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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미늄과 탄소배출
재활용 분류 중에서 금속인데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별개로 다뤄지는 금속이 있다. 바로 알루미늄이다. 수많은 금속 중에 왜 캔과 같은 알루미늄만 재활용 수거를 할까? 사실 알루미늄은 산소와 규소에 이어, 지구 지각에 세 번째로 풍부한 원소다. 금속만으로 보면 철보다 많은 셈이다. 순수한 알루미늄 재료는 물론이고 범위를 합금으로 확장하면 일상에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철보다 풍부한 이 금속은 1번 쓰고 버리는 퇴폐의 상징이 됐다. 알루미늄은 일회용 캔으로 만들어지며 인류의 소비 형태를 완전히 바꿨다.
20세기 초, 인류는 두 차례에 걸친 지옥 같은 전쟁을 치렀다. 지옥에서 탈출한 인류는 수많은 산업을 일으켰다. 전 세계적으로 폭탄과 항공기 수요를 맞추기 위해 알루미늄 산업은 고도의 성장을 했다. 소비경제를 복구하는 과정에서도 알루미늄은 빠지지 않았다. 이전 세대의 결핍을 채우던 물건의 소재를 알루미늄으로 바꾸고 1번만 쓰고 버릴 수 있게 변형시켰다. 인류의 품격 있는 삶을 잠시 채우고 바로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게 한 것이다. 과거의 시간을 끌어다 한꺼번에 소모하는 플라스틱의 철학이 알루미늄에 옮겨진 것이다.
플라스틱도 문제지만 여전히 알루미늄은 포장재와 재료 산업에서 주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알루미늄을 재활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알루미늄을 재활용하는 비용은 광산을 채굴해 순수한 알루미늄을 추출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약 5%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퍼센트 단위의 맹점은 절댓값을 알 수 없다는 데에 있다. 5%는 양으로 따지면 상대적으로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다. 그러니 전체를 먼저 봐야 한다.
이 금속이 재료로 쓰이는 이유는 가볍고 강해서도 있지만, 강한 산화성 때문에 녹이 잘 슬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이다. 다른 말로 광물에서 순수한 금속으로 분리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그래서 지각에 풍부하지만, 철보다 한참 후에나 인류 앞에 등장했다. 한때 금이나 은으로 만든 제품보다 귀했던 시절이 있었다. 유럽 귀족들이 손님 접대 때 최고의 예우로 알루미늄 식기를 사용했을 정도다. 이렇게 알루미늄이 귀한 대접을 받은 이유는 당시 순수한 알루미늄을 추출하는 공정에 엄청난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기의 등장 없이는 알루미늄도 꺼내지 못했다. 보크사이트라는 광석에서 알루미늄을 추출하려면 화석연료로 얻는 에너지로 불가능하다. 전기로가 등장하며 가능한 일이었고 이 방식은 여전히 지금도 사용된다. 이 방식을 홀에루 추출 공정(Hall-Heroult Process)이라고 한다. 1886년 미국의 찰스 마틴 홀과 프랑스 폴 에루가 만든 전기분해식 생산법이다.
문제는 1kg의 알루미늄을 생산하는 데 약 15kW의 전력이 소모될 정도로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전체 생산 비용 중 전력 요금 비중이 최대 40%에 달하는 에너지 집약 산업이다. 가령 1톤의 알루미늄을 생산하려면 2인 가구가 5년 넘게 사용할 수 있는 전기가 소모된다. 그리고 생산량보다 8배나 많은 8톤의 탄소를 배출한다. 알루미늄의 수요는 계속 증가해 전 세계 전기 소비량의 3%를 알루미늄 생산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이상적이긴 하나 생산된 알루미늄을 모두 재활용한다고 하면 전기 소비량을 0.15%까지도 낮출 수 있다.
그런데 재활용 분리수거장에서 커피 캡슐을 대상으로 어떤 행동도 취해지는 것을 본 적 없다. 특정 기업의 작은 커피 캡슐은 여전히 알루미늄이다. 물론 기업이 별도로 수거한다고 하지만, 절차가 복잡해 수거되는 양은 미미하다. 쓰레기로 버려지는 양이 얼마나 되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한 해 버려지는 커피 캡슐 쓰레기만 최소 8천 톤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재활용되지 않으면 결국 이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광석으로부터 제련해 금속을 얻어야 한다.
결국 기업은 안정된 원료 공급을 위해 세계 굴지의 알루미늄 생산 업체와 협력한다. '지속 가능한 지구'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알루미늄'을 위해 보이지 않는 협력을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알루미늄 생산업체인 알칸(Alcan), 노르스크 하이드라(Norsk Hydra), 리오 틴토(Rio Tinto)와 손을 잡고 있는 기업은 커피 회사다. 보크사이트 광석을 채굴하려면 땅이 필요하다.
19세기 초 독일은 최초의 알루미늄 제련소를 세웠고 전쟁을 통해 세계 최고의 생산국이 됐다. 하지만 패전 이후 에너지 파동을 겪으며 1970년대 이후에 많은 알루미늄 제련소가 남반구로 이동했다. 매장량과 인건비 문제로 호주와 기니, 브라질과 인도네시아의 거대한 열대림을 없애기 시작했다. 제련에 필요한 전기는 댐을 건설해 수력 발전으로 얻게 된다. 댐을 건설하기 위해 대지를 파헤친다. 알루미늄 생산에 들어가는 탄소 배출량은 연간 5억 톤으로, 전 세계 배출량의 2%에 달한다. 제련 공정에서 나온 중금속은 근처의 토양과 물을 오염시킨다.
이런 사실은 거대한 구조 속에 숨겨져 낮은 차원의 시선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보다 입체적 차원으로 보면 캡슐 커피는 현재 판매되는 커피 중에서 가장 비싼 커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불한 비용은 커피뿐만 아니라 거기에 현대인 삶의 풍경, 편리함과 품격, 디자인, 광고 비용을 녹여낸 전체를 누리는 것이다. 우리가 이 모든 풍요를 누리기 위해 지불한 영수증에는 보이지않는 숫자가 적혀 있다. 눈에 보이지 얺지만 과거의 시간을 끌어다 쓰고 망가진 미래를 복구할 대출금이 들어 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물질이, 우리가 지속 가능하다는 문구로 그렇게 애써 지키려고 하는 대상을 파괴하는데 이용되고 있었다.
<과학자의 시선으로 본 지구 파괴의 역사> 김병민, 포르체, 2023, 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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