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식 전 기초의회의원, 정당인
출생 1977년
소속 정의당 경기도당 위원장
- 서울대학교 해양학 학사
- 1998.11 ~ 1999.10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연대사업국장
- 2001.09 ~ 2005.01 ㈜이씨오 프로그래머
- 2001 과천시 보육조례 개정운동본부 회원
- 2003 스윙댄스 동호회 해피스윙 공연단
- 민주노동당 경기도당 과천시 위원회 지방자치위원장
- 과천도시환경연구소 환경복지 팀장
- 학교급식조례제정 운동본부 민주노동당 과천시 위원
- 과천지방자치개혁연대 운영위원
- 과천시립병원 추진운동본부 정책위원
- 과천환경운동연합 회원
- 과천민속보존회 일무동 회원
- 맑은내방과후학교 후원회장
- 2006.07 ~ 2010.06 제5대 경기도 과천시의회 의원
- 2006.07 ~ 2008.07 제5대 경기도 과천시의회 전반기 업무보고특별위원회 위원
- 2006.07 ~ 2008.07 제5대 경기도 과천시의회 전반기 예산결산 및 조례심사특별위원회 위원
- 2006.08 ~ 2006.08 제5대 경기도 과천시의회 레저세등재정보전대책특별위원회 위원
- 2006.12 ~ 2006.12 제5대 경기도 과천시의회 정부과천청사이전대책특별위원회 위원
- 2008.07 ~ 2010.06 제5대 경기도 과천시의회 후반기 업무보고특별위원회 위원
- 2008.07 ~ 2010.06 제5대 경기도 과천시의회 후반기 예산결산 및 조례심사특별위원회 위원
- ㈜ECO 근무 프로그래머
- 진보신당 경기도당 과천시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 과천 청계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
- 갈현·문원·부림동 주민자치위원회 고문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위원
- 2010.07 ~ 2014.06 제6대 경기도 과천시의회 의원
- 2010.07 ~ 2012.07 제6대 경기도 과천시의회 전반기 부의장
- 2010.07 ~ 2012.07 제6대 경기도 과천시의회 전반기 업무보고 및 조례심사특별위원회 위원
- 2010.07 ~ 2012.07 제6대 경기도 과천시의회 전반기 예산결산 및 조례심사특별위원회 위원
- 2010.11 ~ 2010.11 제6대 경기도 과천시의회 지속가능한과천비전수립특별위원회 위원
- 2010.11 ~ 2010.11 제6대 경기도 과천시의회 정부과천청사이전대책특별위원회 위원
- 2011.03 ~ 2011.03 제6대 경기도 과천시의회 의견청취특별위원회 위원
- 2011.04 ~ 2011.04 제6대 경기도 과천시의회 과천시애향장학회감사원감사결과에 대한 행정사무조사특별위원회 위원
- 2012.01 ~ 2012.01 제6대 경기도 과천시의회 과천시의회공간에너지활용을위한특별위원회 위원
- 2012.03 ~ 2012.03 제6대 경기도 과천시의회 부당이득금반환소송관련행정사무조사특별위원회 위원
- 2012.05 ~ 2012.05 제6대 경기도 과천시의회 지속가능한과천비전수립특별위원회 위원
- 2012.07 ~ 2014.06 제6대 경기도 과천시의회 후반기 의장
- 2015.01 ~ ㈜SNCC 대표이사
- 2020.02 ~ 정의당 경기도당 의왕·과천시 지역위원회 위원장
선거경력
2006년 | 지방 선거 | 5대 | 시의원 | 경기 과천시 (나 선거구) | 민주노동당 | 1,851표 | 2위 | 초선, 민선 4기 | ||
2010년 | 지방 선거 | 6대 | 시의원 | 경기 과천시 (나 선거구) | 진보신당 | 4,054표 | 1위 | 재선, 민선 5기 | ||
2020년 | 총선 | 21대 | 국회의원 | 경기 의왕시·과천시 | 정의당 | 4,581표 | 4위 | 낙선 |
황순식 정의당 경기도지사 출마선언문
존경하는 경기도민 여러분, 사랑하는 정의당원 여러분!
정의당 경기도당 위원장 황순식, 오늘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합니다.
우리 삶을 바꾸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위대한 우리 국민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어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문화 컨텐츠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는 자부심을 가질 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여전히, 아니 예전보다 더 행복하지 않습니다.
삶이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은
불평등과 차별이라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히고
기후위기와 펜데믹, 노후에 대한 불안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이러다가는 다 죽어!”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대사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 대사가 더욱 가슴에 와 닿습니다.
대한민국은 부동산 계급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저 아파트 사는 애와 놀지 마라”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계층이동의 사다리는 사라진 지 오래며,
흙수저인지 금수저인지에 따라 청년의 삶이 결정되고 있습니다.
노인빈곤과 노후불안은 더 커지고, 한반도에는 다시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코로나 확산세는 한풀 꺾였고, 강원도 산불은 겨우 진화되었지만,
기후위기와 팬데믹은 현재진행형으로, 우리 삶을 계속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벽을 허물고 위협을 제거해야 합니다.
