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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인문학자들은 오랜 세월 인간 본성을 두고 논쟁했지만 어떤 합의도 이루지 못했다. 논쟁을 종결하려면 사실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인문학자는 하지 못했던 그 일을 신경과학자들이 해냈다. 1992년 이탈리아 파르마대학교 연구진은 특정한 행동을 할 때 발화하는 원숭이 두피질의 일부 뉴런이 다른 원숭이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도 발화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후속 연구자들이 인간의 뇌에도 같은 기능을 하는 뉴런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거울신경세포 "mirror neuron 라는 멋진 이름을 얻은 그 세포는 세상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마음을 읽는 세포'라거나 '문명을 만든 뉴런'이라고 명예로운 별명도 생겼다.
아직 아는 게 많지 않아도 몇 가지는 확실하다. 거울신경세포는 대뇌피질을 비롯한 뇌의 여러 부위에 분포해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는 행위를 조장하거나 억제하는 등 여러 일을 한다. 또한 공감과 도덕적 동기 유발의 기초를 제공하며 타인의 고통을 느끼고 염려하고 덜어주는 행위를 장려한다. 거울신경세포가 모방과 공감에 관여한다면 문명을 만든 뉴런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모방하고 공감하는 능력 덕분에 우리는 언어를 익힐 수 있다. 언어가 있기 때문에 큰 규모의 공동 행동을 조직할 수 있었고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으며 생산력을 높이고 문명을 건설했다. 언어는 종교와 함께 문명을 가르는 가장 강력한 경계선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거울신경세포 덕분이라고 단언하기에는 이르다. 거울신경세포 혼자 그런 일을 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뇌는 겨우 몇 조각밖에 맞추지 못한 거대 퍼즐이다. 우리는 남을 모방하며 남에게 공감한다. 남을 배려하고 남과 협동한다. 악한 행동을 삼가며 옳은 일을 하려고 한다. 때로는 공동체를 위해 죽을 위험을 떠안는다. 우리가 그런 존재임을 안다.
그런 감정과 생각이 우리 뇌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아직 다 파악하지 못했다. 특정 뇌 부위에 있는 특정한 종류의 뉴런이 특정한 일과 관련이 있다는 건 확실하다. 한 종류의 뉴런이 혼자 하나의 일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우리의 뇌는 전체가 하나의 시스템이다.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고 협력하고 배려하게 해주는 것은 거울신경 ‘세포’라기보다는 여러 종류의 뉴런이 협동해서 만든 거울신경 '시스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떻게 보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인간 본성이 선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한 본성'도‘ 지니고 있다. 거울신경세포 또는 거울신경시스템이라는 신경생리학의 증거가 있으니 그렇게 말해도 될 듯하다.
다시 맹자를 생각한다.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철학자보다는 과학자가 어울릴 사람이다. 인문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사회생물학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는 관찰하고 추론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유명한 '유자입정' 이야기가 그 능력을 입증한다. 맹자는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하는 것을 보면 누구나 뛰어가 구한다면서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측은지심이라는 본성의 발현이라고 했다. 아이 부모와 교분을 맺거나, 마을사람들한테 칭찬을 받거나, 돕지 않았다는
비난을 피하려고 그렇게 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맹자는 사람한테 타인의 불행과 고통을 함께 느끼면서 남을 도우려 하는 생물학적 본성이 있다고 봤다. 그것을 측은지심이라 했고 거기에서 인이라는 가장 중요한 미덕이 나온다고 판단했다. 오로지 관찰과 추론으로 구축한 이론이었다. 거울신경 ’세포‘면 어떻고 거울신경 ’시스템'이면 또 어떤가. 우리 뇌에 이기적 행동뿐만 아니라 이타적 행위도 하게 만드는 본성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뇌과학과 진화생물학 공부를 하니 맹자가 더 대단해 보였다. 뛰어난 인문학자는 물질의 증거 없이도 옮은 인식에 다가선다. 때로는 과학자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낸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유시민, 돌베개, 2023, 8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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