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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무임승차국이 강제승차국보다 돈을 더 내는 게 정의다 - 파란하늘 빨간지구

by 길찾기91 2021.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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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임승차국이 강제승차국보다 돈을 더 내는 게 정의다

 

미국 마이애미대학교에서 태풍이 지나갈 때 바닷속에서 사는 물고기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연구했다. 빠르고 멀리 움직일 수 있는 상어 같은 물고기는 기압 변화를 미리 감지해 태풍에서 멀리 도망간다. 반면 자기 영역이 있고 빨리 움직이지 못하는 물고기, 거북이, 게와 굴은 강한 파도에 어찌할 바를 몰라 어려움을 겪고 잘 먹지도 못한다. 더구나 이들은 여러 해류가 섞여 염분이 급격히 변하거나 산소 농도가 낮은 물이 솟아 올라와서 고통받는다.

 

바닷속에서만 강한 것은 위험에서 벗어나고, 약한 것만이 그 위험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게 아니다. 육지 위의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자연재해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은 그 재앙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주로 가난한 사람의 삶과 터전이 무너진다. 자연재해는 우리 세계의 예외적 상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잠복해 있던 실존적 차원으로 드러난다. , 재해는 우리 세계의 불평등을 보여준다.

 

온실가스의 약 70퍼센트는 세계 인구의 20퍼센트 이하가 거주하는 선진 공업국에서 배출되었다. 이 지역에서 배출된 온실가스가 일으킨 기후변화는 국경을 넘어 세계적인 문제이며, 인간을 넘어 전 지구적 생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온실가스를 언제 어디서 누가 배출했는지는 그 피해를 받는 시기, 장소, 사람과 상관이 거의 없다.

 

기후변화 피해는 세계 온실가스 3퍼센트만을 배출한 저위도에 사는 가난한 10억 명에게 집중된다. 태평양과 인도양의 가난한 섬나라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농업에 의존하기 때문에 기후변화로 치명적인 피해를 받기 쉽다. , 기후변화의 비대칭적 피해 영향은 가난한 나라를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같은 국가 안에서도 소득 수준이 낮거나, 건강 상태가 좋지 않거나, 거주 환경이 불량한 사람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 우리나라에서도 극한 날씨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더 가혹하게 공격한다. 홍수가 발생하면 지하에 사는 사람이 더욱 어려움을 겪고, 폭염에는 쪽방촌 작은 방에 사는 노인이 더욱 고통을 받는다.

 

2016년 과학 저널 네이처에 호주 과학자들이 온실가스 배출량과 기후변화 피해 간의 세계적 불일치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해 기후변화 원인을 제공했지만, 그 피

202.

 

해를 적게 받는 기후변화 무임승차 Free riders' 국가는 일반적으로 온대와 아열대지역에 있다. 반면 적은 온실가스를 배출했으면서도 큰 피해를 보는 '강제승차 Forced tiders' 국가는 주로 열대지역 위치한다. 우리나라는 기후변화 무임승차 국가에 속한다. , 기후변화에 책임이 큰 나라다.

 

저위도 국가가 기후변화에 취약한 이유는 단지 가난 때문만은 아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5차 보고서는 저위도 지역에서 기후변화가 빨리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저위도 지역은 계절과 날씨의 변동이 작아서 다른 지역보다 기후변화가 빨리 드러나기 때문이다.

 

2017<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 세계은행의 스테판과 줄리(Stephane & Julie, 2017)는 기후변화로 인해 2030년 극빈층이 세계적으로 얼마나 증가하는지를 산출했다. 성장이 빠르고 형평성이 높은 상태에서는 기후변화 영향에 따라 극빈층 인구가 300만 명에서 1,600만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성장이 느리고 형평성이 낮은 상태에서는 극빈층 인구가 3,500만 명에서 12,200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 논문에서 경제성장이 빈곤을 줄이는 데 가장 중요하지만, 경제성장만이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님을 강조했다. 따라서 빈곤층을 줄이려면 경제성장과 더불어 기후변화와 불평등도 해결해야 한다.