주거 양극화, 소득·자산 양극화, 그리고 일자리 양극화,
세대 간, 남녀 간의 벽, 지역과 국적, 국가 간의 벽,
그 벽들을 만들고 높이는 모든 차별과 불평등, 혐오와 적대를 제거해야 합니다.
집과 에너지, 사회 체제의 전면적인 녹색전환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해야 합니다.
차별 없이 함께 섞이고 어울리는 주거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노후보장을 두텁게 하며, 한반도에서부터 평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정치의 역할이자 국가의 존재 이유입니다.
민생보다 권력투쟁이 우선인 정치.
가치와 비전은 사라지고 상호적대만 남은 생계형 정치.
이제는 끝내야 합니다.
경기도의 미래가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경기도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지자체입니다.
인구와 경제 모두 4분의 1을 넘게 차지하고 있습니다.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며, 가장 많은 아이들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경기도의 미래를 책임질 도지사를 뽑는 이번 선거에서
“이재명을 지켜야 한다.” “윤석열을 엄호해야 한다.” 라는
정치논리만이 판치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둘 다 틀렸습니다.
경기도지사 선거는 경기도민의 더 나은 삶에 대한 비전을 경쟁하는 장이어야 합니다.
정치논리밖에 남지 않은 이유는 둘 사이의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윤심과 명심이 아닌 민심을 대변할 도지사가 필요합니다.
고통 받는 도민들을 위한 정치와 행정이 필요합니다.
저 황순식이 그 차이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주거불안, 교통지옥, 노동재해 등 도민의 고통을 해결하겠습니다.
기후위기, 노후빈곤, 전염병 등 도민의 불안을 극복해 나가겠습니다.
경기도를 그린으로 전면 리모델링하겠습니다,
억강부약. 공정한 경기도를 만들겠습니다.
이재명 지사의 방향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대출은
대한민국의 경제·복지 정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단호한 불법근절은 정치의 효능감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노동이사제, 비정규직공정수당은 ‘아 이게 되는 구나’라는 감동을 주었습니다.
많은 제약에도 평화부지사를 두고 남북평화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합니다.
홍보관으로 끝난 기본주택을 더 발전시키고, 반드시 현실로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공공과 민간이 부담과 이익을 함께 나누는
환매조건부-지분공유형 ‘반의반값 주택’을 도입하겠습니다.
빈부격차 없이 함께 사는 소셜믹스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그린 리모델링을 추진하겠습니다.
GTX를 조속히 추진하고, 노선을 연장하며
전 도민 대중교통비 지원을 통해 이용률을 높이고 녹색교통을 확대하겠습니다.
청년, 신혼부부, 무주택자들에게 임대료와 전세이자를 지원해서
주거비 부담을 덜어드리겠습니다.
기본소득은 농어민, 청소년·학생, 예술인 등 가장 필요한 분들을 시작으로,
실효성 있게 확대되어야 합니다.
노동이사제, 비정규직공정수당이 의미 있게 기능하도록 발전시키고,
사회 전반으로 확대시켜야 합니다.
남북교류와 접경지대의 평화적 활용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오직 경기도에서 정책과 정치를 고민해온 저 황순식이
감히 그 일을 할 적임자라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청년정치의 가능성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청년정치가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기회의 문이 좁아진 청년의 삶이 힘겨워졌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청년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고
변화와 창조의 힘과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년은 늘 더 나은 내일을 꿈꿉니다.
우리 청년은 변화를 만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16년 전 만 28세에 시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저는 청년정치 1세대입니다.
소위 86이라 불리는 선배들과 2030이라 불리는 후배들 사이의 X세대입니다.
1977년에 태어난 저의 첫 정치적 경험은 박정희 대통령 조문행렬이었습니다.
1997년 대학시절 권영길 후보 선거운동을 하며 대한민국의 첫 정권교체를 보았습니다.
그 김대중 대통령 시절, 시위를 하며 사회와 정치를 배운 저는 민주화 이후 세대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환경문제를 접하며
처음으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 해양학을 전공하며 기후위기에 대해 공부하였습니다.
어린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저에게 기후위기 대응은 절박한 과제입니다.
최초의 신도시로 재건축·재개발의 폭풍 속에 있던 과천에서 정치를 시작하였습니다.
매일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가진 시민들과 함께하며 정치를 배웠습니다.
“공동체와 환경을 지키며 어떻게 더 나은 변화를 만들어갈 것인가?”
제 정치의 첫 번째 화두입니다.
저와 같이 지방선거에서 도전하고 있는 모든 청년정치인들을 응원합니다.
아래로부터 민심을 배우고, 공익을 위해, 사회를 바꾸기 위해
인생을 건 청년들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그리고 저 황순식은 그러한 청년정치인들의 미래입니다.
그러한 책임감으로, 젊은 열정으로, 함께 살자는 균형감으로
더 나은 경기도를 만들겠습니다.
