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기술이 후려치는 무서운 나라
정경심 교수의 1심 재판 결과가 나왔습니다. 몇가지 생각할 내용이 있어 정리해 봅니다.
1. 권력형 범죄는 어디에?
1심 결과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그 어디에도 권력형 범죄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지난 번 조국 전 장관 동생의 재판 결과에서도 권력형 범죄는 입증되지 않았고 모두 개인의 범죄들만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등의 유죄 내용은 권력형 비리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1심 판결을 100% 다 받아들인다고 해도 권력형 범죄는 없습니다.
2. 권력형 범죄가 없다는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애초에 조국 전 장관의 가족이 수사대상이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다는 윤석열 총장의 주장, 수사 전에 기소부터 한 검찰, 장관 청문회 중에 가족이 기소되면 사퇴하라는 야당의 압박, 마녀사냥처럼 쏟아진 언론의 기럭질. 도대체 조국 가족이 기록적인 압수수색으로 탈탈 털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가 법무부 장관 후보로 살아있는 권력을 갖게 될 자리에 임명될 예정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히 권력형 범죄 혐의가 있다면 수사해야 합니다.
장관 후보자가 첫째, 권력형 비리나 범죄에 연루되었는지 과거의 범죄 여부를 확인하고 둘째, 도덕성 검증을 통해 흠결을 확인하는 이유는 그가 권력을 가졌을 때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한 기관의 장으로서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을지 에토스를 갖추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입니다.
검찰은 민정수석이었던 조국 전 장관의 권력형 범죄 혐의로 사모펀드를 가장 중요하게 봤습니다. 애초부터 입시비리는 도덕성을 더럽히기 위해 언론을 통해 국민의 공분을 사게 만든 작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장관이나 민정수석이 대학총장이나 대학입학본부에 압력을 넣어 입시 비리를 저지른 범죄가 아닌 이상, 표창장이나 인턴증명서 같은 것은 도덕적 비난을 받을 수준 밖에 되지 않습니다. 입시관련 혐의가 사실이라면 다른 장관후보들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비난을 감수하고 장관직을 수행하거나 조용히 사퇴하거나 정도의 일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검찰이 온나라를 뒤흔들어가며 대대적으로 수사한 동력, 아니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바로 권력형 범죄에 대한 수사였습니다. 하지만 권력형 범죄 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권력형 범죄가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은 검찰이 처음부터 무리하게 수사하고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즉 검찰의 권력을 남용한 명백한 증거가 됩니다. 법원의 판결은 검찰의 수사에 대한 유죄 판결입니다. 검찰의 수사권이 얼마든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정확한 예시가 됩니다. 검찰의 수사권은 완전히 박탈해야 합니다. 대형 범죄들의 수사권을 아직 검찰이 갖고 있습니다. 법개정을 통해서 완전히 털어야 합니다.
권력형 비리라고 그렇게 시끄럽게 외쳐대던 언론은 왜 반성하지 않습니까?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고 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하여 부를 쌓아올린 모습으로 치장한 기자들은 왜 아무 말이 없는 걸까요? 실컷 마녀사냥 해놓고, 이제는 아님말고 라며 시치미를 떼는 건가요?
아무리 장관 후보라고 해도 온 가족이 마녀사냥을 당해야 하는 법은 없습니다. 정말로 권력형 비리가 아니라면 여고생의 일기까지 검찰에게 까발려져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3. 권력형 범죄는 무죄이고 개인의 비리는?
검찰이 주장한 15가지 혐의 중에 11가지가 유죄를 받았습니다. 사모펀드 관련 횡령 혐의는 무죄가 나왔지만 가령 차명 투자 혐의는 유죄입니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서 같은 유죄가 나온다면 고위공직자 가족으로서 비난 받을 일입니다. 그러나 범죄 혐의를 취재하는 MBC기자에게 3천만원 뇌물을 주고 무마하려한 국민의힘 전봉민 의원의 아버지가 받는 비난보다 더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녀들에게 불법적으로 재산을 증여한 혐의로 민주당에서 짤린 이상민 의원보다 더 큰 비난을 받아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4. 표창장 위조, 하나는 무죄 다른 하나는 유죄
법적 책임보다 도덕적 책임이 훨씬 무거운 혐의는 바로 표창장 위조 혐의입니다. 입시와 군 문제는 국민의 비난을 피할수 없는 민감한 사안입니다. 이 사안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바로 검찰이 피의자에 대한 수사도 없이 덥썩 기소부터 했던, 그러니까 조국 전 장관의 청문회 마지막날 법기술을 발휘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청문회 마지막 날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기소한 그 사건은 이번에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사건번호 738번입니다. 검찰이 기소한 내용은 2012년 9월에 정경심 교수가 총장직인을 인주에 묻혀 찍어서 표창장을 위조했다는 내용입니다.
수사도 없이 기소부터 했던 법기술이라 제대로 기술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인주를 찍어 위조한 것이 아니라 다른 날짜인 2013년 6월에 컴퓨터로 표창장에 직인을 붙여 인쇄해서 위조했다고 공소장 내용을 바꾸려 했습니다.
