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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믿습니까? 믿습니다! - 우리는 왜 미신을 믿는가

by 길찾기91 2021.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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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 우리는 왜 미신을 믿는가

 

더닝과 크루거는 학부생 65명에게 각각 스무 가지 논리적 사고 시험을 치르게 한 다음 자신의 실력을 어느 정도 쯤으로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런데 시험에서 최하위 5퍼센트에 속하는 학생 대부분이 자신이 중상위권(상위 2.5~50퍼센트) 정도 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는 실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같은 질문에 응답한 비율보다 훨씬 높았다.

 

그러니까 이 하위 5퍼센트의 학생들은 '우매함의 봉우리'에 있다. 이들은 자기 확신이 강해 틀린 결정을 내리지만, 자신들이 틀렸다는 사실조차 알 만한 능력이 없다. 그래서 이 근거없는 자신감은 꺾이지 않는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이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현대에는 신경 쓸 일이 너무 많고 이슈도 너무 빨리 변한다.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이 어떤 사안을 전혀 모르거나(그나마 낫다) 아니면 한번 들은 것을 믿고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들은 한번 접한 의견에 빠져 그걸 자신의 SNS에 퍼 나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이므로 상대적으로 자신이 많이 안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다 그 분야를 진지하게 배우기 시작하면, 곧 그 분야의 천재들을 만나게 되고 '절망의 계곡'에 빠진다. 그때부터 자신감은 급격히 떨어져서 나는 아무것도 몰라' 상태가 된다. 재밌는건 이들도 상대적으로 자신을 낮게 평가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소크라테스나 공자 같은 인류의 대스승들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을 높게 평가한 게 문제다. 절망의 계곡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그래도 나는 내가 모른다는 걸 안다'라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들 역시 자신을 진짜 잘 아는 사람의 아래 단계인 중상층으로 평가한다.

 

절망의 계곡을 지나 지식을 차곡차곡 쌓으면 '깨달음의 비탈길'에 이른다. 이제부터는 진짜 잘 알게 된다. 그런데 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던 과거의 자신을 잊고, 자신이 아는 만큼 남들도 잘 알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주변에는 자신처럼 잘 아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 그래서 바보 소리를 해대는 초심자들에게 결론을 내려주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늘 전제하며, 복잡한 예외 상황을 가정한다. 하지만 초심자들은 어차피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전문가조차 내 의견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편협한 믿음을 강화한다. 사실 내가 온갖 분야의 책을 쓸 수 있는 것도 다 더닝 크루거 효과 때문.

 

아무튼 초보자부터 고수까지 모두 자신을 중상층으로 평가하는 묘한 구조가 형성된다. 그러니 미신이든 음모론이든 가짜 뉴스는 대안적 진실이든 종교든 사상이든 한번 박힌 생각은 좀처럼 바꾸기 어렵다. 어느 단계에 있든 자신이 늘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문 분야가 너무 다양해진 현대에는 탁월한 전문가도 다른 분야에서 이상한 미신이나 믿음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창조과학을 믿는 물리학자나 화학자가 있는가 하면, 유니콘의 CEO이자 천재적인 프로그래머도 헤어진 연인에게 자니?” 같은 찌질한 문자를 보낸다. 나는 의사와 변호사 같은 소위 전문직 종사자가 대다수인 모임에 초청받아 이들과 오랜 시간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정말 진지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올해의 운세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사주에 관심이 많았고, 일부는 사주가 빅데이터라고 주장하며, 신뢰할 만하다는 발언까지 했다. 좋은 직업을 가졌다고 꼭 현명한 사람인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고등교육을 받아도 얼마든지 미신에 빠질 수 있다. 자신이 어느 분야에서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오히려 미신에 빠졌을 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내가 난데가짜에 속겠는가.

 

그러니 당신이 존경하는 훌륭한 사람이 특정 미신을 믿는다고 해서 다짜고짜 그 미신을 따라 믿는 오류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그 훌륭한 사람도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곳에서는 어차피 호구일 뿐이다. 네임드 호구.