경기도의 변화를, 우리 삶의 더 나은 변화를 바라신다면
황순식을 선택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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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출마선언문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자랑스런 정의당 당원 여러분,
정의당 경기도당 위원장 황순식입니다.
저는 오늘,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합니다.
본격적인 정견 발표 전에, 어찌 보면 사사로울 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저 황순식은 77년생, 올해 만 43세입니다.
대한민국 경제 발전을 이뤄낸 세대를 부모로 두었고,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이끈 86세대와 불평등 대한민국에 신음하는 20·30세대의 가운데,
대한민국 경제와 문화의 중심에 있는 40대입니다.
86과 MZ(엠젯)에 대한 세대비평이 유행인 오늘의 정치권에서
유독 인기 없는 세대입니다.
미디어는 한때 저희를 ‘X세대’라 부르곤 했습니다.
X세대 황순식은 문화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라는 시대의 행운을 누렸습니다.
낮에는 사상과 철학을 토론하고, 밤에는 롹카페와 대학가를 누볐던 저는
모든 세대에 빚을 진 셈입니다.
자유와 풍요를 선물해 주신 선배 시민들께는 감사하고,
무한경쟁 속에 살아가는 후배 시민들께는 염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섰습니다.
세대갈등의 한복판에서, 그저 사이에 낀 방관자가 아니라
시대와 시대를 잇는 소통자가 되어서 갚고 싶습니다.
서태지가 불편했던 세대, 그리고 아예 서태지를 모르는 세대 모두가 가진 ‘시대유감’을
서태지 세대인 제가 씻어내어 되갚고 싶습니다.
세대와 세대, 문화와 문화, 시대와 시대를 잇는 소통자가 되겠습니다.
통합과 이행을 위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자 정의당 대통령 후보에 도전합니다.
사랑하는 시민 여러분,
코로나-19가 지구를 휩쓸고 있습니다.
팬데믹 상황은 외면했던 우리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었고, 확대시키고 있습니다.
소득과 자산 양극화는 심해졌고, 타인을 향한 분노와 혐오는 깊어졌습니다.
빙하가 녹고, 나무가 불타고 있습니다. 통계와 수치를 구태여 언급하지 않아도
매일 체감하는 이상 기후가 지구의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지구가, 우리 사회가 공상과학 영화 속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은
더 이상 ‘공상’이 아닙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국가와 국가가 공존할 수 있는 인류사의 전환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합니다.
망가지고 있는 문명을 재설계해야 합니다.
엘리트 과학자도, 뛰어난 외교가도, 위대한 군주도 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우리가, 그리고 정치가 해야 합니다.
기후위기의 지구 앞에, 불평등의 대한민국 앞에, 정치는 답해야 합니다.
적대와 분열, 혐오의 칼들이 난무하는 정치를 이제 CHANGE, 바꿔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러나 우리 정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촛불로 정권을 바꾼 국민은 “그래서 뭐가 달라졌느냐?” 묻고 있습니다.
모두가 권력을 갖겠다고 싸우지만,
그 권력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말하는 건 뒷전입니다.
기득권 양당에 고합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저울질은 그만합시다.
누구의 로맨스가 지저분한 불륜이었는지 따져 묻는 것도 멈춰야 합니다.
누가 더 불공정했고, 누가 덜 부패했는지 싸워서는
21세기 시민의 삶을 절대 바꿀 수 없습니다.
권력은 늘 웅크리고 머무르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진보가 필요합니다.
진보는 고여 있지 않고 흐르는 것입니다.
진보는 고여 있는 권력을 세상을 위해 펼칩니다.
황순식의 진보정치는 더 아래로, 아래로 흐르겠습니다.
정의당부터 바꾸겠습니다.
세상을 바꾸자는 진보정당이 스스로의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옳았다고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을 실현시키지 못한 이유를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 안의 낡고 오래된, 굳어버린 것들을 드러내고 깨부수어 유연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새로운 사유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그 동안과는 다른 진보의 길을 개척하겠습니다.
때론 굽이치고 돌아갈지라도 다양한 물줄기를 만나며 넓어질 것입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이고, 시민을 만나는 공간이자,
우리가 풍성해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안합니다.
더 큰 진보를 위한 제3지대,
다시는 배신할 수 없는 강력한 촛불 연대를 만들자고 말입니다.
그렇게 모인 우리는 2022년 한국정치의 가장 유력한 변수가 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움직여 바람을 일으킵시다.
입만 열면 경제성장을 말하는 구 보수,
입만 열면 민주개혁을 이야기하는 구 진보와는 달라야 합니다.
새로운 세상과 공존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결집하는 플랫폼을 만듭시다.
황순식은 이 오래된 구태정치에 맞선 평화적 저항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든 진보, 모든 정의가 모일 수 있는 광장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시작은 정의당 경선이지만, 기존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모든 사람을 설득하겠습니다.
기후위기, 불평등 심화, 미중 신냉전, 인류와 한반도의 존립 자체가 의문시되는
역사상 가장 전환적인 시기에
어느 때 보다도 평이하고 구태의연한 대선이 진행되는
이 기이한 풍경을 바꾸겠습니다.
