀로 머물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날마다 우상과 싸우는 전쟁터에 서 있는 꼴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자료를 찾고 글을 쓰는 것이 고요 가운데 그분을 찾는 기도요, 수도생활이다~라고요.
오늘, 아직도 많이 부족한 제게 이 영광스런 리영희 상을 주신 이유를 잘 압니다.
제가 많은 일을 해내서가 아니지요.
앞으로 아무리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더 힘을 내서
이 길을 달려가는 또 하나의 작은 리영희가 되라는 응원과 격려로 이 상을 주신 것이지요.
1999년8월, 영월 서강을 지켜내며 멋모르고 시작한 길이었습니다.
벌써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이 상을 받도록 추천해주신 박종덕 선생님이 제게 환갑 축하상이라 하시더군요.
제가 어느 틈에 흰 머리카락 가득한 60이 되었지만,
여전히 제 마음은 우상들과의 힘찬 전투를 해나갈 수 있는 청년입니다.
지금도 작년부터 이어 온 고발 한 건과 다음 주 부터 시작되는 시멘트업계와의 재판 한 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두려워하거나 쫄기 보다는 오히려 즐기고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쫄고 있는 이들은 제가 아니라, 저를 고발하고 소송을 건 우상들이겠지요.
오늘 이렇게 큰 응원으로 힘을 실어주셨으니,
앞으로 70, 80이 되어도
제게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는 그날까지
우상을 깨트리고 진실을 밝혀가는 이 멋진 생명의 길을 결코 멈추지 않겠습니다.
오늘 이 기쁜 자리를 하늘에서 바라보시는 리영희 선생님과
재단 관계자 여러분들과,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022년12월7일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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