하지만 담당판사였던 송인권 판사는 날짜도 다르고 방법도 다르고 장소도 다르니 전혀 다른 사건이라며 변경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의 공소장 변경시도는 그러니까 처음 기소했던 내용이 수사도 없이 상상력을 동원해 만들어 낸 소설 수준이었음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법기술이 시전됩니다. 검찰은 송판사가 공소장 변경을 기각한 것이 직권남용이라며 고발해서 결국 법원이 사건을 재배당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다시 맡게된 판사가 이번에 판결을 내린 임정엽 판사입니다. 놀라운 법기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송판사는 재판할 가치도 없다고 판단했는데 고발을 당해 물러나고, 검찰에 유리한 판사가 재배당된 것입니다.
검찰은 인주 위조로 기소한 738번 사건 말고 컴퓨터 위조로 한번 더 기소합니다. 1050번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두 사건은 병합되어 한꺼번에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 내용은 이중 기소로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기소남발입니다.
천만원을 훔쳤다는 혐의를 받는데, 처음에는 주말에 안방에서 낮잠자는 주인 몰래 천만원짜리 수표를 지갑에서 빼갔다고 기소를 했다가, 그 다음에는 은행에서 ATM을 사용하는 걸 몰래 지켜보고 비밀번호를 알아내고 어찌어찌해서 계좌이체로 천만원을 빼돌렸다고 다시 기소하는 꼴입니다. 만일 검 찰이 이렇게 두번 기소를 했다면 판사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담당검사에게 F를 주어야 합니다.
인주 위조 사건은 당연히 공소취하를 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정경심 교수를 구속시키고 청문회를 뒤집어 놓은 이 사건이 소설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기소였음을 인정할 수는 없었나 봅니다.
이번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738 사건을 무죄로 선고했습니다. 그리고 공소취하를 하지 않은 검찰에 대해서도 직권남용이 아니라고 판단했으며 이중기소도 아니라고 판결했습니다.
5. 정말로 법기술이 후려치는 무서운 나라입니다. 혐의가 있으면 수사를 해서 증거를 찾고 그 증거를 바탕으로 기소하고 범죄를 입증하는 적법한 검찰의 수사행위는 나라가 부여한 권력이며 국민을 위한 일입니다. 그러나 범죄자를 찍어놓고 상상력을 발휘해 기소와 구속을 먼저하고 그리고나서 수사를 하고 짜맞추어 다시 한번 기소를 한다면 제가 보기엔 놀라운 법기술입니다. 재판부가 권력남용이 아니며 이중기소가 아니라고 판단할만큼 우리나라 법에 구멍이 숭숭 뚫여있는 것인지, 검찰의 법기술이 신묘막측한 것인지, 재판부가 형편없는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6. 조국 가족이 정말 악인들이며 나라 밖으로 추방시킬만한 나쁜 사람들이라면 놀라운 법기술을 발휘한 검찰들이 박수를 받아야 할까요? 야당의 입장에서 검찰의 행위는 칭찬을 받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여당이나 야당, 친-조국이냐 반-조국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점점 더 깨닫게 되는 것이지만 저는 이런 기묘막측한 법기술들이 무섭습니다. 최고의 형법전문가라는 조국 전 장관도 당해낼 수 없는 법기술의 후려치기가 힘없는 국민에게 시전될 때 도대체 어떤 국민이 제대로 법의 보호를 받겠습니까? 그 누가 이 나라를 법치국가라고 하겠습니까?
7. 재판 과정에서 입시비리와 관련해서 검찰과 변호인 양측의 치열한 공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변호인측 증인들의 증언은 거의 인정하지 않은반면 검찰측 증언들을 주로 수용했습니다. 범죄의 입증은 검찰이 해야합니다. 판사는 입증되지 않은 혐의에 대해서 피고인의 입장에 서야합니다. 그것이 법입니다. 그러나 이번 재판부는 처음부터 죄를 확신하고 재판에 임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첫 담당판사였던 송인권 판사와 1심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어쩜 그렇게 의견이 달랐던 걸까요? 과학도 그런면이 있습니다. 데이타가 한쪽 방향으로 결론을 명확히 주지 않을때 똑같은 데이타를 가지고도 과학자가 누구냐에 따라 다른 판단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진다면 어찌 공평하다고 하겠습니까? 우리나라가 아직 법치 후진국인 이유입니다. 판사 한사람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배심원 제도로 가야합니다.
8. 이번 판결 결과에서 가장 맘에 걸렸던 것은 괘씸죄였습니다. 판사가 그 단어를 사용했을리는 없겠지만 판사에게 피고인이 꽤씸하게 보였다고 가중처벌을 한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 의문을 낳게 합니다.
괘씸의 판단 근거는 반성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왠지 새마을운동 시대의 냄새가 납니다.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보상하지 않는다면 반성하는 마음이 없는거겠지요. 반대로 합의하고 돈을 쏟아부어 해결해도 사실 마음 속에 반성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업무방해를 받았다는 피해자인 부산대와 서울대에 어떻게 반성해야 했을까요? 아니, 죄를 인정하지 않는, 즉 범죄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다투는 입장에서 어떻게 반성을 할 수 있다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기엔 판사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메세지같습니다. 다시한번 법치 후진국의 모습입니다.
9. 표창장 위조. 네 그건 도저히 제 머리로 이해가 안됩니다. IQ가 150이 넘어도 프로그래밍도 좀 했고 컴퓨터도 좀 만졌어도 제가 모르는 신기술이 검찰에겐 있나 봅니다. 그 신기술이 법기술이 아니었기를 바랍니다. 2심에서 봅시다.
2020. 12. 25 우종학 교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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