모든 노동시민이 행복한 나라, 황순식이 만들겠습니다.
월급쟁이도, 자영업자도, 프리랜서도, 그리고 우리 모두는 노동하는 시민입니다.
AI와 로봇, 온라인 플랫폼은 효율성과 생산력을 급격히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더 적은 노동을 사용하며 막대한 부를 생산하는 고부가가치 산업과
(그렇지 못한) 저부가가치 산업으로 양분된 경제는 심화되는 양극화의 큰 원인입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진보는 1%, 10%가 아닌
모든 시민의 자유와 풍요에 기여해야 합니다.
부의 재분배를 통해 격차를 줄여야 합니다.
재교육과 재취업을 통해 노동 이동의 사다리를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직업과 부의 세습을 줄여야 합니다.
이러한 큰 방향으로 다양한 실용적 대안들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과거의 산업구조에 맞춰져 있는 노동법과 관계 제도를 CHANGE, 바꿔야 합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지향하는 임금체계로의 전환을 적극 검토해야 합니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기본소득과
전국민 고용보험 등의 노동 안전망이 더 필요합니다.
모든 시민이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주거안전망도 필수입니다.
부동산 벼락부자는 모두 비슷한 이유로 황홀할지 모르지만,
주거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시민은 저마다의 이유로 절망합니다.
지역균형발전, 공공주택 확대, 민간주택 공급 활성화, 1인가구 주거환경 개선 등
가능한 모든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기후악당국에서 기후선진국으로, 황순식이 실현하겠습니다.
성장과 편의를 핑계로 외면하는 사이 기후위기는 눈앞에 닥친 현실이 됐습니다.
우리에겐 계산기를 두드리며 고민할 시간이 더 이상 없습니다.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합니다.
화석연료와 원자력 기반의 지속 불가능한 에너지 발전 방식을 CHANGE, 바꿔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신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산업구조와 사회시스템 전반의 재설계가 필요합니다.
또한 신재생에너지 확대뿐 아니라
건축물 에너지 효율화, 최대 전력수요 분산, 대중교통 확대 등
병행해야 할 정책 과제도 많습니다.
그리고 이 거대한 변화 앞에
더 위험한 사람들을 위한 공동체의 안전망은 더 촘촘해져야 합니다.
이제 대한민국 산업 정책의 최우선적 고려는
기후정의와 녹색회복,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좁고 밀도가 높은 한반도 남단만의 탄소중립은 쉽지 않으며,
대한민국의 탄소중립만으로 지구의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국경을 넘어 협력하고, 전 지구적으로 연대해야 합니다.
한반도 탄소중립, 나아가 동아시아 탄소중립,
그리고 신재생에너지 슈퍼그리드를 반드시 추진해야 합니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남북국 시대, 황순식이 열겠습니다.
한반도의 분단은 끊임없는 적대와 분열의 씨앗입니다.
상대의 체제를 부정하는 흡수통일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CHANGE, 바꿔야 합니다.
남과 북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함께 살아야 합니다.
좋은 이웃으로 살 것인지, 원수관계로 살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헌법 3조, 영토조항부터 고쳐야 합니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하며 우리부터의 변화를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고,
수교와 교류, 협력을 통해 평화롭고 번영하는 상생의 한반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신뢰가 쌓이면 통일은 어느새 현실이 될 것입니다.
‘노동의 희망, 시민의 꿈’ 정의당 당원 여러분,
황순식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얼굴이 아닙니다.
20여 년 진보정당의 역사를 함께했고, 정의당을 지켰습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의 벅찬 순간을 지나,
2006년 스물여덟 살에 시의원이 되었습니다.
진보정당의 간판으로 당당히, 기초의회 의장으로 정치 경력을 쌓았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었습니다.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정치화했고, 무상급식과 무상의료를 도입했습니다.
우리가 만든 수많은 복지 정책은 대한민국의 제도가 됐습니다.
저는 앞으로 20년 후에도, 환갑이 넘어서도
자랑스러운 진보정당의 당원일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당이 주춤했습니다.
많은 당원이 떠났고, 흔들렸습니다.
무기력의 늪에 빠진 정의당의 현재가, 저를 오늘 이 자리에 있게 했습니다.
얼마 전 존경하는 두 선배님들이 정의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 의지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정의당은 지금, CHANGE, 변화가 절실합니다.
정의당은 다시 젊어져야 합니다.
정의당은 더 넓어지고 더 깊어져야 합니다.
대표선수를 교체할 출렁이는 경선판의 첫걸음은 제가 떼겠습니다.
당원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제게 힘을 주십시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부터 시작입니다.
대한민국을 바꿀 정책과 비전을 순서대로 발표하겠습니다.
난장판 대선의 분명한 ‘제정신’을 맡겠습니다.
역사로부터 배우고, 낮은 자세로 연대하며,
작지만 큰 울림으로 세상과 마주하겠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이라는 단어는 잊어버립시다.
