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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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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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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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문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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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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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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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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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TV 대표
- 2007.~한미 FTA 저지사업본부 본부장
- 2005.02.~2005.05.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차장
- 2003.~2005.02.대통령 직속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기조실장
- 2002.~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인수위원
- 1999.~2000.한국학술진흥재단 전문위원
- 1988.~한국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연구위원, 연구국장
- 1987.~1988.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연구원
저서
《착한 것이 살아남는 경제의 숨겨진 법칙》(상상너머, 2011년) ISBN 9788996632030
《협동의 경제학》(레디앙, 2013년, 공저) ISBN9788994340159
어린 시절부터 경제학도를 꿈꾸던 고인은 1978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 학생운동에도 참여했다. 경제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박사 학위는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땄다. 미국식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던 고인은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등 민간연구단체에서 활동했다.
고인은 2002년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을 역임했다. 대통령 직속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기조실장, 청와대 경제보좌관실 국민경제비서관 등도 지냈다. 2007년 이후 민주노동당에서 비상대책위원 등으로 일하면서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반대했다.
2016년 정의당 정의구현정책단 단장을 지낸 바 있는 고인은 2019년부터 정의당 그린뉴딜경제위원회 위원, 2020년 총선공약개발단장으로 활동했다. - 뉴시스 2022.10.21
- 정 전 소장은 작년 7월초 폐암 4기 진단을 받았고, 그때부터 긴 시간 투병을 이어갔다. 투병 중에도 정 전 소장은 최근까지도 학계 논문을 연구하고, 그 소감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세상과 공유했다.
1960년생인 고인은 서울 숭문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8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진학해 1983년 동 학과를 졸업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는 학사 동기다. 이후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다음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2020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인은 학생 시절부터 사회의 불의에 연구로서 항거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이름들과 연을 맺었다. 대학원 재학 시절에는 수배를 피해 당시 서강대 교수였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꾸리던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 웅거하며 한국 상황을 진단하는 글을 세상에 소개했다.
1991년 서울대 경제학과 박사과정에 들어갈 당시는 안병직 교수와 연을 맺었다. 이해 고인은 박형준 현 부산시장과 함께 진보적 잡지로 이름을 떨친 월간 <말>의 편집위원을 지냈다.
1999년에는 학술진흥재단에 근무하면서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 유시민 전 장관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고인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00년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2002년 KBS <경제전망대> 등을 진행하면서부터다. - 프레시안 2022.10.21
정태인의 처 차정인,
삼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벌써 어제네요), 남편 정태인 그레고리오를 볕 좋고 단풍 아름다운 날, 아담하고 잘 생긴 반송 아래 모셨습니다.
새삼 그를 만난 때부터 43년의 시간의 기억들이 조각조각 떠오릅니다.
늘 가정보다 바깥으로 향했던 그의 몸과 시선, 마음이 가족에겐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쉽지않은 일상이 되고 상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그가 "남의 편"이라고 인정했고, 그는 밖에서 상처입고 지칠 때만 집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 최종수 신부님께서 "저런 사람이 이 사회에는 필요하고, 그가 지칠 때 쉴 곳이 있어야하니 이혼하지 말고 살아주세요" 하시며 상추쌈을 손수 입에 넣어주시는 바람에 입이 막혔네요. 그리고 어찌어찌 남편도 세례를 받았고 그의 방식으로 여기저기 길에서 예수님과 사람들과 함께 살았던 것 같습니다.
몸을 돌보지 않고 살았던 그의 몸에 큰 병이 생긴 후부터, 지난 1년 4개월 정도는 어느 때보다 둘만의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기적을 희망하면서도, 어느 새 온 몸에 깊은 병이 든 사람과 24시간 붙어 지내는 일이, 코로나로 인한 간병의 어려움이 더해져 둘 만의 오붓한 좋은 시간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그는 여전히 학술구글과 경제 전문지 등을 다운로드하고 공부하며, 그것으로 페북에서 바깥의 여러분들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 일상이었습니다.
그것이 투병에 이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집착하는 것으로 보여 의견충돌이 생기기도 했지만 막을 수 없었고...그에게 가장 중요하게 봉사했던 뇌세포가 전이된 암세포(그 또한 정태인의 세포이다보니 제대로 승리할 전략으로 원발처 폐 보다는 뇌를 점령하기로 했나 싶었습니다) 때문에 더 이상 아이패드를 찾지 않게 될 때까지 "남의 편"으로 지냈습니다.
그렇지만 그간의 투병과정과 장례식때 만난 분들, 장례미사를 통해, 한결같은 삶을 사는 그와 한 팀이 되어 "한 편"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간 어렴풋이 느껴왔지만, 그 안에 하느님의 뜻이 있고 보호받았다는 것도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존재방식"으로 사는 정태인과 함께 사는 삶을 연습해야겠습니다.
그의 몸이 다른 모습이 되는 동안 묵주기도를 하며 생각했습니다. 그는 부활할거라고. 그는 씨를 뿌렸으니까요. 수확의 기쁨까지 그에게 허락하지 않으신 것 같지만, 열심히 씨를 뿌린 그를 자비롭게 받아안아주시고 이제는 편하게 쉬라고 하실거라고 믿어지더군요.
그래도 과연 그가 쉴까 싶습니다.
자기가 뿌린 씨가 어디서 움트는지, 잘 자라는지 아마도 보러다닐 것 같습니다. 아이패드 아닌 다른 신비하고 새로운 방식이겠지요.
마지막 입원 전에 두통으로 누워있던 그와 나눈 얘기가 있습니다.
"나 죽으면 너 어떻게 살지?"
"어떻게 살면 좋겠어?"
"잘"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데?"
"음...아무 생각도 하지말고 살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 잘 살아지면, 당신도 지금부터 그렇게 잘 살자"
둘 다 가볍게 웃고 대화를 마쳤습니다.
오늘 마지막 응급실 행부터 장례식장까지…한달 이상 전전했던 병원 짐들을 정리하며, 이런저런 생각이 올라오다가 몸이 지쳐 누웠습니다. 그의 말대로 오늘은 아무 생각하지말고 자야겠습니다. 저도 잘 사는 연습을…
늘 보내주신 응원과 도움, 기도에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직접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하지만
이렇게 인사를 대신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기를 빌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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