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선거에 즈음한 그리스도인의 선언
우리는 대한민국 공동체의 자유와 독립, 평화로운 한반도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다. 공동체가 높은 가치와 목표를 향해 다가갈 때, 반드시 정치문화의 발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스스로 기득권이라는 재갈을 물고 있는 언론들, 위임 권한을 제멋대로 휘둘러 약자를 억울하게 하고 힘의 향배에 혈안이 된 일부 검찰과 법조인들, 그리고 정파적 이익에 묻혀 신앙 양심을 저버리는 종교인들이 소중한 공론장을 일그러뜨리는 현실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국민의 뜻을 위임받은 제21대 국회는 대표성에 걸맞은 시국 인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성실한 의원 몇이 도드라질수록 뒷짐 지고 있는 다선 의원들과 심지어 훼방하고 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한 협잡꾼들에게 반드시 국민의 분노가 쏟아질 것이다.
정치란 구성원들의 자유롭고 숙고된 참여를 의미하며, 권력은 그것을 성취할 때만 정당한 힘이다. 숙고가 필요한 정책과 평화를 뒤흔드는 사안을 외마디로 내질러 갈등을 부추기는 행동은 공론장의 꽃인 선거를 힘의 탈취 절차로, 권력을 폭력으로 뒤트는 죄악이다. 우리는 선거가 코앞에 다가온 지금까지 일부 후보와 정파가 막된 언행을 반성하지 않고, 정당한 지적을 조롱하는 데 대해 노여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동시대인들에게 정치뿐 아니라 사회와 경제의 발전은 정치의 본령을 왜곡하는 정치인과 정파에 의해 결코 이룩될 수 없음을 단호하게, 그리고 간곡하게 알린다.
한 후보와 그 배우자는 난데없이 무속 논란을 정치 국면에 끌어들였다. 개인의 신념과 종교는 헌법과 포용의 문화로 지켜져야 하지만, 막중한 권력을 위임받고자 하는 후보자와 그 가족의 도덕성과 판단력은 공공의 이성에 부합하는지 철저히 검증되어야 한다. 한 권력자의 육체와 정신을 요사스럽게 조종했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겪고, 이를 촛불 시민의 힘으로 물리친 지 불과 5년이 지났을 뿐인데, 또다시 그 지경으로 퇴행하는 후보가 나타났고,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사실은 차마 믿고 싶지 않은 충격이다.
참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무속 세계가 무서운 초월적 존재를 전제로, 두려움에 빠진 이들을 노예화하는 데 분노해 왔다(히2:15). 하나님은 사랑이시며(요일4:8)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자유로운 존재라는(창1:27) 성경의 진리는 무속 신앙과 결코 병립할 수 없다. 물론 무속인들은 나름의 도덕 체계를 가질 수 있지만, 무속 자체에는 고등 윤리가 없기에 무속인은 구원과 포용의 대상에 머물러야 한다. 그들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 곁에서 공동체의 안위가 달린 의사결정에 은밀하게 개입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한국 교회의 다수교단들은 창조신앙, 동성애, 무속과 우상숭배에 대해 성경 본문에 충실한 신앙을 거룩의 지표로 선포해 왔고 사회 통합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집단적 의사 표출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특정 후보의 무속 논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오히려 지지하는 행태는 교회 강단의 동일성을 의심하게 한다. 공평하지 않은 포용과 배제는 신앙과 교회를 정파의 도구로 써먹고 있다는 증거이며, 성도의 믿음을 훼방하는 중한 범죄다. 우리는 이 죄악에 깊은 연대책임을 느끼며 회개한다. 대형교회의 담임목사직 세습 등으로 이미 사회의 걱정거리, 조롱거리가 된 한국 교회는 선거 개입보다는 스스로의 존립 위기를 감지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봉건제와 일제의 식민 통치 그리고 군부독재를 타파하고 세운 자랑스러운 민주공화국이다. 그러나 민주시민 더구나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볼 때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우리는 이 땅에 사랑, 공평과 정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서(렘 9:24) 생명과 평화가 넘치는 세계를 꿈꾸며 실천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보다 정교한 정책 경쟁을 선거 때마다 거듭함으로써 아름답고 견고한 공동체로 발전되어 가야 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사이비 정치에 권력을 탈취당할 수 있는 허약함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정의로운 체제가 한번 정복하는 고지가 아니라, 동시대인들의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보존되고 성숙되어야 하는 생명체임을 절감한다.
동시대인들이여, 이번 선거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목숨을 버려가며 우리를 이 자리에 보낸 앞 세대를 보람있게 하고, 반평화의 현실을 극복할 역량이 넉넉하고, 다음 세기에도 칭송받을 체제를 저작(著作)해야 할 것이 아닌가.
동시대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의 정파 행동은 우리 신앙에 부합하는가. 말씀을 선포하는 자들이 우상과 이단을 그토록 배격하다가 어느 날 돌변하여 싸고돈다면 그를 인격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 강단이 감히 주님의 임재를 말할 수 있는가. 자유와 평등을 이 땅에 들여 새로운 세기를 열어젖힌 선진들의 눈물과 희생을 기억하는가. 공동체를 살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교회를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한 정치관을 보일 때가 아닌가.
2022년 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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