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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기숙사 돈 25만 원 - <얼어붙은 속헹> 김달성

by 길찾기91 2023.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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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돈 25만 원

 

시리퐁(가명, 31세, 취업비자)은 태국 출신으로 고향에 남편과 아들이 있다. 그녀가 일하는 채소농장은 비닐하우스가 60여 개지만 그 비닐하우스마다 길이가 백 미터가 넘는다.

농장 한 편에 있는 기숙사 두 채에는 노동자 10명이 기거하는데 태국인 노동자와 캄보디아인 노동자다. 기숙사 두 채는 남녀 노동자들이 각각 여자 6명, 남자 4명 나누어 산다. 기숙사는 언뜻 보아 창고 같다. 누구라도 사람이 사는 주거시설로 보기는 어렵다. 검은 차광막으로 만든 터널같이 생긴 비닐하우스 안에 낡은 샌드위치 패널 가건물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농어촌만 해도 이런 불법 가건물 기숙사가 천 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한다. 공장에도 이런 가건물 기숙사가 많다. 그쪽은 차광막 같은 것을 덮어씌우지 않고 그냥 컨테이너나 샌드위치 패널 가건물을 공장 마당이나 건물 옥상에 설치한다. 그래서 일반인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시리퐁이 기거하는 숙소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가스통이다. 주방용 가스통이 터널처럼 밀폐된 공간 입구 구석에 놓여있다. 보기만 해도 위험스럽게 느껴진다.

기다란 가건물은 다섯 칸으로 나누어져 있다. 세 칸은 방으로 사용하고 하나는 세면장, 나머지 하나는 공동주방이다. 끄트머리에 있는 공동주방을 지나 뒷문으로 나가면 공동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은 땅을 파고 고무대야를 묻은 뒤 기다란 나무판 두어 개를 걸쳐놓은 변소다. 과거1960년대에 시골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재래식 변소다. 노동자들은 그 변소를 공동으로 사용했다. 잠금장치 같은 것은 없었다.

키가 큰 시리퐁의 방은 원룸처럼 작은 방인데 여자 둘이 사용한다. 창문은 신문지를 테이프로 붙였다. 통풍될 여지가 없었다. 겨울에는 냉골같고 여름에는 찜통 같다.

“시리퐁, 이 기숙사 돈 내나요?"

“네, 한 달에 이십오만원씩 잘라요.”

시리퐁, 지난달에 월급 얼마 받았어요?"

“165만 원이에요."

기숙사비로 25만 원을 내고 남은 돈은 140만원이었다고 했다. 휴대전화 안에 있는 계산기로 숫자를 표시해 보여줬다.

시리퐁이 근무하는 농장은 임금 계산을 일한 시간에 따라 최저임금으로 계산한다.

농장주가 기숙사비를 징수하는 근거는 고용노동부가 내린 지침이다.

고용노동부는 불법 가건물을 기숙사로 제공하는 사업장에 외국인 노동자(E9비자)를 고용알선하면서 기숙사비를 얼마 받으라는 지침도 주었다. 임금의 8~20%를 받을 수 있다는 지침을 준 것이다. 이 지침을 의지해 사업주들은 제 마음대로 기숙사비를 받는다.

시리퐁은 기숙사비가 너무 많다고 말하며 분노하는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절대군주 같은 권한을 가진 농장주 앞에서 어쩔 도리가 없기에 체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시리퐁 농장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만 가도 원룸들이 있다. 그 방의 월세는 30만원 정도다. 두 사람이 입주하면 일인당 15만 원씩 부담하면 된다. 지금 사는 기숙사에 비하면 원룸은 궁궐같다. 그러나 그 원룸으로 거처를 옮기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사철일을 해야 하는 형편인 데다가 교통편도 편리하지 않아 선뜻 옮길 수도 없다.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오토바이를 이용할 수도 있으나 여러 가지 여건상 그리하기가 쉽지 않다. 낯선 타국에서 한국 물정 모르고 한국말도 서투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시리퐁은 고향에 두고 온 아들 사진을 보여줬다. 초등학생이었다. 그녀는 날마다 그 아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하루하루 고단한 타국생활을 이겨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얼어붙은 속헹> 김달성, 밥북, 2023, 8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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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 동사한 속헹처럼 이주여성 노동자들의 아프고 슬픈 이야기
목사로서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려는 의지로 ‘포천이주노동자센터’를 운영하는 저자가 이주여성 노동자들에 관한 이야기들 담았다. 저자는 그들이 겪는 아픔을 함께하며 같이 울고 웃으며 고민을 나누고 때론 부당한 처사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그렇게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하면서 보고 겪은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저자는 이주노동자 전체를 위해 활동하지만 몇 년 전 『파랑 검정 빨강』을 통해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담아냈고, 이주노동자이자 여성으로서 겪는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그녀들만의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 책을 내게 됐다.
책은 저자의 관점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노동 현장, 특히 포천이라는 지역 특성이 있는 포천에서 이주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와 고민을 담담하게 전해준다. 그녀들이 이주여성 노동자로 살아가며 겪는 모습에서 독자는 그녀들의 현실과 드러나지 않은 대한민국의 속살을 만나며, 그녀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는 어때야 하는지를 스스로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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