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비용 ‘폭탄 돌리기’ 여기서 멈춰야
위기극복 해법은 요금정상화 뿐...사회적 약자는 각별히 챙겨야
- 내년 정치권 총선체제 전환, 전기·가스요금 정상화 기회는 올해 연말 밖에 없어
- 여·야·정 국회 특위 만들어 요금, 전기, 가스시장 왜곡문제 개선안 강구해야
- 내년 예산안에 긴급 재난지원금 조성해 전기, 가스요금 부담 완화해야
국회 산자위 한전채 확대개정안, ‘5년 일몰제’ 도입 외 바뀐 내용 없어
15일 한국전력공사(한전) 발행 채권의 한도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 대비 6배로 늘리는 한전법 개정안이 국회 산업자원통상위원회를 통과됐다. 지난 8일 이례적으로 본회의에서 부결된 법안과 비교해 5년 일몰(한시 적용) 조항을 추가하고, 한전과 산업부의 재무 개선 노력을 촉구하는 내용을 명기했다. 재무개선 노력 촉구는 명기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부재하다. 지난 본회의에서 부결된 법안 보다 한발 나갔지만 한전 부실화를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전이 제시한 고강도 자구노력도 매년 누적되는 한전의 적자에 비하면 미미하다. 장부 재평가를 통한 자본확충을 제외하면 5년 동안 자산매각, 비용절감 등을 통해 7조원 규모의 재정 건전화 계획인데, 한전의 올해 적자만 34조원으로 전망된다. 결국 전력시장 개혁없이는 한전의 재무개선에는 한계가 크다.
막연한 정부계획과 달리 전기요금 정상화 기회는 올해 연말뿐
한전은 당장 올 연말 6배의 한전채의 한도를 확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을 경우 전력구입대금 지급 불능과, 차입금 상환 불가 위험만을 강조하고 있다. 정작 한전채 증가로 인해 발생하는 한전의 적자와 부채를 누가,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은 없다. 게다가 한전사채발행 한도 확대는 채권시장의 블랙홀이 되어 국내 경제 전반의 위기를 부르고 있다. 산업부와 한전은 15일 국회 상임위 보고에 “전기요금 정상화 노력을 통해 내년이나 2024년경 한전 흑자전환을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2024년 4월에 있을 총선 일정과 그에 따른 정치권의 총선 체제 전환을 감안한다면 전기요금을 정상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는 올 연말밖에 없다.
내년 더 치열해질 세계 LNG 도입 경쟁
지난 12일, 국제에너지기구 파티 비롤 사무총장은 내년 유럽이 올해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량인 60bcm(600억세제곱미터)이 완전히 중단되어 공급부족사태를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천연가스 60bcm은 LNG 약 4천7백만톤으로 한국의 연간수입량에 해당한다. 다만 유럽의 에너지효율개선, 절약 등의 조치로 실제 부족분은 그 절반인 약 30bcm으로 전망했다. 게다가 올해 중국의 코로나 봉쇄 조치와 경기침체로 중국의 LNG수입량이 전년 대비 약 2천2백만톤 감소되었으나, 최근 봉쇄 조치 해제로 내년 중국의 LNG수입량이 예년수준으로 회복될 전망이다. 즉 내년 유럽과 중국의 LNG 수입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며, 한국의 LNG도입비용은 올해보다 더 늘어날 전망이다(참고자료 1).
한전 적자 혹덩어리만 키우고 있는 가스공사
이번 한전적자와 한전채 확대 사태에서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한국가스공사(가스공사)의 도시가스비용 인상분을 한전자회사와 민간발전사에게 떠넘기기다. 현재까지 널리 알려진 인식은 가스공사의 민수용(주택용, 일반용) 도시가스 원가 상승분을 요금에 반영하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적자를 ‘미수금’으로 누적시키고 있다는 점뿐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가스공사가 미수금을 줄이기 위해 도시가스 원가 상승분 상당량을 발전용 LNG에 전가하며 도매 전기요금(SMP)을 폭등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가스공사가 지난해 말 가스공급규정 개정을 통해 고가의 현물LNG 도입비용 100%를 발전사들에 전가하고, 민수용 LNG에는 저가의 장기 계약물량 비용을 적용해왔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2).
