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현 정무직공무원, 전 국회의원
출생 1951년 3월 16일, 전북 익산시
나이 71세 (만 70세)
- ~1978.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 ~1969.남성고등학교 졸업
- 2021.09.~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 2016.05.~2020.05.제20대 국회의원
- 2014.05.~2016.05.제19대 국회 후반기 부의장
- 2012.05.~2016.05.제19대 국회의원
- 2011.03.~2011.12.국회 연금제도개선특별위원회 위원장
- 2008.10.~2009.08.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 2008.07.~2008.10.국회 공기업관련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 2008.05.~2012.05.제18대 국회의원
- 2005.11.~2006.02.국회 국민연금제도개선특별위원회 위원장
- 2004.07.~2006.05.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 2004.05.~2008.05.제17대 국회의원
- 2001.05.~2003.03.환경관리공단 이사장
- 1996.05.~2000.05.제15대 국회의원
- 1992.05.~1996.05.제14대 국회의원
선거이력
당선2016년 제20대 국회의원선거 | 안양시동안구갑 | 더불어민주당 | 50.0% |
당선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선거 | 안양시동안구갑 | 민주통합당 | 54.9% |
당선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선거 | 안양시동안구갑 | 통합민주당 | 47.9% |
당선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선거 | 안양시동안구갑 | 우리당 | 51.5% |
2위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선거 | 안양시동안구 | 민주당 | 48.4% |
당선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선거 | 안양시동안구을 | 국민회의 | 42.3% |
당선1992년 제14대 국회의원선거 | 안양시을 | 민주당 | 36.7% |
2위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선거 | 안양시을 | 평민당 | 21.8% |
- 중고교 시절 계속 전교 1등을 유지한 관계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들어갔다가, 학생운동에 뜻을 두고 민중을 돕기 위해 법을 공부하겠다며 학교를 그만두고 재수를 하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였고, 사회과학연구회라는 모임과 가톨릭학생회라는 모임을 통해 운동권 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지하신문 횃불을 발행하며 이후락을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 교련 반대와 징집 거부로 기소된 적이 있었다. 그의 경우에는 특별히 운좋게 은사 양승규 교수(서울대 법대)가 그의 사건 담당 검사와 판사의 대학교 은사이기도 해서 그들을 설득하여 징역형을 받지 않도록 하고, 선고유예 겸 군입대로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 이석현의 본격적 정치입문은 김대중의 동교동계 생활로부터 시작되었다. 1980년 연청회 시절에 잠깐 봤던 게 다였고 제대로 대화도 못해봤던 김대중이 1985년 미국에서 돌아온 지 몇달 안 된 어느 날 이석현을 동교동 자택으로 불렀고 단 둘이 식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사회 얘기를 하다가 "내가 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며, "자네가 앞으로 내가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사회 각 부분에 대해서 일주일 동안 보고서를 써서 정리해 오게."라고 했다고 한다. 당시 민주화의 거성이던 김대중 선생의 요구였으니, 이석현은 당연히 정성껏 일주일 동안 자필로 언론환경, 노동권, 재벌, 군부, 정당 등에 대한 상황과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보고서로 작성해서 제출했다고 한다. 그러자 3일 뒤 김대중이 그를 비서로 채용했다고 한다.
- "국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목화 송이처럼 소담스런 함박눈이 내려서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었습니다. 이 순백의 도화지 위에, 만일에 여러분이 새로운 세상을 그린다면 무엇을 먼저 그리시겠습니까? 저 같으면 앞에 있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뒤에는 파란 뒷동산이 있는 그런 아름다운 마을을 먼저 그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뒷동산 위로는 일곱가지 색깔이 영롱한 무지개를 또 그려놓겠습니다. 국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안 그리겠습니까? 저는 국회도 그려 놓겠습니다. 무지개 빛깔처럼 서로 다른 스팩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다름을 이해하면서 또 존중하고, 그리고 조화롭게 공존하는 그런 국회를 그리고 싶습니다. 또 국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국민들의 기쁨과 아픔을 내 피부처럼 느끼는 그런 국회를 그려 놓겠습니다. 이런 필리버스터도 있고 또 그런 껍데기 권위보다는 사람이 존중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추구되는 그런 국회를 그리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제가 말한 이 상상의 국회가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저희 국회가 여야를 초월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국회부의장 시절 이학영 의원의 필리버스터 도중에 한 인사말 -
- 1997년 해외용 명함에 한자로 '남조선(南朝鮮)'이라고 표기했다가 북한식 표기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행사 참석차 미국 LA를 방문한 이석현 의원으로부터 명함을 건네받은 재미교포가 이를 알리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학영은 명함의 앞면에는 그의 얼굴 컬러사진과 함께 영문, 러시아어, 아랍어, 한자 등으로 적혀 있는데 그중 하나가 '韓國(南朝鮮)[31] 國會議員 李錫玄'이라고 해명했다. "해외에 나가 여러 나라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경우 영문 명함만으로 한계를 느껴 14대 때인 94년부터 7개 국어를 동시에 넣어 새겼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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