‘지금’, ‘여기’ 황순식이 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황순식을_소개합니다_1
[상계동 올림픽]
(필자는 정의당의 당원입니다. 네 편의 글을 황순식의 채널에 제공합니다. 새로운 도전 앞에 선 황순식을 응원하고, 자신의 스토리는 드라마틱하지 않다는 겸손함에 반대하며, 그래도 꽤 오래 정치했는데 어느 정도 알려지지 않았겠냐는 얄팍한 기대를 깨부수기 위함입니다. 황순식의 삶을 아주 간략히, 제 마음대로 줄였습니다.)
황순식은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태몽 같은 건 노잼이라 빼겠습니다. 다만, 촌스러운 이름에 불만은 없었다니 씩씩한 소년이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어머니는 약사, 아버지는 대학 강사였습니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반에 부모님 모두 대졸 학력을 가진 사람이 자기뿐이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우쭐할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마 부모님의 영향 덕분이었을 겁니다.
부모님은 공동체 규범을 따르는 준법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했습니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친구들이 모두 강남 소재 고교로 진학했지만, 그는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흔했던 위장전입 따위를 할 부모님이 아니었습니다.
커다란 책장에는 책이 빼곡했고, 부모님은 늘 책을 읽었습니다. 그도 그랬습니다. 황순식의 학구적인 면모는 어쩌면 이때부터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공부는 열심히 안 했답니다. 아버지의 사업과 선교 활동을 위해 가족 모두가 중국으로 떠날 계획이었으므로 본인은 대학 입시를 피할 수 있다고 믿은 모양입니다.
깜찍했던 혼자만의 착각은 곧 깨졌습니다. 병역이 문제였습니다. 만 17세를 넘긴 남고생에게 비자를 내어줄 만큼 대한민국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혼자 한 착각이니, 당황도 혼자 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태연히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남고, 우리는 간다”
과외를 해서 생활비를 벌 수 있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 바로 입대하라는 협박 비슷한 지침도 주셨습니다. 그렇게 고3 수험생 황순식은 친척 집에 맡겨졌습니다.
분당으로 전학한 그는 필사적으로 공부했습니다. 낯선 환경은 차라리 집중하기 좋았습니다. 낙천적인 성격과 신앙도 도움이 됐습니다. 어릴 적부터 과학자가 꿈이었던 그는 가장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진학하는 국립대학교 자연과학부에 합격했습니다.
양자역학 원서를 사서 읽으며 시작했던 황순식의 대학 생활은 성격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두려움이 없던 그에게 캠퍼스는 신세계였습니다. 학부를 넘어 사귄 학우들과 책 읽고, 토론하고, 노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역사는 알았지만, 세상과 사회를 고민할 기회가 부족했던 황순식은 곧 단편 영화 한 편을 만나게 됩니다.
'상계동 올림픽'
그는 88 올림픽 성공적 개최의 이면을 알게 됐습니다. 도시 빈민들의 터전을 강제로 철거한 국가의 폭력에 분노했습니다. 상계동은 올림픽을 스포츠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이 부조리를 어떻게 뿌리 뽑아야 하나?’, ‘언론은 왜 침묵하는가?’ 질문에 답을 찾아야 했습니다.
황순식은 대학 2학년이었던 1997년 12월, 외환위기 사태를 맞습니다. 정치인과 관료, 재벌과 기업 등 기득권의 무능함에 또 분노했습니다. ‘어떻게 나라를 이 꼴로 만들 수 있나?’ 그 질문에도 답을 찾아야 했습니다.
바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 황순식은 국민승리21 권영길을 선택했습니다. 선거운동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는 아예 학생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대학 4학년 때는 총학생회에서 연대사업국장을 맡았고, 수도권의 데모 현장을 모조리 쫓아다녔습니다. 거리와 현장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은 배움을 주었지만, 학생운동은 고난이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학생운동은 이미 그늘이 짙게 깔린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신세계는 알고 보니 혼돈의 세계였습니다.
“나중에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지만, 지금 믿는 것을 실천에 옮기자. 그 대신 지금의 믿음이 옳은지 계속 성찰한다면 끝내 가장 옳은 방향에 있게 될 것이다”
고민이 잠정 결론을 낼 무렵, 그는 민주노동당에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1999년 8월 창당 발기인대회는 기대와 흥분의 시간이었습니다. 2000년 1월 30일, 진보정당의 역사를 새로 쓴 민주노동당은 창당했습니다.
황순식의 진보정치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황순식을_소개합니다_2
[스물여덟 살 시의원]
15년 전 시작한 황순식의 진보정치에는 늘 ‘현재’가 있습니다. 그가 고민해 만들고, 성취했던 것들은 작금의 진보정치가 갈구하는 그것입니다. 그가 부딪혀 깨지고, 실패했던 것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에 고스란히 병폐로 남았습니다.
황순식의 진보정치를 향한 갈망은 ‘민주노동당’에 도착했습니다. 경기도 과천시에 살던 그는 이른바 486세대 선배들과 지역 정치를 꿈꿨습니다.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통한 새로운 세대의 편입이 막힌 15년 전부터 지금까지 황순식은 그 공간에서 막내입니다.
