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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최고령 박사학위 도전, 동교동계 좌장, 더불어민주당 복당 원로정치인 권노갑 프로필 및 경력

by 길찾기91 2022.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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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 전 국회의원
출생 1930년 2월 18일, 전남 목포시
나이 93세 (만 91세)
 
  • 1998년 경기대학교 명예 경제학 박사
  • 2000년 페얼레이 디킨슨 대학교 명예 경제학 박사
  • 2001년 제주대학교 명예 경영학 박사
  • 1999년 동국대학교 명예 정치학 박사
  • 동국대학교 대학원 영문학 박사과정 재학
  • ~2014.05.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영문학 석사 졸업
  • ~1953.동국대학교 경제학 학사 졸업
  • ~1949.목포상업고등학교 졸업

 

  • 2018.02.~민주평화당 상임고문
  • 2015.12.~2016.01.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 ~2015.12.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민주당 상임고문
  •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 2001.~한국방정환재단 이사장
  • 2000.~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 1999.~국민회의 상임고문
  • 1996.~제15대 국회의원
  • 1993.~민주당 최고위원
  • 1992.~제14대 국회의원
  • 1988.~제13대 국회의원
  • 1963.~김대중의원 비서관

 

 

- 야권 원로인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이 93세에 전국 최고령 박사 학위에 도전한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권 이사장은 2023년 후반기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문학 박사과정에 최근 입학했다. 권 이사장은 지난 5일 첫 수업을 들었다.

이번 도전은 2013년 존.F.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 연구로 석사과정을 수료한지 10년 만이다. 이번 박사과정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 업적을 주제로 한 논문을 쓰겠다는 목표다.

권 이사장은 뉴시스와 한 통화에서 "김 전 대통령의 모든 것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희망으로 시작한 공부"라며 "김대중에 대한 정치 철학과 사상, 대통령으로서 이룬 업적을 총망라한 논문을 쓰겠다"고 밝혔다.

그는 "중학생 때 운동하러 다니느라 공부를 하나도 안 했다""이제 늦깎이로 공부를 해보려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을 40년 넘게 보좌한 권 이사장은 DJ 동교동계 맏형으로 불린다. - 뉴시스 2023.9.8

 

 

 

- 더불어민주당 권노갑 상임고문은 22일 검찰이 이재명 대표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과 관련해 "이번 (구속영장 청구)에는 의원총회에서 결정한 바와 같이 (부결 총의를) 따라가자"면서도 "다음번에는 떳떳하고 당당하게 당 대표로서 책임 있는 행동으로 솔선수범 선당후사의 정신을 발휘해줬으면 하는 바"이라고 밝혔다.
권 고문은 이날 이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저도 그동안에 온갖 고난과 시련 겪었던 한 사람으로서 현재 이재명 대표가 처한 이 고충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제가 이 대표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역사에 길이길이 이어나갈 수 있는 민주당의 전통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가) 민주당의 대표로서 책임 있는 행동으로서 솔선수범하는 '선당후사'의 정신을 발휘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뉴시스 2023.2.22

 

 

권노갑은 1930218, 경상북도 안동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전라남도 신안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전라남도 목포 개항 이후 1932228일을 기하여(3세 시절) 직계 일가족과 함께 전라남도 목포로 이사하여 이후 목포에서 성장하였다. 1953년에 동국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해방 직후부터 학교 선배 김대중을 돕기 시작하여 김대중이 정치에 입문하자 자연스럽게 그의 참모 역할을 하면서 정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이후 김대중의 조직과 자금책을 하면서 정계에 깊게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때에도 함께 보안사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이후 김대중이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김대중을 대신해 민주화추진협의회 상임운영위원을 맡으면서 동교동계의 주역을 하게 되었다.

1988년에 제13대 총선에서 평화민주당 공천을 받아 목포시에서 당선되었고, 이후 3선에 성공하면서 대표적 중진으로 발돋움하였다.

2002년에 진승현 게이트에서 국가정보원 차장인 김은성을 통하여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으나 이듬해 항소심에서 무죄를 판결받고 석방되었다. 2016년에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였고, 그 해 국민의당에 입당하였다. 2020년에 더불어민주당에 복당을 신청하였으나 허용되지 않았다.    - 위키백과

 

 

 

- 1930228일 경상북도 안동군 안동면 송천리(현 안동시 송천동)에서 아버지 권치삼(權致三, 1870 ~ 1932)[14]과 어머니 밀양 박씨(1906 ~ ?) 사이의 무녀독남으로 태어났으나 곧, 가족들과 함께 전라남도 목포부로 이주했다. 그래서인지 김홍일에게 지역구를 물려주고 비례대표로 이적한 1996년에 잠시 국민회의 안동 을 지구당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3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나 홀어머니가 곧바로 재혼을 해 이부형제(아버지가 다른 형제)들과 함께 자랐다고 한다.

