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가계
나라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어.
늦은 저녁 식구 수대로 놓인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밥공기, 그 앞에서 고단했던 하루를 서로 위로하는 것
더 내놓을 것도 없는 사람들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설교당하고, 삶의 언저리로 내몰렸던 때가 있었지.
1998년 9월이었어.
조폐공사는 2001년으로 예정되었던 조폐창 통폐합을 돌연 2년 앞당기면서 1999년 3월까지 전체 인원의 40% 이상을 감축한다고 발표해.
그런데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1998년 7월까지만 해도 공사는 정부의 통폐합 안에 반대했단 거야. 조폐창 이전에 약 8백억원의 자금이 소요되고, 통폐합 이후 해마다 59억원 가량 손실 발생이 우려된다고 하면서.
통폐합지침이 기획예산위원회에 의하여 확정된 다음에도 2003년까지 2년만 여유를 달라고 요청했었지.
인력과 조직이 축소되는 것을 반기는 데는 없으니까 이렇게 반대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데, 갑자기 입장이 바뀐 것은 강희복 사장이 밀어붙인 때문으로 알려졌어.
이사회 의사록에 따르면, 조폐공사 이사 5명 중 3명도 조기통합시 직원들의 거주 문제와 경산창으로 옮길 경우 늘어나는 물류비용 등을 제기하며 반대했거든.
죽은 것도 아닌데 마음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던 사람은 결국 자신을 태워버리지.
1999년 1월 옥천창 설비이전을 막기 위해 조폐공사의 조합원들은 농성을 벌이고 있었어. 경찰이 투입되자 강승희 노조위원장은 공장에 있던 시너를 몸에 붓고 불을 붙였어.
곧이어 검찰은 국난극복의 일치단결된 분위기를 흐리는 이들을 손봐주기 위해 노조 간부 2명을 구속하고 다른 4명의 노조 간부를 수배해.
게다가 조폐공사는 파면 9명, 정직 21명, 직위해제자 79명의 무더기 징계를 내리고 조합비 5억원을 가압류했어.
그런데 조폐공사가 왜 노조원들의 고통을 찍어내고 이를 본보기로 전시했는지는 진형구 검사장의 가벼운 입으로 밝혀지지.
고검장 승진에 들뜬 진형구는 낮술을 마시고서는 “조폐공사 파업은 우리가 만든 것이다. 내 고교 후배인 조폐공사 사장과 논의한 뒤 했다. 이 같은 계획을 공안부에서 만들어 총장에게 보고했다“며 조폐공사 파업진압을 자신의 공적으로 떠벌이지.
“공기업 파업이 일어나면 검찰이 이렇게 대처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했는데 노조가 너무 쉽게 무너져 싱겁게 끝났다”고도 말해.
공기업 구조조정에 반대하면 어떻게 검찰이 손을 봐주느냐 하는 본보기를 만들기 위해 규모와 파급력이 작은 조폐공사를 골라 파업을 유도했다는 거지.
진형구의 가장 큰 죄는 뭘까?
나는 사람들의 삶을 파괴한 죄라고 생각해.
그러나 법전엔 그런 죄는 없으니까 무죄를 선고받아.
대법원은 문제된 행위가 쟁의행위 당사자의 자유롭고 자주적인 의사결정을 저해할 정도로 유도, 조장한 정도에는 이르지 않고, 단순한 상담이나 조언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시이유를 설명하지.
그런데 검사들이 우리 검찰 대선배님을 수사, 기소, 공소유지함에 있어서 얼마나 세심하게 해드렸겠어? 심지어 특검에 가서 압수수색된 서류를 빼앗아 오는 일까지 벌이는데.
특검은 조폐공사 파업 사건을 담당했던 대전지검에서 관련 자료를 압수해왔는데, 대전지검 검사 둘과 공안부 직원 5명이 김형태 특검보 사무실에 우르르 몰려와 가져간 자료를 다 도로 내놓으라고 해.
김 특검보는 “피의자들이 검사에게 압수된 물건 돌려달라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라며 저항하지만 역부족이었지.
압수한 서류를 뺏긴 다음 날 김 특검보가 “검사를 수사하는 것이니 검찰 출신 인사들은 특검 사건에서 빼자”고 검사장 출신 강원일 특검에 제안했어. 하지만 그 자신이 수사권을 뺏기고 특검을 떠나게 되지.
그런데 30여년이 지난 후 그 장인만큼이나 중2병이 심한 한동훈 검사의 인터뷰를 우리는 조선일보에서 보게 된 거야.
대한민국의 정의와 미래는 내 손에 달려있다고 믿는 그 중2병 말이야.
“진영에 상관없이 강자의 불법에 더 엄정해야 한다는 그 기준에 따라 일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약자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인 게 현실 세계니까요.”
“강자의 권력 비리가 드러났는데도 처벌받지 않는 것이 뉴 노멀이 되는 순간, 부패는 공사 모든 영역으로 좀비처럼 퍼져 나갈 겁니다. 가속도 붙을 거고요. 모든 영역에서 약자들과 서민들이 대놓고 착취당할 겁니다.”
김경록씨에 대해선 휴대폰을 임의제출하지 않으면 긴급체포하겠다고 윽박지르고, 소환통지도 하지 않고서 이광철 비서관과 최강욱 의원이 소환에 응하지 않는다고 언론플레이했던 검찰 아니냐고.
본인은 검찰의 소환에 응하지 않고 핸드폰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러 온 검사와 몸싸움을 벌이고 털릴 게 많아서 두려운지 핸드폰 비밀번호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강자의 불법이 처벌되지 않고 약자가 착취당하는 것을 걱정하는 중2병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어.
게다가 강자의 불법이 처벌되지 않고 넘어갔던 대표적인 사례가 그 처남 진동균인데 말이야,
낮고 흔하고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을 위한 나라는 언제 오는가 하면, 이렇게 위험한 가계의 중2병 보유자들이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며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동안에는 오지 않을 거란 거지.
- 이연주 변호사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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