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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정치의 기원 - <침팬지 폴리틱스> 프란스 드 발

by 길찾기91 2023.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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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기원

내가 보기에 가장 놀라운 결과는 사회 조직에 두 개의 층위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첫번째 층은 적어도 가장 강력한 개체들 사이에 존재하는 명백한 서열 순위이다. 영장류학자들 사이에서 '우열 개념'의 가치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모두 계급 구조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논쟁은 계급 구조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가 아니라 서열관계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로 사회적 과정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나는 우리가 공식적 위계관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매우 빈약한 설명을 얻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배후에 있는 두 번째 층위, 즉 영향력을 가진 지위들의 네트워크 역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지위들은 정의 내리기가 훨씬 더 힘들다. 내가 이 책에서 영향력과 권력이라는 용어로 묘사한 것들은 불완전한 첫 시도일 뿐이다. 내가 봤던 것은 어떤 개체가 최고의 자리를 잃었다고 해서 완전히 잊혀진 존재로 추락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여전히 많은 것을 조종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위가 상승해서 언뜻 두목처럼 보이는 개체일지라도 매사에 가장 강력한발언권을 자동적으로 갖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사회 조직에서 벌어지는 이런 이중성을 인간의 용어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우리네 인간사회에서 그들과 아주 비슷한 막후 영향력 때문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칭했을 때, 그는 자신의 말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 잘 몰랐을 것이다. 우리의 정치적활동은 인간과 가까운 친척과 공유하는 진화적 유산의 일부처럼 여겨진다. 만일 내가 아른험에서 연구하기 전에 누군가 이와 동일한 이야기를 했다면 너무 교묘한 유추라며 그런 발상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른험에서의 연구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치의 기원이 인류의 역사보다 더 오래됐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내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인간의 행동 패턴을 침팬지에게 투영한 것이아니냐고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옳지 않은 것이며,오히려 그 반대가 진실에 가깝다. 침팬지들의 행동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인간을 또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정치를 영향력 있는 지위를 획득하고 유지하는 사회적 술수라고 넓게 정의한다면 정치는 모든 사람과 관계된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가정, 학교, 직장, 그리고 각종 모임에서 우리는정치라는 현상과 일상적으로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매일 갈등을 야기하거나 혹은 다른 이들의 갈등에 개입한다. 우리에게는 지지자와 경쟁자가 있다. 그리고 이들과의 유익한 관계를 매일매일 다져간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적인 정치 행위가 항상 그 자체로서 인식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도를 은폐하는 데 달인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치인들은 그들의 이상과 공약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권력을 향한 개인적 야망을 노출시키지 않도록 애쓴다. 그러한 야망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결국 누구나 똑같은 게임을 벌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들이 자신의 동기를 타인에게 숨기려 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동기가 자신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도 과소평가한다는 사실이다. 반면, 침팬지는 '더욱 천박한' 자신의 동기를 아주 뻔뻔스럽게 알린다. 권력에 대한 침팬지의 관심이 인간보다 더 강해서가 아니다. 단지 아주 적나라할 뿐이다.

대략 5세기 전에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의 군주나 교황, 또는 메디치나 보르자 같은 세도 가문의 정치적 술수를 묘사했다. 불행하게도 칭찬받아 마땅한 그의 실감나는 분석은 종종 그들의 정치적 음모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한 것으로 오해받았다. 한 가지 이유는 그가 경쟁과 갈등을 부정적인 요소가 아니라 건설적인 것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권력을 둘러싼 동기를 부정하거나 은폐하려는 태도를 최초로 거부한 사람이었다. 기존의 집단적 허위에 대한 폭로는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도리어 인간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됐다.

인간을 침팬지와 비교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모욕적이거나, 혹은 그 이상의 죄악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동기를 더욱 동물적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팬지들 사이에서 권력 정치는 단지 '나쁘다'거나 '더럽다'는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른험 집단에 사는 침팬지들에게 논리적 정합성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민주적 구조도 안겨주었다. 모든 파벌들은 일시적인 권력 균형에 이를 때까지 사회적 영향력을 계속해서 찾는다. 그리고 이런 균형은 서열상의 지위를 새롭게 결정한다. 다소 유동적인 지위가 '고정될 때까지 관계는 계속해서 변한다. 이 같은 서열의 공식화가 어떻게 화해 가운데 일어나는지를 보게 되면, 집단 내의 서열이경쟁과 충돌을 제한하는 '응집적' 요소임을 이해할 수 있다. 육아, 놀이,섹스 협력 등은 그로 인해 찾아오는 안정 상태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수면 아래의 상황은 늘 유동적인 상태이다. 권력의 균형은 매일매일시험되며, 만일 그것이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도전이 일어나고 새로운 균형이 찾아올 것이다. 결국 침팬지들의 정치도 건설적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로 분류되는 것을 명예롭게 여겨야만 한다.

<침팬지 폴리틱스> 프란스 드 발, 바다출판사, 2004, 31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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