병역의 의무를 끝낸 황순식은 세계여행을 떠납니다.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타고, 프랑스와 터키에 머물렀습니다. 북경에서 열차를 타고 몽골, 바이칼을 거쳐 모스크바, 동유럽을 구경했습니다.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접한 황순식의 사고는 더없이 열렸습니다. 정치인 황순식의 포용력은 아마 이때 완성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2006년, 그는 지방선거에 도전합니다. 그의 나이 만 28세, 지지자는 물론 캠프 구성원들조차 당선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객관적 지표에 따른 상식적 판단이었습니다. 그러나 황순식은 당선을 의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현장의 분위기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3인까지 당선하는 선거에서 그는 15.83%, 득표율 2위로 시의원이 됐습니다. 2010년, 두 번째 선거는 더했습니다. 22.4%, 득표율 1위였습니다. 그는 재선 시의원과 시의회 부의장을 거쳐 급기야는 과천시의회 의장을 역임합니다. 전국 최연소, 소수정당 소속 의원으로서는 찬란한 성취였습니다.
황순식은 지금도 여전히 갈구하는 ‘청년정치’를 지역에서 성공시켰습니다.
오직 어리다는 이유로 지역에서 성공할 리 없습니다. 청년정치인의 도전이 있었고, 선배·동료들의 지원이 있었으며, 분명 운도 따랐을 겁니다. 그는 청년정치를 정체성 정치로 이해하진 않습니다. 그러면서 청년정치인이 필요한 이유를 네 가지로 설명합니다. 다양한 세대를 대변하는 정치가 있어야 하고, 현장에서 경험하는 청년이 필요하며, 젊음은 공부와 배움에 익숙하고, 열린 사고는 시민들과 더 격의 없이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황순식은 지금도 여전히 갈구하는 ‘여성과 환경’ 정책을 먼저 고민했습니다.
그의 정책은 주로 육아와 여성, 환경과 건강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공공보육과 무상의료, 방과 후 활동센터 공약이 그랬고, 청사 이전과 재건축 도미노에 맞선 도시재생과 지속가능한 발전모델이 그랬습니다. 이제는 상식이 되어버린 진보적 의제를 황순식은 15년 전에도, 11년 전에도 지역 주민에게 상품으로 제공했습니다.
황순식은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는 ‘갈등과 투쟁, 그리고 협상’을 경험했습니다.
정치는 늘 갈등과 이해, 투쟁과 협상의 긴장 속에 있었습니다. 그는 정치를 ‘공존의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정의합니다. 갈등을 평화로 만드는 것이 좋은 정치, 소속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갈등을 부추기는 것을 나쁜 정치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뻔하디뻔한 수사 같지만 몇 가지 일화가 그의 진정성을 지탱합니다.
재선 초기, 6·25 참전용사 기념비 제막식이 있었습니다. 그는 보훈회관 이전 건립 등에 들어간 예산이 낭비처럼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마주한 기념비도 조악했습니다. 그러나 애국가가 울리고, 참전용사들의 눈물을 본 그는 바로 생각을 고쳤습니다. 숨이 턱 막혔습니다. 국가의 부름에 자신의 인생을 내던진 우익 어르신들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의정활동 내내 과천시의 가장 주요한 이슈는 개발이었습니다. 녹지에 둘러싸인 저밀·저층의 도시환경을 사랑하는 시민들과, 준강남을 외치며 당선한 시장의 비전에 환호하는 시민들의 갈등이 첨예했습니다. 황순식의 정책적 가치판단은 물론, 전자를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투쟁하는 대신, 대안을 찾습니다. 황순식은 ‘비전특위’를 만들어 도시계획과 재건축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김수현 청와대 전 정책실장, 변창흠 전 국토부장관, 조명래 전 환경부장관도 멤버였습니다. 특위에서 나온 안들을 가지고 끊임없이 협상했지만 끝내는 실패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 황순식은 2014년 선거에서는 과천시장에 도전합니다. 진보진영 내부 경선에서 탈락한 그는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단일화 실패를 목격해야 했고, 새누리당에서 낙하산으로 공천한 후보가 집권하는 걸 손 놓고 보아야만 했습니다. 곧 순환 재건축의 원칙은 깨졌고, 아파트 5개 단지가 동시 재건축에 들어갔습니다. 전·월세가 폭등했고, 많은 시민이 과천을 떠났습니다.
정치가 현실이라면, 그도 현실 탓을 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황순식의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나를 더 버리고, 무엇이든 했어야 했다. 크게 반성한다.”
