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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패션, 탄소배출량, 섬유쓰레기
우리나라 환경부 환경통계포털 자료에 따르면, 국내 사업장에서 배출하는 섬유폐기물은 2010년 112만여 톤에서 2018년 451만여 톤으로 8년 만에 약 네 배 증가했다. 하지만 이런 수치가 가리키는 현실을 우리는 얼마나 피부로 체감하고 있을까? ‘어느 주식 종목이 8년 동안 네 배 성장했다.’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원인을 찾으려 들었겠지만 '섬유쓰레기가 네 배 늘어났다.‘는 이야기에 우리는 (심지어 눈에 보이고 발에 밟히는 물리적인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영 심드렁하다.
그런데 누군가 내가 갖고 있는 걸 네 배로 불려준다면 어떨까? 먹던 마카롱 한 개를 네 개로, 연차 1일을 4일로, 월급 200만원을 800만 원으로 올려준다면 말이다. 월급이 네 배 늘어났다는 상상만으로 미소가 지어졌다면, 그 상상력을 이용해 자택에서 배출되는 쓰레기가 네 배 늘었다고 상상해 보라! 일주일에 한 번씩 모아 버리던 쓰레기를 이틀에 한 번꼴로 내다버려야 한다는 뜻이자, 이전에는 4주에 걸쳐 모일 쓰레기의 양이 1주 만에 모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매일같이 업데이트 되는 '신상'들은 몇 번 입히지도 못한 채 수백 년간 남을 쓰레기로 되돌아 온다. 심지어 그 양은 나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패션의 대중화와 함께 쓰레기가 그야말로 폭발한 것이다. 패스트패션의 오염 규모를 가늠하는 데 참고할 만한 큰 숫자는 또 있다. 세계 물 소비량의 20퍼센트가 옷을 만드는 데사용된다. 매년 의류 제조에 물 93조 리터가 쓰이는데, 이는 무여 500만 명이 생존에 쓸 수 있는 양이다. 서울 시민의 절반이 1년간 마실 수 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따르면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물이 약 7000리터, 티셔츠 한 장을 만드는데는 약 2700리터가 필요하다. 청바지와 흰색 면 티셔츠는 각각 한 사람이 9년간, 3년간 마실 물을 집어삼키는 셈이다.
탄소배출량도 어마어마하다. 세계 각국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해마다 탄소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는데, 지구 전역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약 10퍼센트가 패션 분야에서 나온다. 이는 항공 및 해운 분야의 탄소배출량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수치다. 합성섬유의 한 종류인 폴리에스테르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은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배출되는 온실가스와 맞먹는다. 유엔 산하의 세계은행은 온라인 쇼핑을 통한 판매의 성장세를 보면 2030년까지 전 세계 의류 판매가 최대 65퍼센트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인이 체감할 수 없을 만큼 큰 규모의 오염을 일상으로 자리 잡게 한 '패스트패션'. 이 단어는 1989년 《뉴욕 타임스》가 스페인의 자라를 소개할 때 처음 등장했다. "패션쇼 런웨이에 오른 제품을 무려 15일 안에 대량 공급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패션업체에서 새 옷을 기획하고 디자인해 제조·유통·출시하기까지 약 6개월이 걸렸지만, 자라는 이 모든 일을 2주 안에 해내는 혁명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는 폭발적인 자원 낭비와 오염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패스트패션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스페인의 자라, 스웨덴의 H&M, 미국의 갭(GAP)은 모두 'SPA' 브랜드다. SPA란 전문점(speciality retailer), 자사 상표(private label), 의류(apparel)의 첫글자를 합쳐 만든 단어로, 의류 기획 및 디자인, 생산·제조, 유통·판매까지 전 과정을 직접 담당하는 의류 제조사를 말한다. 디자인에서 판매까지 걸리는 시간을 리드타임(lead time)이라고 하는데, SPA의 관리 감독 방식으로 리드타임이 패스트푸드처럼 빠르고 획기적으로 줄었다는 의미에서 ‘패스트패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SPA 브랜드는 백화점 등 비용이 많이 드는 유통을 피해 대형 직영매장을 운영하고 비용을 줄여 싼 가격에 제품을 공급한다. 빠른 생산 주기 덕분에 소비자의 요구를 정확하고 빠르게 상품에 적용하기도 한다. 자라는 매주 두 번씩 새로운 제품을 매장에 선보인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활용한 기술 덕분에 제품 스케치부터 실제 제품이 매장에 걸리는 데 2~3주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패스트패션조차 금세 따라잡혔다. 2010년대 후반부터 울트라패스트패션, 리얼타임패션이 등장하며 패스트패션의 속도조차 금세 옛것이 됐다. 아소스, 부후, 쉬인처럼 새롭게 등장한 브랜드에서 더 빠른 속도로 옷을 찍어내며 자라와 H&M의 자리를 위협한 것이다. 아소스는 자체 제작 상품을 만드는 데 2주가, 쉬인은 디자인, 생산, 제작, 유통까시 딱 5일이 걸린다. 아소스는 매주 5000종 이상을 출시하고, 쉬인은 하루에만 6000종을 만든다.