 

기후변화가 자연에서 사회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정의justice'를 고려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원인 제공자와는 다른 세대와 다른 지역의 사람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생태학자인 배리 카머너Barry Commoner는 그의 책 원은 닫혀야 한다에서 환경 위기는 환경 그 자체만이 아니라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알아야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모성애 회복과 같은 추상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 정의 추구라는 근본적 차원에서 환경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후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기후변화 대응은 '적응''저감'을 통해 수행된다. '적응'은 이미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기후변화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부정적인 결과를 줄이는 정책이다. '저감'은 기후변화의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정책이다. 두 대응 정책에서 지리적 세대적 불균형을 줄이기 위한 정의를 고려해야 한다.

 

기후변화 적응은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 간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정책이다. 부유한 국가는 잘살기 위해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반면 가난한 국가는 배출 책임과 무관하지만, 기후위험에 노출되어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이처럼 정의롭지 못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빈곤 국가와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 사회 기반시설 구축과 예방적 조치 등이 수행되어야 한다.

 

이산화탄소는 100년 이상 대기 중에 머무르며, 그 일부는 1,000년 이상 남아 있기도 한다. 지금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우리 후손이 감당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결과를 일으킨 원인 유발자와 그 결과를 극복해야만 하는 처리자가 동시대인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기후변화 저감은 세대 간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정책이다. 우리 세대가 잘살기 위해 배출한 온실가스는 다음 세대에도 계속 남아 기후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는 우리 세대가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한 이익은 보지 못하고 피해만을 감당해야 한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것이 기후변화 저감 대책의 핵심이다. 이는 온실가스 감축 기술 개발과 배출 감축을 위한 국제공조 등으로 이루어진다.

 

지구 전체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유지하려면, 모든 인류가 참여해 기후변화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탄소 배출을 통해 부를 이룬 국가는 앞으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가난한 나라도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고 압박한다. 부자 국가들은 자기들만 비싼 음식을 먹고 나서, 가난한 이웃을 초대해 차만 같이 마시고 음식값을 나누어 내자고 말하는 것과 같다. 빈곤이라는 긴박한 문제를 안고 있는 후진국은 가난 퇴치와 기후변화 대응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이중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러므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서는 기후변화가 인류 공동의 과제이지만, 선진국이 지금껏 온실가스를 배출한 것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1997년 기후변화협약에 관한 교토의정서에서 선진국은 의무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기로 합의했다. 그 후 중국이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 국가가 되고 개발도상국이 세계 배출량의 60퍼센트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는 2020년부터 예외 없이 모든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기로 합의했다. 이때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정당한 원칙을 정했다. 그 원칙이 '형평성', '공동이지만 차별화된 책임’, ‘개별 국가의 역량'이다.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수반된다. 이 비용 부담에 대한 의지와 능력이 있다 해도, 온실가스 감축량 분배와 저감을 위한 비용을 누가 얼마나 어떻게 부담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어렵다. 여기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에 비용을 어떻게 공정하게 분배하느냐 하는 '형평성'이 중요하다.

 

공동이지만 차별화된 책임' 원칙은 모든 국가가 공동으로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지만, 배출량이 많은 국가가 배출량이 적은 국가보다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책임은 지구온난화에 기여한 정도인 산업혁명 이후 누적 배출량으로 정해진다. 저감 비용은 각 나라의 책임 정도에 비례하여 배분한다.

 

개별 국가의 역량' 원칙은 기후변화 대응에 드는 비용을 각 나라 지급 능력에 비례하여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GDP 수준 또는 1인당 소득이 높은 국가가 감축 비용을 많이 부담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가난한 사람만의 문제라 생각하기 쉽다. 부유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대응 능력이 없어 어려움에 부닥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인류가 기후변화를 관리할 수 있는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파리 기후변화협약의 목표대로 산업화 이전 시기보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2도 이하로 유지하는 경우에만 지구적인 고통을 막을 수 있다. 2도를 넘으면 가난한 사람이든 부유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파국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 1도 상승한 지금도 이미 미국은 허리케인, 가뭄, 산불과 한파에 절절매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정의롭게 변하지 않는다면, 기후변화로 인한 지금 가난한 사람의 고통은 곧 부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고통이 될 것이다.

 

 

파란하늘 빨간지구, 조천호, 동아시아, 2019. 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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