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대 교수·연구자들의 시국선언문 전문
[시국선언문] 윤석열 정부는 굴욕적인 외교 정책을 당장 바로 잡으라
지난 삼일절 기념식을 보는 마음은 참담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강제동원(징용), 위안부 등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에 대해 나홀로 '통 큰' 태도를 보였다. 여전히 침략의 상처가 선연한데, 그날 일본은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과거사를 도외시한 맹목적 '협력 파트너'가 되었다. 일제가 국제법을 위반하고 강제로 위안부를 끌고 간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고 또 강제로 끌려간 징용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회피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어떤 변화의 신호를 읽었다는 말인가?
이어 놀랍게도 윤석열 정부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해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을 제시하였다.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 배상을 가해자인 일본기업이 아니라 우리 기업의 기금으로 하자는 이 제안은 실로 충격적이다. 많은 이들의 반문처럼 윤 대통령은 어느 나라의 대통령인가? 한국 대통령이 앞장서 일본의 반인륜적 군국주의 전쟁범죄와 당연한 배상책임에 대해 면죄부를 주면서까지 시급히 해치워야 할 한일 양국의 현안이 무엇인가? 지난 2018년 우리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행정부 수반이 스스로 뒤집을 만큼 긴급한 현안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윤 대통령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2018년 대법원 판결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반민주적이며 반헌법적인 주장이다. 더구나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국가 간 협정으로 '최종적이고 완전히' 소멸되었다는 것은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과오에 대한 책임과 배상을 회피하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일 뿐이다. 강제동원은 심각한 인권침해이다. 이에 대한 배상은 단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 가해자의 배상은커녕 이전 내각의 사죄조차 번복하는 일본 정부에 내민 '통 큰' 선물은 윤 대통령이 스스로 가해자 편에 서기를 자청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정상회담 후 복수의 일본 언론은 기시다 총리가 위안부 합의 이행,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재개, 독도 영유권 문제 등에 대한 요구를 윤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대통령실은 그것이 회담 의제가 아니었다고 하면서 윤 대통령의 답변 내용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강제동원 사실을 부인하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일본의 '역사 왜곡 교과서'가 통과된 후에서야 대통령실은 일본이 뒤통수를 친 것과 한일 정상회담의 연관성을 부인하며 마지못해 항변했을 뿐이다. 악화된 국민 여론에 놀라 국민 건강권을 운운하며 허겁지겁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를 언급하지 않았던가. 최근 불거진 'I-Japan' 주어 논란은 일본에 대한 윤 대통령의 상식 밖 역사관을 보여준다. 윤 대통령은 '100년 전 일'로 (일본에게) '무조건 무릎을 꿇으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일본이 10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강제동원 등 식민지배 시절 자행했던 자신들의 반인권적인 행위에 대해 사과는커녕 인정도 하지 않고 있음을 윤 대통령은 알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윤 대통령이 말하는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는 대통령실의 의지로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진심 어린 사과를 전제로, 과거의 잘못을 용서하는 열린 태도가 우리 국민의 감정일 때야 비로소 가능하다. 일본의 뻔뻔한 몰염치가 요지부동인 현 상황에서 도대체 어떤 '미래'를 지향한다는 말인가!
과거사를 정의롭게 다루면서도 국제정치에서 균형 있는 외교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주권 정부의 정치적 역량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대만 간 양안 대립 등으로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치우친 외교를 행하는 것은 재앙을 자초할 위험이 크다. 국익을 지키고 국민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지 않고 한반도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대결 일변도의 냉전적 사고와 미국과 일본에 분별없이 밀착하는 굴종적 자세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군사적 의미의 한미 동맹과 한일 관계는 구분되어야 하는바, 한미일 관계의 수직적 구조에 맹목적으로 참여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가 능동적인 균형의 주체가 되는 국제무대의 외교를 펼쳐야 한다. '동맹·관계'를 이유로 스스로 국제 정치에서 '을'의 자리를 자처하지 말라. 일본의 역사 왜곡 논란뿐만 아니라 최근 불거진 미국의 도청 정황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는 당당한 자세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더이상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지 말라.
우리 인제대학교 교수 연구자 일동은 아래와 같이 요구한다. 윤석열 정부는 오만과 편견을 버리고 국민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모든 권한에는 말 그대로 한계가 있고 대통령의 권한도 예외일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위임된 권력을 자의적으로 오용하고 남용하는 권한 밖의 무모한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우리는 바른 변화가 있는지 현 시국을 엄중히 지켜볼 것이다.
하나. 몰역사적 반인권적 제3자 변제안을 즉각 폐기하라!
하나. 굴욕 외교에 대해 대통령은 국민 앞에 사과하고, 책임자를 즉각 파면하라!
하나. 국민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으며 균형 잡힌 외교정책을 수립하라!
하나,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 개개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통철한 사죄와 온전한 배상을 요구하는 태도를 취하라!
2023년 4월 27일. 인제대학교 교수·연구자 일동 : 강성숙, 강재규, 고영남, 권오섭, 김경덕, 김경이, 김두희, 김명찬, 김병수, 김보경, 김보미, 김상희, 김선미, 김소진, 김연철, 김영우, 김종숙, 김종원, 김주현, 김철수, 김태완, 김평, 김형규, 김형만, 문현미, 박윤한, 박정호, 박지현, 박은정, 송호열, 신서원, 양승호, 양진홍, 오세일, 오율석, 유은정, 윤남식, 윤종성, 이남용, 이선우, 이영호, 이은령, 이종협, 이주미, 이찬훈, 이홍섭, 임헌찬, 전우정, 정세훈, 정옥찬, 제미경, 조대현, 최윤성, 하상필, 한기욱, 한기호, 한승진, 홍승철, 홍재우, 홍정희(60명) (퇴임 교원과 교직원도 서명에 동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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