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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우리가 ‘목적 지향적’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 - 청년의 빅퀘스천

by 길찾기91 2021.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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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목적 지향적’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

 

개인이든 사회든 그것이 속한 시대의 여건과 요구가 만나 특정한 삶의 패턴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를 무시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목적 지향의 시대’에서 ‘탈목적적인 인생’을 살면 발전 없는 낙오자나 방향을 상실한 방랑자가 되지만, 반대로 탈목적적 시기나 탈목적적 사회에 살면서 목적 지향적으로만 살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아둔한 자가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목적을 통해 탄력받는 삶’과 ‘목적으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행복을 찾는 삶’을 결정하는 독특한 경제적, 사회적, 정서적, 종교적 콘텍스트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사회적으로 그리고 정치, 경제적으로 낙후된 사회에서는 공동체든 개인이든 오늘보다 내일을 더 좋게 만들 목표 수립이 절실하다. 암울한 현재의 고통을 잊고 그 문제를 해결할 방책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다. 내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목소리와 내 목숨을 이어갈 빵이 없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목적 지향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인생과 사회에서 이루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뜻이다. 전후 한국 사회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국민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정치적 권리는 둘째 치고 하루를 연명할 양식도 부족하고, 공동체를 유지할 기본적인 인프라나 사회적 통합마저 부족하니 인생의 심오한 가치나 철학 따위를 논할 여유가 없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뒤돌아보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야 했다. 생존과 성공 그리고 발전이라는 꿈은 우리 공동체 모두의 목표였을 뿐 아니라 처참한 환경 가운데서도 각 개인들이 살아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던져 주는 촉매제였다.

암울한 현실에서 빠져나와 더 밝은 미래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이러한 목적 지향적 사회관은 경제적 관점으로 볼 때 개발도상국적 인생관을 형성시켰다. 국가 경제에서도 분명한 장단기 계획이나 목표가 있듯이 인생에도 청사진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관점이다.

우리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에게도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묻는다. 개발적 인간관에 있어서 바람직한 인생이란 자신의 목표가 분명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삶이며, 그 목표를 온전하게 이루었을 때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받는다. 이러한 인생관에서는 목적이 없거나 그것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인생낙오자나 무능자로 치부된다.

이러한 목적지향적 인생관에서는 옳고 그름이 다분히 이원론적이다. 목적이 성취되면 선이 되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악이 된다. 흑 아니면 백이란 뜻이다. 경제적인 예로, 물질적으로 궁핍한 세상에서는 부의 획득이 곧 인생의 목적이 된다. 따라서 가난은 불편함이 아니고 악이 된다. 부를 가진 자는 목적을 성취한 자로서 선하고, 가난한 자는 그것이 태생 때문이든 미흡한 노력 때문이든 악한 자로 취급받는다.

사회적 관계도 마찬가지다. 목적 지향적인 사회에서는 인간관계가 개인이 세운 목적과 무관하거나 그와 위배되면 부질없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회는 아무리 좋은 사람과의 관계라 할지라도 그것이 내 목적 달성에 장애가 된다면 내려놓아야 한다고 압박한다.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문제적 삶을 생각하면 사람 자체를 좋아해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사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심리적 태도도 이와 유사하다. 개발도상국적 인생관에서 정서적 안정은 목적 수립에서 온다. 무엇이든 내가 이루어낼 것을 시각화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다. 목적을 세운다는 것은 내 마음의 바람이 움직일 방향을 잡는 일이고 이를 통해 내 열정을 불태울 장작더미를 쌓는 일이다.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내 모습을 감상하며 쓴 과거의 울분을 씻고 기억을 지운다. 또 그렇게 목적을 바라보며 미래의 희망을 찾는다.

이처럼 삶의 문제를 결핍이나 궁핍에서 찾는 인생관에서는 종교나 영적 행위도 목적 지향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러 심각한 물질적 궁핍과 난관으로 얼룩진 대한민국 근대사에서 그리스도교는 성공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왕국, 정의, 구원, 천국 등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는 그리스도교는, 해방 후 봉건주의 시대에 갈 곳을 잃어 방황하는 국민들의 영적 요구에 정확하게 응답했다. 잔혹했던 식민지, 전쟁의 참사, 경제적 빈곤 그리고 정치적 부패는 교회 강대상에서 ‘죄’라는 신학적 개념으로 풀이되었고, 해방과 민족중흥 그리고 경제발전과 민주화는 사람들의 마음에 새 시대, 천국, 구원이라는 개념과 교차되어 전달되었다.

목적 지향적인 그리스도교는 경제적, 정치적 구원이라는 형이하학적인 공동체적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한국 사람들에게 영혼구원이라는 형이상학적인 목표를 함께 달성해야만이 온전한 인생을 이루는 것이라 설파했다. 빈곤 타파라는 목표는 이른바 그리스도교 신학이 말하는 ‘과녁에서 벗어나다’는 뜻의 죄의 타파와 어우러져 절묘한 인생관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가난과 불의에 맞서 싸우는 세속적 행위에 정의로운 아버지의 왕국을 이 땅에 세워야 한다는 신성한 명령이 더해져 사회적 발전이 가속화되었다. 대한민국 근대사의 성공에 ‘목적을 필요로 하는 한국의 시대적 상황’과 ‘목적을 지향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결합하여 한 몫 했다는 말이다.

 

<청년의 빅퀘스천> 이성청, 책으로여는세상, 2016, 117-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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