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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친일파 아닌 사람, 화전민이나 노예뿐", 신복룡 전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석좌교수 프로필 및 경력

by 길찾기91 2024.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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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전 대학교수

 

출생 1942

소속 전 건국대학교 석좌교수

 

건국대학교대학원 정치학 박사

 

 

 

 

“증오의 정치 넘어 야수의 정치… 지금은 해방 직후보다 더 위험”

증오의 정치 넘어 야수의 정치 지금은 해방 직후보다 더 위험 비상계엄·탄핵소추 원로 인터뷰 5 신복룡 前 건국대 석좌교수

www.chosun.com

위 조선일보 인터뷰 중

 

대통령은 미욱해서(하는 일이나 됨됨이가 어리석다는 뜻) 남의 말을 듣거나 공부를 하지 않았고, 야당 대표는 증오의 정치를 넘어 야수의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정치학자이자 한국 현대사 전문가인 신복룡(82) 전 건국대 석좌교수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때론 독설(毒舌)도 서슴지 않으면서,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들며 현하웅변(懸河雄辯)을 펼쳤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은 GDP 그래프로만 선진국일 뿐, 국가를 위해 헌신할 동기도 찾기 어려운 허상의 나라로서 해방 직후보다 더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어쩌다 지금 같은 사태에 이르게 된 걸까요.

 

동기 유발이 다른 어디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지라도, 그 위기를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한 국가 지도자의 미욱함에 책임이 있습니다. 듣기를 거부하는 지도자에게는 약이 없어요. 충신 열 명이 간신 하나를 못 이깁니다.”

 

대통령은 왜 계엄 선포라는 선택을 했던 것이라 보시나요.

 

지도자가 정책에 실패하는 이유는 첫째, 공명심, 둘째, 교만으로 무장된 허영, 셋째, 오판, 넷째는 무지한 탓입니다. 공자는 온갖 만 가지 생각을 하면서도 공부하지 않는 무리가 가장 위험하다(思而不學則殆)’고 했어요. 왕양명은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정치하는 인간들이 공부를 안 해서 그렇다(天下不治, 學術不明)’고 했습니다. 세종은 독서 하느라 새벽닭이 울 때서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돼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국민이 뽑은 국회이니만큼 그 결의를 거부할 명분이 없습니다. 지구 상의 모든 국민은 자기의 분수에 가장 알맞은 국회의원을 뽑습니다.”

 

앞으로 정국은 어떻게 될까요.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결심 공판이 끝나기 전에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 생명을 끊기로 작정했고, 윤 대통령은 탄핵으로 번 6개월 안에 이 대표와 동반 자살하기로 결심했을 겁니다. 이제 탄핵은 정해진 시간 안에 대통령만 죽느냐, 아니면 함께 죽느냐를 가릴 검투사의 혈전이 될 텐데 책사(策士)가 없는 대통령에겐 그리 만만치 않을 겁니다. 역사에선 막 나가는 독종의 승률이 더 높았어요. ‘삼국지로 보자면 지금은 노숙이 아니라 조자룡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어디서부터 어긋난 길을 걸었다고 보십니까.

 

인연이란 소중한 것인데, 윤 대통령은 왜 헤어지는 사람마다 모두 척을 지는지 안타깝습니다. 한동훈이 이재명보다 더 미울 수는 없는 건데, 모처럼 불러놓고 책상에 손을 얹은 채 을러대듯이 말하며 콜라 한 잔 먹여 보내다니요? 이 대표는 민중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진 것이 실수였습니다. 민중에 휩쓸리는 정치인은 민중과 함께 죽고, 민중에게 거역하는 정치인은 민중의 손에 죽습니다. 그들의 환호는 언젠가 독이 돼 돌아올 겁니다. 이 대표는 시대정신을 지닌 인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달성한 대한민국이 2024년에 왜 이런 위기를 겪어야 할까요.

 

민주정이란 본래 취약한 제도이고, 역사적으로 강력한 민주 정부란 없었습니다. 이미 120년 전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세 가지의 파고를 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노동 계급의 터무니없는 요구, 둘째는 훈련되지 않은 자유 의지의 질주, 셋째는 끝이 없는 자본가의 탐욕입니다. 지금 한국은 기이하리만큼 정확하게 베버의 예언에 함몰돼 있죠. 사회적 갈등 비용이 GDP 대비 27%나 되는 나라가 어떻게 건강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종전 이후 후발 국가 중 유일하게 성공한 사례라고 하지만 그 내실은 허상입니다. 경제 정의가 없는 사회에서 졸부들과 생계형 NGO가 횡행하는 세상은 우리가 꿈꾸던 이상 사회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분열돼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은 해방 직후보다 더 위험합니다. 마치 망국 직전의 로마 제국을 보는 것 같습니다. 로마의 민주주의는 민중주의의 허상 속에서 침몰했습니다. 민주주의는 연륜입니다. 서구에선 적어도 200년의 수련 기간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고작 경력 80년인 한국의 민주주의(democracy)가 광기의 정치(democrazy)가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입니다. 이젠 그 정도를 넘어 탄핵의 정치(vetocracy), 증오의 정치(hatocracy)를 지나 야수의 정치(brutocracy)의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 조선일보 2024.12.23.

 

 

 

 

- 일제강점기 일가친척을 통틀어 친일파가 없는 사람은 찾기 어려우며, 친일파로 분류된 소수에게 망국의 책임을 묻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신복룡 전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석좌교수는 7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개최한 '과거사 진실규명 성과 공유를 위한 국제포럼'에서 발제를 통해 한국 사회의 '친일 논쟁'에 대해 문제 제기했다.

