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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지구를 위하는 마음, 김명철, 다산북스

by 길찾기91 2024.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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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적극적인 친환경 행동을 필요로 한다. 과거에도, 기후 재앙의 공포가 팽배한 오늘날에도, 불확실한 미래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가 적극적인 친환경 행동에 나서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중요한 심리적 요인 가운데 하나가 무망감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 좌절에 빠진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행동에 나서지 못한다. 오히려 최대한 그 문제에서 주의를 돌리고자 문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거나 해당 문제에 대해 눈과 귀를 닫아버리려 하기 마련이다. 듣기만 해도 짜증이 나고 기분이 우울해진다면 코로나바이러스나 기후변화 이야기가 나오는 뉴스 따위 얼른 꺼버리는 게 상책 아니겠는가.

 

나아가 우울과 좌절에 빠진 사람은 문제가 되는 상황에 순응하는 행동, 즉 '적응 행동'을 함으로써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무망감과 적응 행동의 관계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자.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가 되자 많은 사람이 독립운동에 나섰다. 이때 무력을 앞세워 투쟁했던 사람들 못지않게 글과 미술로써 민족의 문화를 수호하고 발전시킨 사람들 또한 많았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서도 일제강점기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일본의 위세가 등등해져만 가자 많은 문인과 미술가들이 친일 부역자가 됐다.

 

불과 몇 년 뒤인 1945년에 일제가 패망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누구도 이런 예측을 하지 못했다. 1930년대 말부터 1942년에 걸쳐 일본은 중국을 침략하고 진주만을 불바다로 만든 뒤, 그들이 '대동아공영권'이라고 부른 광대한 동아시아의 영토와 바다를 손에 넣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제의 동맹인 나치 독일은 이 시기에 영국을 제외한 유럽 대부분을 점령하고 러시아 침공 작전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바야흐로 암흑이 온 세상을 뒤덮어가던 시기, 자주독립의 희망을 잃은 이들은 “이제 일본인으로서 잘사는 수밖에 없어"라며 적응 행동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 서사시 ‘국경의 밤'으로 망국민의 애환을 노래하고 민족 문학지 〈삼천리>를 창간했던 김동환은 1942년에 잡지 이름을 <대동아>로 바꾸고 일제의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한국 현대문학의 아버지이며 1937년까지만 해도 일제에 저항하다가 도산 안창호 등과 더불어 옥살이를 했던 이광수는 1938년부터 갑자기 태세를 바꾸어 "내가 독립운동 좀 해봐서 아는데" 풍의 전향자 운동에 나섰다. 민족미술의 부흥을 이끌던 여러 미술가도 조선총독부의 지도를 받으며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찬양하는 그림을 그리고 징집을 독려하는 기사에 삽화를 얹었으며 전비 마련을 위해 제작된 부채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희망을 상실하고 공포와 좌절감에 압도당한 사람들은 이처럼 자신의 신념을 배신하고 적응 행동을 선택함으로써 상황을 악화시킨다.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무망감이 아니라 희망, 목표, 자신감이다. 나치와 일제가 몰고 온 공포와 무망감으로부터 세계를 구한 이들 또한 압제와 공포정치에 굴하지 않고 희망과 목표를 잃지 않았던 투사, 전사, 레지스탕스였다.

 

기후변화 또는 환경이라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절망은 적응 행동을 낳는다. 한번 망가진 지구 환경은 돌이키기 어려운데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딱히 없다고 하고 날씨는 계속 더워져만 가니, 에라 모르겠다 에어컨이나 빵빵하게 돌리며 살자는 식이다. 적응 행동의 부정적 효과를 고려했을 때, 그리고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에서 우리에게 명확한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봤을 때, 오늘날 우리를 휘감은 좌절감은 반드시 퇴치해야 할 심리적 오염 현상이다.

 

희망과 효능감이야말로 다양한 생명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미래로 우리를 이끌어줄 '지구를 위하는 마음'이다. 지구온난화를 늦추고 생태계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등 사랑스러운 지구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아주 많다.

 

지구를 위하는 마음, 김명철, 다산북스, 2022,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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