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 전 대학교수
출생 1942년
소속 전 건국대학교 석좌교수
건국대학교대학원 정치학 박사
- 일제강점기 일가친척을 통틀어 친일파가 없는 사람은 찾기 어려우며, 친일파로 분류된 소수에게 망국의 책임을 묻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신복룡 전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석좌교수는 7일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개최한 '과거사 진실규명 성과 공유를 위한 국제포럼'에서 발제를 통해 한국 사회의 '친일 논쟁'에 대해 문제 제기했다.
신 전 교수는 "한국의 항일 민족주의자들에게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그리고 처가 3족을 합해서 3대 9족에 친일파 없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면 거의 없을 것"이라며 "친일파가 아닌 사람은 화전민이나 노예였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 속에서 친일 논쟁이 대단히 타깃을 비켜 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신 전 교수는 "이완용을 비롯한 '오적'이니 '칠적'이니 하는 것으로 망국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지금 친일 논쟁은 먼저 태어난 자의 슬픔과 늦게 태어난 자의 행운 사이에 이뤄지는 갈등"이라고 했다.
또 "강요에 따른 것이었든 자발적이었든 우리는 그 시대를 살면서 오로지 애국자뿐이었다"며 "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 누가 손가락질을 하면서 매국을 비난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신 전 교수는 "한 나라가 멸망한다는 것은 갑남을녀까지 다 책임이 있는 건데 우리는 이 망국의 문제를 너무 친일파 몇 사람에게 덤터기를 씌우면서 핵심을 희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 전 교수는 한국의 과거사 청산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친일) 당사자 또는 그 후손은 진정으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친일파의 공소시효가 없다는 얘기는 맞는 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용서하고 어느 시대에 여건이 좋아진 다음, 잊으면서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친일 대가로 받은 모든 반대급부를 환수해야 한다며 국민적 합의로 일몰제(일정 기간만 효력 등을 유지하는 제도)를 정하고 연좌제를 배제하는 것도 친일 문제 해결 방안으로 언급했다. - 연합뉴스 2024.11.7.
[신복룡의 신 영웅전] ‘조선 건국의 장자방’ 정도전의 고언
2024. 11. 7. 00:04
정도전(鄭道傳·1342~1398)을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쉽지 않다. 곱게 보는 사람과 밉게 보는 사람의 시각에서 중도를 지키도록 애쓰면서 바라본다면, 정도전을 읽는 키워드는 세 가지다. 수재라는 점, 지략을 겸비했다는 점, 그리고 신분 상승을 꿈꾸면서 펼쳤던 야망이다. 이성계는 정도전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중용했고, 정도전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조선 건국의 기틀을 짰다.
정도전은 새 왕조 건설에 기여하고 싶은 꿈이 컸다. 그러나 재사들이 흔히 겪는 실수를 그도 비껴가지 못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한 고조 유방(劉邦)이 장자방(張子房)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 고조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행간에는 ‘이성계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성계를 선택한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술자리의 실언이라기보다는 취중진담(醉中眞談)이었을 것이다. 그는 ‘조선 건국의 장자방’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이미 그때 정도전을 제거하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1394)에 정도전이 그린 개국의 꿈을 보면, 그가 공화국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국부 반열에 들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불행히도 서출의 후손이라는 좌절감과 면전에서 정몽주로부터 겪은 모욕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 그 한을 극복하지 못한 트라우마 때문에 비극적 생애를 마쳤다. 그 한을 더 고결하게 승화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정도전의 꿈과 의도를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가 이 시대 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을 것 같은 점을 내 나름대로 뽑아본다. 위엄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함부로 복수심에서 정적을 탄핵하지 말 것이며(『경제문감』 대관(臺官)), 헤픈 사면이 뒷날의 재앙을 부른다는 점(『고려사』 정도전 열전)이다. 90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세상은 그리 바뀌지 않았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신복룡의 신 영웅전] 건국절 논란과 단군의 개천절
2024. 10. 3. 00:17
‘건국기념일’을 둘러싸고 어수선한 시절에 문득 4356주년 개천절(開天節) 아침이 밝았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지 왜 신화 같은 단군의 자손이냐”는 교파의 비난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신화는 낱낱이 설명으로 밝혀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어느 나라에나 건국 설화가 신화로 구성된 것을 탓할 일도 아니다.
단군이 곰과 동거해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곰이 실제로 사람이 됐다는 뜻이 아니다. 곰을 숭배하는 종족에서 아내를 얻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호랑이를 숭상하는 민족인데 왜 하필이면 호랑이가 아닌 곰을 아내로 맞이했을까.
그것은 호랑이족끼리의 동족혼(同族婚)이라는 근친상간을 피하면서 이족혼(異族婚)을 통해 우생(優生)을 얻으려던 종족 보존 의지의 표현이었다. 단군이 200년을 살았다는 것도 그가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왕조가 200년 동안 지속했다는 뜻으로 읽으면 크게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니 국가에 실익이 없는 건국절 논쟁은 통일될 때까지 여기에서 덮는 것이 순리다. 국회의장이라는 사람이 광복절 행사를 거부하고 불참한 것은 대통령이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것보다 더 참월(僭越)하다. 일찍이 이토록 황당하고 옹졸한 삼부 요인이 역사에 없었다.
지금이 국수주의 시대는 아니지만 왜 우리는 국가와 국기와 국가(國歌) 앞에 좀 더 숙연해질 수 없을까. 망국의 식민지 치하에서 국가가 없던 시절에 우리의 국적이 한국이었다는 주장은 애국 단체의 허망한 탄식일 뿐 정론이 아니다.
서울 신촌 봉원사 국기게양대를 바라볼 때면 그 주지 스님의 뜻이 고맙다. 왜 우리는 각종 종교의 교당에 태극기가 걸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없을까. 국가·태극기·애국가의 존엄함에 대한 국민의 참모습을 본 지 오래다. 그래서 개천절 아침이 우울하다. 그러나저러나 오늘 아침에 국기는 게양하셨는지.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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