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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의 심리학
세상에는 불편한 것을 회피하는 사람과 감수하는 사람이 있다. '불편한 것'은 스트레스 요인이다. 과학적 사실로 인해 마음이 불편하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회피하는 유형이라면 과학적 사실을 회피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가장 쉬운 선택지일 것이다. 반대로 감수하는 유형은 그 사실로 인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기꺼이 스트레스를 떠안겠다고 생각하지만, 이후 고난이 시작된다. 매사 언행에 있어 딜레마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해 지구가 위험에 빠졌다면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되겠지만, 현실은 화석연료의 향연이다. 화석을 태워 돌아가는 시스템에서 살아가면서 화석연료를 거부하거나 "화석연료를 덜 쓰는 것으로 주세요”라고 주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가깝게 지내는 심리학자를 만나 불편한 것을 회피하는 사람과 감수하는 사람의 차이를 물어보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커피를 주문하며 한 잔은 텀블러에 담아달라고 했다.
"여전하구나. 역시 인지부조화가 적은 스타일이야." 어느새 나타난 최지연 교수가 말한다. 대학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인 그녀는 숙명여자대학교 사회심리학과 소속으로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연구하고 있다. 오늘은 최 교수와 커피를 마시며 기후 위기의 심리학을 대화 주제로 삼는다.
인지부조화란 무엇일까? 우리는 모두 각자 머릿속에 블랙박스를 하나씩 넣고 다닌다. 그걸 '인지'라고 부른다. 인지부조화는 개인의 행동과 신념이 일치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내적인 긴장 상태를 뜻한다. 예를 들어 평소 카페에서 일회용컵이나 플라스틱 빨대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던 사람이 어느 날 바다거북의 코에 빨대가 꽂혀 있는 영상을 봤다고 치자. 충격을 받아 플라스틱 쓰레기가 큰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인지부조화가 발생한다.
최지연 교수가 설명한다. "인지부조화가 주는 긴장을 해소하는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어." 첫 번째는 행동을 바꿔 텀블러를 쓰거나 빨대 사용을 줄이는 것, 두 번째는 신념을 바꾸는 것. 내 행동을 바꿀 정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세 번째는 그냥 외면하기. 한마디로 '에라 모르겠다!'
우리는 이 '에라, 모르겠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아니, 지구가 불타고 있어서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도 있는데 그냥 외면하기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라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예전에 야생동물에 관한 프로그램을 촬영하다가 독수리를 구조했을 때가 생각난다. 전문가와 함께 탈진한 야생 독수리를 논밭에서 구조해 임시보호 차원에서 제한된 실내공간에 잠시 풀어놓은 적이 있다. 안대를 풀자 녀석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낯선 환경에 당황했는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방구석으로 뛰어가 자신의 고개를 벽 틈 사이에 처박고 가만히 있었다. 야생동물의 본능적인 행동이었지만 인간인 나에겐 '제 눈에만 안 보이면 괜찮다는 문제 해결 방식'처럼 느껴졌다. 지금 우리 인류는 지구의 위기 앞에서 마치 그 탈진한 독수리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 보고 안 듣기, 무슨 대단한 영화의 반전 스포일러도 아닌데 그렇게 군다.
다시 카페, 최지연 교수가 다른 화두를 꺼낸다. "위기라고 느끼긴 할까? 오히려 사람들이 생각하는 위기의 범주에 기후변화가 못 끼고 있는 것 같아."
심리학에서 범주화categorization는 인간의 인지, 즉 머릿속 블랙박스의 제1구동 원리다. 범주화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어오는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블랙박스 내 폴더들에 저장하는 과정이다. 물과 콜라의 범주화는 쉽다. 뇌에 입력할 때 모두가 동일하게 음료 폴더에 저장한다. 하지만 기후 변화는 음료처럼 명확한 문제가 아니라서 사람별로 저장 폴더가 다를 수 있다. 비슷한 예로 만약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고 하면 이 경험을 오락 폴더에 저장할지 교육 폴더에 저장할지 애매하다.
이럴 때 사람들은 그 애매한 것과 가장 비슷한 것을 찾아 어디에 저장할지 참고한다. 자신이 지금 범주화하려는 것과 가장 많은 특징을 공유하는 것의 폴더를 따라가는 셈이다. '기후 변화'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대형 산불'이나 '생존' 대신 '북극곰'이나 '남극의 눈물'이 떠오른다면 '기후 변화'는 '위기' 폴더가 아니라 '동물', '미래', '국제문제', '환경문제' 정도의 폴더에 저장될 가능성이 크다. 애석하게도 현실은 그렇다. '기후 변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존이 달린 위기가 아니라 다른 여러 문제 중 하나로 인지되고 있다.
“위기가 위기로 안 느껴지게 범주화되기 쉬운 사회라는 건 인정해야 해." 그녀와 커피를 마시다 보니 이 문제가 출발점부터 잘못 설정되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된다.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다. '확증편향'이란 것이 등장한다. 쉽게 말하면 수많은 뉴스 중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크게 들리는 경향성을 의미한다. 종합편성채널과 지상파 뉴스 보도 중 자신의 정치색과 맞는 채널만 틀어 놓는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트위터 둥 SNS에서 자신의 가치와 맞는 뉴스만 소비한다. 좋아하는 것만 찾아보니, 알고리즘까지 가세해 좋아하는 것만 들리게 만들어버린다.
“내 신념에 맞는 메시지가 더 좋은 거야. '내가 옳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타인도 생각할 것이다'라는 사고방식이지. 이건 사실 영유아한테 보이는 '자기중심성egocentrism'이라는 인지적 특성인데 이게 성인들에게도 여실히 드러나는 거지. 내가 옳으니까."
이런 자기중심적인 사회를 봤나. 문제는 유치한 사고방식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란 점이다. 기후 위기가 진짜여도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팩트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사회적 논의가 나아가지 못한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내면, 지구 시스템이 붕괴하고 인류와 다른 비인간 생명체 모두 파국을 맞이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에 기후 위기와 관련한 심리학 실험이 있었어. 2021년에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에서 408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는데, 확증편향의 문제를 잘 보여줘.”
주와 쉔이라는 두 학자는 기후 변화를 사실(“인간에 의한 기후 변화는 사실이다")이라고 믿는 208명, 거짓(“사실이 아니다")라고 믿는 20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이들 중 절반에게는 기후 변화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담은 영상을 시청하게 하고 다른 절반에게는 기후 변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영상을 시청하게 했다. 그 후 시청한 영상에 대하여 영상이 얼마나 사실에 입각했으며 전문적이고 신뢰할 만한가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기후 변화를 사실이라고 믿는 집단은 기후 변화에 대한 과학적 정보가 담긴 영상이 더 사실에 입각했으며 더 전문적이고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 기후 변화를 거짓이라고 믿는 집단은 기후 변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의 영상에 대해 같은 대답을 했다. 믿는 대로 본 셈이다.
아니라고 믿는 사람은 계속 아니라고 믿게 할 정보만 취사선택하게 되는 심리적인 덫. 설사 그게 기후 위기를 부정하는 가짜 뉴스일지라도 그럴 것이다. 위기를 위기라 인지하지 않고 북극이나 남극의 일, 혹은 내가 죽을 때까지는 벌어지지 않을 먼 미래의 일로 여기는 사람이 다수다. 예상은 했지만, 사고의 작동원리를 알고 나니 허탈하다. 심리학자와 대화를 나누며 마신 커피는 참 씁쓸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 최평순, 해나무, 2023, 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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