황순식의 과천정치, 진보정치 1막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황순식을_소개합니다_3
[공동체, 태양에너지, 한반도 평화]
학업과 병역을 마친 청년 황순식은 곧바로 정치에 뛰어들었고, 지방의회 의원, 의장을 경험하며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다음에 그가 향한 곳은 ‘사업’입니다. 당에서는 그에게 대변인, 정책위원회 부의장을 제안했지만 뻔한 그 진로는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당분간 정치를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황순식은 도전을 계속한다 생각했을 겁니다. 저는 그 도전이 남긴 경험, 그래서 얻은 비전, 그러면서 형성한 성격이 좋은 상품 ‘황순식’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진보가 ‘정치’라는 비즈니스에서 이 상품을 제대로 썼으면 좋겠습니다. 아, 물론 잘 팔리는 게 먼저겠네요.
외환위기 때부터 달러 본위의 세계통화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던 황순식은 처음엔 ‘블록체인’과 가상화폐에 관심을 둡니다. 비트코인처럼 민간이 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는 관념의 전환은 혁명이라던 선배 덕분입니다. 그런데 어쩐지 사업 구상은 ‘지역화폐’로 향했습니다. (비트코인이 당시 100만원 정도였다는데..) 돈보다는 사람,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먼저 고려하는 기질 때문입니다. 상호 나눔과 거래 활성화를 가능케 하는 ‘대안화폐’가 그의 창업 아이템이 됐습니다.
2015년, 황순식은 동료들과 회사를 창업하고 대표이사를 맡았습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과 기술보증보험에서 청년창업융자로 1억 7천만원을 받고 서비스 이름은 서로 나누는 장터라는 의미의 ‘나누장’으로 했습니다.
BAND와 같은 기본 커뮤니티 기능에 커뮤니티별 장터와 자체 화폐 발행 및 교환 기능을 더했습니다. IT 스타트업에서 처음 선보이는 앱 치고 기능이 많고 무거웠지만, 욕심을 좀 냈습니다. 3년 만에 개발된 나누장은 많은 지역 공동체에서 사용했습니다. 아직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계속 물을 준다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아이템입니다.
2017년, 황순식은 태양광 사업에도 도전합니다. 그는 ‘엔트로피’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현재의 인구는 이미 지구환경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걸 고등학생 때 알았습니다.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거의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후위기, 에너지전환이라는 담론이 홍수를 이루던 때 그는 이미 산업 현장에 있었습니다.
시화호 수상태양광부터 시작했습니다. 강원도, 제주도, 전라도 등지에서 태양광을 추진하는 곳들의 정보를 받아 컨설팅을 진행하고, 발전사업허가 등을 자문했습니다. 사회책임 전문가, 신재생에너지 전문가, 유관 사업 경험자가 모였고, 투자도 받았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천명한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은 그러나 관련 법령 정비 등이 미뤄졌고, 국회에 계류된 수십 개의 법안은 자유한국당의 반대에 막혔습니다. 문재인-태양광-민주당을 연결해 비판하는 논리는 지지자를 집결시켰습니다. 정부의 의지도 많이 꺾였습니다. 정치에서 온 황순식의 사업은 인간을 위한, 환경을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 정치에 가로막혔습니다.
두 사업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업이면서 공동체를 고민했고, 사업인 주제에 인간을 먼저 생각했으며, 사업을 한다면서 환경을 걱정했습니다. 기관과 개인의 투자를 받았고, 수많은 동지가 있었습니다. 대박은 없었지만, 폭망도 아니었습니다. 당연한 말인 동시에 말은 좀 안 되지만, 사업가 황순식은 정치인 황순식과 닮았습니다. 경제가 어려울 때 청년에게 창업하라는 유일한 선진국가 대한민국에서 청년 황순식은 그렇게 살아냈습니다.
황순식이 현재 맡고 있는 중앙당직은 한반도평화특별위원장입니다. 저는 좀 이상했습니다. 어딘가 그의 캐릭터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황순식의 장인은 ‘조성우’ 님입니다. 한평생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을 하신 분입니다. 1979년 11월 YWCA 위장결혼사건의 주역이고,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고초를 겪기도 하셨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운동의 현장을 지키고 계십니다.
그는 장인어른의 제안으로 2018년과 2019년에 ‘UN시민평화대표단’의 일원이 됩니다. UN총회, UN본부 앞 집회, 시위 등의 준비를 도왔습니다. 북한 외교관을 만나 간담회를 진행하고, 미주 민화협, 민주평통, 6.15뉴욕위 등이 주최하는 만찬에도 참가했습니다. 미국의 진보적 싱크탱크, 기자들과 라운드 테이블에서 토론하며 대북정책의 이해를 높였습니다.
저는 그의 대북정책을 조금 들었습니다. “뜨거운 민족적 동포애로서 통일로 나아가자” 그런 거 아닙니다. 몇 푼 거리 안 되는 글솜씨로 그의 청년기 정도를 정리하는 이런 글에 다 담을 수는 없습니다. 도저히 바꿀 수 없는 현실적 조건을 수용하고, 그 바탕 위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대안으로 만들고 있다. 정도만 하겠습니다.
