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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 위해 사들이는 수상한 면죄부
미래에 극소수만 비행기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그건 과연 나쁜 일일까? 이런 게 엘리트주의적 발상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간과하는 점이 있다. 바로 저소득층들도 해외로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요금이 낮아야 한다는 요구를 개발도상국 주민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아 애초에 비행기 여행이 선택지로 주어진다는 것은 특권을 누리는 소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세계 인구 중 일 년에 한 차례 이상 비행기를 타는 경우는 3퍼센트에 불과하다.
내가 뮌헨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로 날아갈 때 평균적인 아프리카인이 일 년간 소비하고 생활하면서 내보내는 것보다 2배나 더 많은 탄소가 배출된다. 독일에서는 매일 6만 5,000명의 승객이 비행기로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고, 2019년에는 4,710만 명 이상이 국내 여행에서 항공편을 선택했다. 그 대다수는 쓰레기 분리수거에 열심이고 그레타 툰베리에게 호감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국내선 비행기를 단 한 차례 이용했을 뿐인데 -베를린과 뮌헨 간 비행에서 약 122킬로그램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다회용컵 사용 자전거 타기, 지역 제품 구매 및 LED 전구 사용 등으로 달성한 탄소 감소가 일시에 물거품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생태 비용과 견주면 비행기를 탐으로써 얻은 시간 절약은 비교가 안 될 만큼 미미하다. 뮌헨이나 함부르크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가는 비행기를 타는 승객은 -공항에 도착하고 출발하는 과정, 줄서기, 기타 수고로움 등을 고려하더라도- 최대 60분을 절약한다. 대신 13배나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유황 및 검댕 입자 같은 물질은 빼놓고 말이다).
(중략)
항공 로비를 펼치는 쪽에서는 비행 금지 조치나 정당한 세금을 피하고자 '오프셋 offset'이라고도 하는 마법의 단어 '탄소 상쇄'를 들먹이곤 한다. 그 취지는 비행마다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 1톤당 추가 요금을 매겨 이 돈을 아트모스페어Atmosfair(항공 여행 등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에 대한 탄소 상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독일의 비영리단체 - 옮긴이)나 마이클라이밋Myclimate(기후보호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스위스 기반의 비영리단체 - 옮긴이) 같은 비영리단체에 전달해 제3세계 기후 보호 프로젝트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일일이 확인이 어려운 데다 이 같은 프로젝트의 대다수가 무의미하다는 점이다. 특히 열대우림의 벌목을 막기 위한 프로젝트들이 비판을 받는데, 장소만 바꿔 벌목을 계속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예약할 때 마우스 클릭 한번으로 자발적으로 지불하는 비행기 티켓 값을 상승시키는 그 기부금은 인증서 거래라는 번창하는 신흥 사업 분야에 자금을 대주고 있다. 이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우리 덕분에 일부 약삭 빠른 장사꾼들이 삽시간에 갑부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탄소 상쇄라는 도덕적으로 수상한 면죄부를 사는 꼴이다. 그 목적은 높은 구매력을 가진 인간의 양심을 달래는 데에 있다. 이제 사람들은 전처럼 끊임없이 세계 곳곳을 제트기로 돌아다닐 수 있다. 면죄부를 산 사람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서둘러 카리브 해로 떠나는 다음 비행편을 예약한다. 아트모스페어 같은 단체들은 문명적 전환을 이끌어내기보다는 부유층의 잦은 제트기 여행에 사회적 면죄부를 발행한다. 이런 논리라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헬리콥터나 호화 요트만으로 이동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우림 한 조각을 사들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한 칼럼니스트는 상쇄 비용을 내는 원칙을 일상의 다른 분야로 확대하자는 제안을 한다. 그렇게되면 나쁜 부모에 대한 '상쇄'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자녀를 때릴 때마다 아동보호 프로젝트에 몇 유로씩 기부함으로써 구타를 상쇄하기 때문이다. 유머 넘치는 어느 영국인 둘은 '오프셋'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전략인지 보여주고자 외도를 상쇄해 주는 인터넷 사이트 www.cheatneutral.com을 개설하기도 했다. 몇 유로만 이체하면 양심의 거리낌 없이 계속 바람을 피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체한 돈이 부부상담이나 성실한 배우자 관계를 장려하는 프로젝트에 투자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텀블러로 지구를 구한다는 농담> 알렌산더 폰 쇤부르크, 추수밭, 2023, 9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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