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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역사를 자르고 붙여 새로운 역사 만들기 - <중국이 말하지 않는 중국> 빌 헤이턴

by 길찾기91 2023.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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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자르고 붙여 새로운 역사 만들기

 

내전에서 승리를 거둔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국공 내전, 1927년 이후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사이에 중국의 패권을 두고 일어난 두 차례의 내전을 말한다.-옮긴이), 공산당 지도부는 중국 인민 대학교에 청조에 대한 역사를 써 달라고 부탁했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청나라 역사 전문가인 파멜라 크로슬리는 이 지시에 대해 “각 황조는 이전 황조의 역사를 써 정당성을 선포함으로써 전통적인 호(traditional arc)를 완성했다"라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는 1978년에 청나라 역사 연구소를 공식적으로 설립하게 되고, 2002년에는 훨씬 더 큰 행보로 이어졌다. 전 인민대학교 총장 리원하이(李文海, 이문해) 교수-인민대학당 위원회 서기이자 중국 사학회 회장, 교육부 역사학 교수 지도 위원회 회장이기도 하다—의 제안에 따라, 국무원은 '국가 청사 편찬 위원회' 설립을 승인했다. 이 프로젝트는 다른 역사학자들이 부러워서 울고 갈 정도로 중국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받았다. 거의 200만 쪽에 달하는 문서와 이미지, 그리고 수만 건의 해외 연구를 중국어로 번역했고, 여러 권으로 구성된 문서 컬렉션을 출판했으며, 수십 건의 학술 대회를 개최했다.

애당초부터 청나라 역사 편찬 위원회는 공산당에 청조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 왔다. 그러나 2012년 시진핑이 권력의 정점에 오른 후 공산당은 역사 프로젝트의 목을 조여 오기 시작했다. 17세기, 18세기, 19세기의 역사에 관해 입밖에 꺼내서는 안 될 주제들이 많아졌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대만이 독립을 요구하고 티베트와 신장의 분리주의가 부상하는 가운데, 이런 장소들이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유기적으로 모국에 통합되었으며, 그러므로 중국은 아주 오래된 뿌리를 둔 민족국가라는 국가 공식 내러티브를 거스르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2013년부터 크로슬리, 에블린 로우스키Evelyn Rawski, 제임스 밀워드James Millward, 마크 엘리엇Mark Elliott 등 대청국의 역사가 달랐다고 하는 - 만주 왕조였으며 정복과 폭력, 억압을 통해 영역을 확장했다- 외국인 역사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중국에서 폄하되었으며 제국주의자라고 고발당하고 자료 열람이 금지되었다. 자주적인 중국 역사가들도 같은 싸움을 해야 했다. 2019년 초, 공산당 산하 '중국 역사 문제 연구위원회'는 '소수의 학자는 서구의 학문적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적절한 경계심이 부족하고, 청나라 역사 연구 분야에 해외 역사 허무주의의 변형된 이론을 도입했다'라고 경고했다. 최근 몇 년간 '역사적 허무주의'라는 문구는 점점 더 흔하게 쓰인다. 공산당의 역사관을 지지하지 않는 연구를 공산당이 그렇게 표현한다. 위원회 자체 학술지 《역사연구歷史硏究》 저우췬(周群, 주군) 부편집장이 발표한 학술 논문은 메시지가 더 많은 사람에게 확실하게 전달될 수 있게 《인민일보人民日報》에 재발표되었다. 청나라 역사 담론의 확실한 이해'라는 제목 하에, '역사를 공부하고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는 건 5000년간 중국 민족이 쌓은 소중한 경험이자, 공산당이 잇따른 승리를 할 수 있도록 중국인을 이끄는 중국 공산당의 중요 비밀 병기이기도 하다'라고 독자에게 유익한 내용을 상기시켰다. 마오쩌둥(毛澤東 모택동)의 역사관보다 공산당의 역사관을 설명하기에 더 나은 건 없을 것이다. 1964년 그는 학생들에게 말한 것처럼, "옛것을 오늘에 맞게 써라"라고 했다. 300~400년 전의 발생한 사건들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전쟁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의 생존에 여전히 필수적이다. 국가 청사 편찬 위원회는 기록 연구의 책략을 통해, 민족의 단합을 약화하려는 외세의 음모로부터 방어하는 공산당의 방벽이 되어 준다.

 

공산당은 이전보다 더 엄격하게 '이데올로기적으로 바른 역사'를 강요하지만, 국가의 이야기를 창조하고 분류하여 선택하는 건 마오쩌둥보다 5000년 전에 시작되었다. 하지만 5000년이나 된 건 아니다. '중국'이라는 곳이 있었고 '중국인'이라는 사람들이 5000년 동안 계속해서 존재했다는 믿음은 20세기 전환기에나 탄생하였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정치적 망명자들의 마음속에서 탄생했다. 새로운 세계가 창조되기 위해서는 먼저 옛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했다. 그리고 옛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존재하게 만든 사람은 급진적인 개혁과 작가이자 중국 저널리즘의 아버지 량치차오이다.

 

<중국이 말하지 않는 중국> 빌 헤이턴, 다산초당, 2023, 186-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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