참 바쁘게도 살았습니다. 블로그에 적혀 있는 그의 이·약력은 정리가 불가능합니다. 정책은 늘 당위를 강조하고, 현장은 언제나 현실을 토로합니다. 둘을 조정하는 게 정치라면, 그는 약 15년 동안 그 모든 것을 겪은 셈입니다. 저는 그가 부럽습니다. 장래가 촉망한 청년정치인, IT 스타트업 경영인, 친환경 사업가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끊임없는 도전으로 근육이 된 합리적 사고와 낙천적 마인드를 질투합니다.
아무튼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커뮤니티 잡설이 현상이 되어 청년정치의 담론을 착란하고, 쩍벌남과 떡볶이가 이슈가 된 대선판에서 그의 노잼적 제정신이 화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참,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황순식은 곧 정치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도전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황순식을_소개합니다_4
[보여주지 못한 허리]
황순식은 다시, 정치로 돌아왔습니다. 제21대 총선, 시의회 의장이었던 그는 그 도시의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출마선언문에는 진심과 절박함, 미래와 존엄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가 있습니다. 저는 정의당의 당원이고, 선거에 관심이 많습니다. 나름의 진심이 없거나 절박하지 않은 후보가 있느냐는 점에서, 미래를 대비하고 인간의 존엄을 우선하는 다른 정의당의 후보를 많이 본 탓에 별다를 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순식간에 주거안정’이라는 슬로건과 ‘1억원대로 30평형 내집마련’이라는 제1 공약은 많이 신선했습니다. 진보정당에는 익숙하지 않은데, 1, 2번당 후보들은 만날 하는 소리니까요. 뜯어봤습니다. 주택공공재 시범지구를 지정, 공공이 소유한 토지에 30평형 주택을 건축하는데, 입주민은 평당 500만원 정도의 건축비를 부담한다. 수많은 전문가가 모여 계산기 두드려가며 만든 이 공약은, 네덜란드식 주택정책과 닮았습니다.
물론 선거는 정책보다 인물이거나, 인물은커녕 그냥 구도입니다. 정의당의 모든 선거가 그렇지만 이번에는 더 어려웠습니다. 준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꿈꾸던 정의당은 비례위성정당 앞에 좌절했습니다. 분명한 반칙인데도 저것들 이기려면 별수 없다는 논리는 놀랍게도 대한민국을 쟤네들과 우리들로 정확히 양분했습니다. 정의당이 들어갈 공간은 너무 좁았습니다. 조국 전 장관 사태를 지나면서 떨어진 당내 사기도 문제였습니다. 지역에 출마한 후보들은 대부분 쓰디쓴 패배를 맛보아야 했습니다. 황순식도 그랬습니다. 그는 낙선했습니다.
저는 그가 이곳을 떠나리라 예측했습니다. 정의당을, 정치를 그만두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 누가 그래도 탓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황순식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당을 다시 살려보자는 묵시적 약속의 흐름에 기꺼이 올라타 당직선거에 도전했습니다. 경선에서 승리한 황순식은 지금 정의당 경기도당의 위원장입니다.
황순식이 얼마 전부터 대선 이야기를 꺼내고 있습니다. 웃자고 하는 소립니다만, ‘그 학교’ 출신들은 그렇게 뭐든 자기가 해낼 수 있을 거라 사고한다는 동영상을 본 기억이 났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입시경쟁에 승리하라는 다소 걱정되는 교훈을 담은 한 사교육 전문가의 영상이었는데, 아무튼, 그는 놀라운 자신감을 보여줬습니다.
깊게 한 고민임은 분명했습니다. 그와 나눈 대화에서 제가 정의당의 미래를 봤다 말씀드리기 주책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답답함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희망을 봤습니다. 황순식의 기록을 상당 부분 날려가며 정리한 네 편의 글은 그 얘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정의당은 이제 ‘패배감’을 벗어야 합니다. 너무 위축될 이유가 없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우리 모두는 실패만 말했습니다. 좌절과 절망은 습관 돼서 버릇됐습니다. 지역구 후보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얻은 정당득표율 9.67%는 제20대 총선 7.23%보다 높았습니다. 누군가는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참혹한 선거 구도에서 나름 선전했다고 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지역을 지키고, 앞서서 실패했던 황순식이 그렇게 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정의당은 ‘세대교체’ 했습니다. 86 운동권 인사적체가 ‘기득권’으로 비난받는 정치 평론의 흐름에 “정의당도 마찬가지 아니냐”라는 질문은 틀렸습니다. 청년정의당이 창당했고, 두 청년 의원이 있다는 설명으론 부족합니다. 심상정에서 장혜영, 이정미에서 류호정이 아니라 아직 다 보여주지 못한 ‘허리’가 있다고 받아쳐야 합니다. 황순식과 조성주, 이기중이 있다고. 김혜련, 박시동, 박한기가 있고, 정재민, 권수정, 김희서, 설혜영이 있다고 맞서야 합니다. 김성년, 장태수, 금방 떠올려도 이렇게 많은 젊은 정치인이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이번 경선에는, 여기 황순식이 있다고 얘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의당도 이제 경선을 시작합니다. 저는 황순식이라는 상품에 제 바람을 담겠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정의당의 경선을 관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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