 

 

 

1948년 심리학자 버트럼 포러Bertram Forer는 대학생 39명에게 심리검사를 실시한다. 무료로 해준다고 하니 학생들은 신나서 실험에 참가했다. 학생들이 모든 문항에 체크를 하면 포러는 그들에게 결과를 보여주고 자신의 성격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0(최하)부터 5(최고)까지 평가해달라고 부탁했다. 39명의 평균 점수는 4.26 점으로 만점에 가까웠다. 학생 대다수가 결과에 만족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받은 결과는 사실 학생들의 성격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학생이 어떤 답안을 제출하는 포러는 똑같은 결과를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 결과가 자신의 성격과 일치한다고 믿었다. 포러가 학생들에게 준 결과는 아래와 같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고 존경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비판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당신은 몇 가지 성격적 결함을 갖고 있지만, 평소에는 그것들을 상쇄할 수 있어 큰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겉으로는 규칙을 준수하며 자제심 있게 행동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걱정하며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끔 당신은 당신이 옳은 결정을 내렸는지 심각하게 의심합니다. 당신은 어느 정도의 변화와 다양성을 선호하며, 구속과 규제로 갇히게 되면 불만스러워합니다. 당신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지닌 사람임을 자랑스러워합니다. 납득할 만한 증거가 없는 다른 사람의 말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당신은 너무 솔직하게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외향적이고 친절하며 사교적이지만, 때로는 내향적이고 외부를 경계하고 내성적이 됩니다. 당신의 꿈 중 일부는 매우 비현실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안전한 삶은 당신의 주요한 목표들 중 하나입니다.

 

어떤가? 자신과 비슷한가? 너무 뻔한 수법 아니냐고? 맞다. 그래서 여기에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일단 결과를 주는 사람에게 신뢰감이 있어야 하며, 나에게만 주는 답이라는 확신도 필요하다. 이 실험에선 두 가지 전제가 모두 충족된다. 실험을 진행한 포러는 권위 있는 심리학과 교수이며 심리 검사 이후 학생들에게 결과를 개별 통보했다. 부정적인 말보다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해주면 신뢰를 얻기 더 좋다. 확신만 줄 수 있다면, 예언은 모호하면 모호할수록 좋다. 어차피 무속인을 신뢰하는 사람은 그 모호함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알아서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틀린 답을 내리더라도 그 틀린 답은 은유나 메타포가 되지 틀린 것이 되진 않는다. 예술가보다 중요한 건대중이며, 마술사보다 중요한 것은 관객이듯이, 신보다 중요한 것은 신자이며, 점쟁이보다 중요한 것은 믿는 사람들이다.

 

탈종교 시대임에도 여전히 각종 미신이 흥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사주를 보든 타로를 보든 내리는 해답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착각한다). 그런 포인트가 오히려 급변하는 시대와 잘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종교는 약해지지만 미신은 강해진다. 이를 포러 효과, 혹은 바넘 효과라 부른다(바넘은 미국의 서커스 단장 겸 흥행업자다. 그가 사람을 현혹하는 기술이 이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사람들은 타로나 사주에 대해서, 과거는 잘 맞추는데 미래는 맞추지 못한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빅데이터에 기반을 뒀기 때문'이라고 말들을 하는데, 사실은 이 바넘 효과 때문이다. 지나간 과거는 모호한 말 속에 자신의 경험을 풀어 이해할 수 있지만, 미래를 해석할 때는 기대감이 포함되기 때문에 정확히 맞힐 수 없다.

 

결국 우리를 속이는 건, 점쟁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건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거라면 뭐든 믿는 존재이기 때문에.”

 

기원전 4세기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지금도 기꺼이 속는다.

 

<믿습니까? 믿습니다! - 별자리부터 가짜 뉴스까지 인류와 함께해온 미신의 역사> 오후 지음, 동아시아, 2021. 346-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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