신 전 교수는 "한국의 항일 민족주의자들에게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그리고 처가 3족을 합해서 39족에 친일파 없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면 거의 없을 것"이라며 "친일파가 아닌 사람은 화전민이나 노예였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 속에서 친일 논쟁이 대단히 타깃을 비켜 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신 전 교수는 "이완용을 비롯한 '오적'이니 '칠적'이니 하는 것으로 망국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지금 친일 논쟁은 먼저 태어난 자의 슬픔과 늦게 태어난 자의 행운 사이에 이뤄지는 갈등"이라고 했다.

"강요에 따른 것이었든 자발적이었든 우리는 그 시대를 살면서 오로지 애국자뿐이었다""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 누가 손가락질을 하면서 매국을 비난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신 전 교수는 "한 나라가 멸망한다는 것은 갑남을녀까지 다 책임이 있는 건데 우리는 이 망국의 문제를 너무 친일파 몇 사람에게 덤터기를 씌우면서 핵심을 희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 전 교수는 한국의 과거사 청산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친일) 당사자 또는 그 후손은 진정으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친일파의 공소시효가 없다는 얘기는 맞는 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용서하고 어느 시대에 여건이 좋아진 다음, 잊으면서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친일 대가로 받은 모든 반대급부를 환수해야 한다며 국민적 합의로 일몰제(일정 기간만 효력 등을 유지하는 제도)를 정하고 연좌제를 배제하는 것도 친일 문제 해결 방안으로 언급했다. - 연합뉴스 2024.11.7.

 

 

 

[신복룡의 신 영웅전] ‘조선 건국의 장자방정도전의 고언

2024. 11. 7. 00:04

 

정도전(鄭道傳·1342~1398)을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쉽지 않다. 곱게 보는 사람과 밉게 보는 사람의 시각에서 중도를 지키도록 애쓰면서 바라본다면, 정도전을 읽는 키워드는 세 가지다. 수재라는 점, 지략을 겸비했다는 점, 그리고 신분 상승을 꿈꾸면서 펼쳤던 야망이다. 이성계는 정도전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중용했고, 정도전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조선 건국의 기틀을 짰다.

 

정도전은 새 왕조 건설에 기여하고 싶은 꿈이 컸다. 그러나 재사들이 흔히 겪는 실수를 그도 비껴가지 못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한 고조 유방(劉邦)이 장자방(張子房)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 고조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행간에는 이성계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성계를 선택한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술자리의 실언이라기보다는 취중진담(醉中眞談)이었을 것이다. 그는 조선 건국의 장자방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이미 그때 정도전을 제거하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1394)에 정도전이 그린 개국의 꿈을 보면, 그가 공화국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국부 반열에 들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불행히도 서출의 후손이라는 좌절감과 면전에서 정몽주로부터 겪은 모욕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 그 한을 극복하지 못한 트라우마 때문에 비극적 생애를 마쳤다. 그 한을 더 고결하게 승화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정도전의 꿈과 의도를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가 이 시대 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을 것 같은 점을 내 나름대로 뽑아본다. 위엄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함부로 복수심에서 정적을 탄핵하지 말 것이며(경제문감대관(臺官)), 헤픈 사면이 뒷날의 재앙을 부른다는 점(고려사정도전 열전)이다. 90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세상은 그리 바뀌지 않았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신복룡의 신 영웅전] 건국절 논란과 단군의 개천절

2024. 10. 3. 00:17

 

건국기념일을 둘러싸고 어수선한 시절에 문득 4356주년 개천절(開天節) 아침이 밝았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지 왜 신화 같은 단군의 자손이냐는 교파의 비난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신화는 낱낱이 설명으로 밝혀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어느 나라에나 건국 설화가 신화로 구성된 것을 탓할 일도 아니다.

 

단군이 곰과 동거해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곰이 실제로 사람이 됐다는 뜻이 아니다. 곰을 숭배하는 종족에서 아내를 얻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호랑이를 숭상하는 민족인데 왜 하필이면 호랑이가 아닌 곰을 아내로 맞이했을까.

 

그것은 호랑이족끼리의 동족혼(同族婚)이라는 근친상간을 피하면서 이족혼(異族婚)을 통해 우생(優生)을 얻으려던 종족 보존 의지의 표현이었다. 단군이 200년을 살았다는 것도 그가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왕조가 200년 동안 지속했다는 뜻으로 읽으면 크게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니 국가에 실익이 없는 건국절 논쟁은 통일될 때까지 여기에서 덮는 것이 순리다. 국회의장이라는 사람이 광복절 행사를 거부하고 불참한 것은 대통령이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것보다 더 참월(僭越)하다. 일찍이 이토록 황당하고 옹졸한 삼부 요인이 역사에 없었다.

 

지금이 국수주의 시대는 아니지만 왜 우리는 국가와 국기와 국가(國歌) 앞에 좀 더 숙연해질 수 없을까. 망국의 식민지 치하에서 국가가 없던 시절에 우리의 국적이 한국이었다는 주장은 애국 단체의 허망한 탄식일 뿐 정론이 아니다.

 

서울 신촌 봉원사 국기게양대를 바라볼 때면 그 주지 스님의 뜻이 고맙다. 왜 우리는 각종 종교의 교당에 태극기가 걸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없을까. 국가·태극기·애국가의 존엄함에 대한 국민의 참모습을 본 지 오래다. 그래서 개천절 아침이 우울하다. 그러나저러나 오늘 아침에 국기는 게양하셨는지.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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