전력, 가스를 물가관리 수단으로 여기는 개발도상국 관행 끝내야
이미 지난 10여년 전부터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구, 국제에너지기구는 에너지요금 보조가 가격의 수요관리기능 왜곡, 소득 역진성으로 인한 빈부격차 확대의 문제를 일으키기에 요금보조를 중단하고, 정부재정으로 직접 지원할 것을 여러 차례 권고해왔다. 이를 무시하던 이집트는 지난 2013년 국제 고유가상황에서 에너지공기업들을 통한 전기, 가스 요금할인으로 무려 35조원(현재가치)의 적자를 누적시켜, 이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국제통화기구(IMF)와 세계은행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 세계은행은 당시 이집트의 에너지요금 할인 혜택이 대도시기준 소득상위 20%에게 하위20% 대비 8배나 더 많이 돌아갔다고 평가했다.
개발도상국 시절 정책목표에 따라 설계된 현재의 전기, 시장구조에서 정부와 국회는 전기요금, 가스요금을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할인해야 보상받는 유인을 갖고 있다. 사실 개발도상국과 동유럽 대부분이 부실한 복지를 에너지공기업들의 요금할인으로 메우려는 관행을 갖고 있으나, 이처럼 시장과 정부의 역할을 혼동하는 정책이야말로 그들이 개도국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요인이다. 미증유의 에너지위기 앞에 지금과 같은 관행은 이집트 구제금융 사례같은 국가재난만 부를 뿐이다. 이제는 성숙한 한국 경제와 사회 수준에 맞게 전기와 가스는 시장으로 보내고, 정부는 복지확충으로 제 역할을 찾아야 한다.
여야가 정작 서둘러야할 것은 내년 예산안에 재난지원금 반영
정부·여당은 지난 대선 이후 전기요금 정상화 책임을 ‘탈원전 탓’으로 돌리기, 도시가스비용 상승분을 발전용으로 떠넘기기 방치, 한전 적자를 채권시장으로 떠넘기기만 했을 뿐, 정작 서민들의 생활고를 경감시키기 위해 필요한 재난지원금 조성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다주택 보유세 감세 포함 ‘부자세’ 감세와 긴축재정으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정부와 국회는 내년 예산안에 지금이라도 에너지비용 원가상승으로 인한 서민과 기업의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재난지원금을 반영해야 할 것이다. 야당인 민주당의 책임도 자유롭지 않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집권당이었음에도 비전과 목표에 비해서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는 더뎠다. 탈원전 정쟁에 휩싸이며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음에도 전기요금 정상화에는 소극적으로 행동했다.
이제 정부와 국회는 채권시장을 볼모로 폭탄 돌리기를 당장 멈춰야 한다. 땜질식 정책이 아닌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정부와 국회에 한전법 ‘한전채 확대 개정안’의 전제조건으로 다음의 대안을 긴급히 제안한다.
1) 총선체제 전환 전인 올해 말, 전기, 가스요금 정상화(내년 1분기에 100%반영)
2) 전기요금의 결정은 기재부에서 떼어 내어 전문 독립규제기관에 전권 위임
3) 전력, 가스시장에 경쟁을 도입해 불필요한 낭비 제거
4) 재생에너지 인허가절차를 최소화시켜 에너지 자립률 개선
5) 에너지요금 부담을 겪는 중소기업과 가정에게 긴급재난금 지원을 위한 예산편성
이와 같이 복잡한 쟁점들을 시급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향후 국회의 한전법 ‘한전채 확대 개정안’ 처리 이후 여·야·정 특위와 특위 내 전문위를 만들어 함께 책임을 지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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