그 뒤 1949년 목포상업고등학교, 1953년 동국대학교 경제학과(49학번)를 각각 졸업하였다. 이후 1959년부터 1962년까지 목포여자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였다. 그래서인지 영어에 능통하여 동교동계에서 외신들과의 인터뷰에서는 통역 일을 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리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최근에는 동시통역사에 도전한다든가 동시통역대학원 과정에 갔다든가 하는 소식들이 있었고, 20138월에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어영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박사 과정에 입학하기도 했다.

김대중의 비서로 활동하였으며, 김대중의 계파인 동교동계에서 한화갑과 양갑으로 불리며 정치 활동을 했다. 여느 정치 계파나 다 그렇겠지만, 동교동계라고 해서 또 다 같은 동교동계는 또 아니다. 권노갑의 경우에는 김대중의 정치 초기부터 가신에 속했던 사람으로, 보통 동교동계의 좌장이자 구파의 대표자로 불렸고, 한화갑은 신파로 분류된다. 후에 새천년민주당 정풍 운동 당시 이에 대한 태도의 차이로 신구파간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이는 16대 대선 정국까지도 이어진다. 다만, 권노갑과 한화갑 개인의 사이는 좀 더 이전부터 벌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박정희 정권 때와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조작 때 고문을 포함하여 온갖 고초를 겪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목포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최영철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4대 대통령 선거 패배 후 김대중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치러진 1993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경북 안동을지구당위원장과 경상북도지부장을 맡았다. 정권교체 이후 안동을 지역구 현역 의원이던 권정달의 영입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노갑 회고록 중. 1997년 한보 사태로 기소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아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1998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출소하고 잠시 일본에 머무르다가 귀국하여 2000년 새천년민주당 지명직 최고위원이 되었지만, 200110월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후 정동영을 필두로 일어난 정풍운동에 밀려 결국 사퇴해야 했다.

권노갑은 DJ의 모든 조직과 자금을 관리할 정도로 DJ의 신임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래서 대선 과정 중 어떤 공직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김대중 정부에서 어떤 직함도 없었지만 당정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했다. 특히 DJ의 자금까지도 모두 관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파워는 실로 막강했고, 자연스럽게 동교동계 전체에서 김대중 대통령 다음가는 최고 실세로 군림했다.

이런 위세를 보여주는 일화로 11일에 권노갑 집 앞에는 1,000명이 넘는 인파가 새해 인사를 하러 몰려가 권노갑의 집으로 향하는 일대의 도로가 모두 마비될 정도였다는 일화가 있으며. 권노갑의 아들과 큰딸 결혼식에는 수천여명의 하객이 몰려 발을 디딜 틈이 없었고, 화환이나 축의금을 일절 받지 않았기 때문에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고 어떻게든 그에게 인사라도 하고 가려는 하객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2002년 진승현 게이트 사건으로 구속되고, 이어 2003년에는 현대그룹으로부터 200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정치적으로 몰락하고 만다. 재판 결과 진승현 게이트 사건은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3, 현대그룹 사건으로는 징역 5년형이 확정되었다. 이후 2006년 특별감형을 받은 데 이어, 20072월 특별 사면으로 출소하였다.

그 후로는 2선으로 물러나 민주당과 그 후신 새정치민주연합의 상임고문으로 있으면서 문재인 대표 시절 재보선 지원유세에도 나서는 등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후계자인 문재인 전 대표에 비교적 호의적인 입장이었으나, 20161월 민주당을 탈당하고 안철수 지지를 선언했다.

국민의당 상임고문으로 있었으나, 2018년 야권발 정계개편에서 안철수 대표의 통합에 반발하여 이훈평, 정대철과 같은 동교동계 원로들과 함께 민주평화당의 창당발기인에 이름을 올렸다.

202043,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한...줄 알았으나 이해찬 대표가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출연해 총선 전에는 입당을 불허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2021년 재보궐선거 때 타 전직 국회의원 115명과 함께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2022113일 이재명 후보의 대사면에 따라 5년 만에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하고 322일 상임고문으로 위촉되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이후 돌고돌아 다시 상임고문이 된 것. 역시 집나가면 고생.

2022524일 제8회 지선에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등판했다.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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