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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생기부, 나는 조국을 지지하지 않는다 - 김호창

by 길찾기91 2020.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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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국을 지지하지 않는다>

1
목동의 학부모들 사이에서 내가 ‘생기부도사’로 불리는 것을 몇년 전에 알았다. 생기부를 보면 그 아이가 갈 수 있는 대학은 물론이고 대충 성적이 오를지 내릴지도 맞출 수 있다. 심지어는 그 아이의 성격, 부모의 성향마저도 맞추니 다들 내가 무슨 부채도사인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사실 생기부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그런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바로 엊그제도 한 학부모가 생기부를 가져왔는데, ‘아이가 끈기가 없고, 게임같은 것을 좋아할 것 같으니 그런 걸 좀 멀리하게 하는게 좋겠다’ 했더니 무척 놀라는 눈치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아이의 성격까지 맞춘 것은 무슨 신령스러운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기부를 보면 당연히 보이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 아이의 경우, 과목별 성적 편차가 큰데 그런 아이일수록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뚜렷한 아이고, 그런 아이들은 대개 좋아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끈기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다른 활동들은 팔방미인인 격으로 적혀 있는데, 그런 아이일수록 남에게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하다. 아이들이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성적, 외모, 그다음이 게임인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성적이 안되면 외모로 인정받고 싶어하고 그것도 안되면 게임같은 것으로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러니까 게임을 좋아하는 자녀가 있으면, 아이에게 게임을 한다고 뭐라고 하면 안된다. 그건 그 아이의 사회성이 높다는 것이고 그런 성향은 사회를 살아가면서 도움이 된다. 각설하고 생기부에 나와있는 것은 의외로 많다. 그래서 학생부종합전형의 평가에서 정성적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어느 정도 공정성을 확보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2
우연히 어느 한 학생의 생기부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학부모가 의뢰하지도 않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다 공개되어 볼 수밖에 없었다. 언론은 그 학부모를 보고 ‘전형적인 강남엄마’라고 했고 재판부는 그를 ‘다수의 성실하게 살아가는 학부모들에게 좌절감을 주었다’고 했다. 사실 판결결과보다 정말 화가 나는 것은 어떻게 저런 망상을 함부로 내뱉느냐는 것이다. 그 망상이 순전히 자기 생각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그 망상으로 어떻게 남을 이렇게 심하게 베고 자르는가이다.
전형적인 강남엄마가 의대 가려는 애를 호텔 인턴으로 보내나? 그리고 그걸 생기부에 적으면 오히려 마이너스라는 것도 모르나? 생명공학 계열로 가려는 애를 인권세미나에 참여하게 하나? 강남엄마가 애를 국내대학으로 틀면 확실히 불리한데도 유학반에서 국내대로 방향을 트나? 아마 10년 전에 나를 만났으면 내가 한마디 했을 것이다. 아이에게 관심을 좀 가지라고 했을 것이다. 일단 카이스트 캠프 같은데 가면(그 당시에는 사설업체들이 대학과 연계해서 하는 캠프가 정말 많았다) 총장 명의의 상장 하나는 받을 수 있고, 의대 인턴도 그렇게 오래 나가는 거 하지 말고 그냥 한번만 나가도 기재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고... 정말 컨설팅해줄 것이 많았을 것 같다. 그때는 정말 학생부 기재 기준이 거의 없어서 하려고만 하면 뭐든 기재할 수 있었던 때였다. 오죽하면 ‘논문대행업체’가 돈을 벌었고, 우리도 논문대행으로 한편에 얼마씩 받고 하자는 직원들의 의견이 있었을 때였다. 그런데 그런 것을 다 제쳐두고 오히려 전공적합성에 까먹을 활동들, 내신 공부에 불리한 활동들을 한다?
언젠가 조국을 지지한다는 친구가 내게 ‘조국은 그렇지만, 정경심은 좀 오지랍이긴 했던 것은 사실인거 같아’라고 말할 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솔직히 강남엄마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오지랍이다. 내 직업의 양심을 걸고 도저히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다. 말이 안된다. 이 말이 안되는 프레임을 씌운 이들은 정말 악마다.

3
대학 시절 때, 학교에서 데모가 있었다. 원천봉쇄를 했는데 과사무실에 가서 뭘 가져와야할 일이 있었다. 그래서 담벼락을 타넘다가 경찰에 잡혀 연행되었다. 경찰서에서 한나절을 지내는데, 그때는 부모나 교수를 불러 같이 귀가를 시키는 일이 많았다. 경찰서에 아버지가 오시고, 경찰은 아버지에게 어떻게 자녀교육을 시켰냐고 윽박질렀다. 그때 아버지가 내내 한 말은 ‘우리아이가 잘못한 일을 할 리가 없습니다.’라는 말이었다. 정치나 사회돌아가는 일은 하나도 모르고 살아오신 아버지가 할 말은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내 그 말만 하셨다.
그 아이의 아비는.... 자녀의 교육에 그리 큰 관심이 없었으니 뭘 방어하려도 방어를 할 수가 없다. 입시를 모르니 정말 딸아이가 잘못한 것인지 아닌지도 당최 알 수가 없다. 그 아이의 아비라는 분이 언젠가 한다리 건너 내게 ‘고맙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내가 한 답변은 간단했다. ‘저에게 감사하지 마세요. 딸내미는 잘못이 없습니다. 도와드리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그게 사실이라 말한 것일 뿐입니다.’
그 아이의 아비는 지금 속이 터질 것이다. 피를 토하는 심정일 것이다. 아비로서 방패막이 되고 싶은데, 뭘 어떻게 할 수도 없다. 그저 속으로 피터지는 울음을 참고 있어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한번도 ‘조국을 지지한다’라는 글을 쓴 적이 없다. 나는 조국을 지지하지 않는다. 나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이 내개 비난을 하고 욕을 해댈때도 나는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나는 당신 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감정이입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저 피터지는 아비의 절규를 외면할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 처음으로 감정이 이입되어 말한다.

힘내세요. 당신의 아내와 아이는 잘못이 없습니다.

김호창 2020. 12. 25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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