리드타임을 줄이는 것은 곧 경쟁력을 의미했고, 시장의 경쟁에 불이 붙을수록 노동자의 안전과 환경보호 제도는 뒷전이 됐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하루도 쉴 틈 없이 공장으로 향해야 했고, 폐수와 폐기물은 지구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며 쌓여갔다.
섬유쓰레기는 패스트패션시장 규모와 비례해서 늘어나고 있다. 섬유폐기물이 네 배 증가하는 동안 패스트패션 시장도 거의 동일한 폭으로 네 배가량 성장했다. 패스트패션이 성장할수록, 그러니까 우리가 그물 모양 장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옷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을수록 사업장에서 버려지는 폐기물의 양도 비례해 증가한 것이다. 놀랄 것 없는 정직한 계산이자 결과다. 유행의 속도만큼 쓰레기가 나온다. 섬유쓰레기가 곧 패스트패션의 그림자라는 표현은 더 이상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성장하는 패션산업의 규모만큼 검은 잿빛으로 태워지는 쓰레기의 규모도 커진다.
더 절망적인 것은 오늘 생기는 쓰레기가 앞으로 생길 쓰레기 중 가장 적은 양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사람들은 갈수록 옷을 짧게 입고 더 많이 더 자주 산다. 미국에서는 매년 한 사람당 약 70개의 옷과 신발 등을 버린다. 그러는 사이 소비자 한 명이 구매하는 옷의 양은 15년 전보다 60퍼센트 더 늘었고, 미국은 의류폐기물 발생량이 20년 만에 700만 톤에서 1400만톤으로 두 배 증가했다. 전 세계 인구가 1년 동안 구매하는 옷의 양은 5600만 톤에 달한다.
2020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매년 5600만 톤의 옷이 팔리고 있다. 2030년이면 9300만 톤으로, 2050년에는 1억 6000만톤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동시에 매년 섬유쓰레기 9200만 톤이 발생하고 있다. 매초 쓰레기 트럭 한 대 분량의 옷이 버려진다. 지금 이 문장을 읽고 있는 1초, 또 읽고 있는 이 1초 사이에 트럭 한 대만큼의 쓰레기가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는 뜻이다. 2030년쯤이면 버려지는 직물의 총량이 연간 1억 3400만 톤을넘어설 전망이다. 쓰레기의 증가는 활활 타는 나무집을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뻔한 일이다.
그러니 우리가 아무리 버려진 페트병이나 방수천으로 만들어진 티셔츠나 가방을 사며 '지구를 위하고 있다.‘는 심리적 위로감에 젖는다 해도, 브레이크가 고장난 8톤 트럭처럼 속도를 붙이는 패스트패션과 트렌드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런 친환경적 소비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유행과 소비의 텀이 빠르게 돌아가는 한 '제로웨이스트 패션'이나 '의식 있는 소비 (conscious consumption)' 따위는 맥을 추리지 못한다.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소연, 돌고래, 2023, 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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