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6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6주 전에 ETF 뉴스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후보 깜짝 지지, 성명서를 발표하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이 글에는 교황이 발표했다는 성명서도 포함돼 있었는데, FBI가 트럼프의 상대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형사 고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하기로 결정한다는 내용이었다(FBI의 제임스 B. 코미 국장은 2016년 7월 5일에 'FBI는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으로 재직했을 당시에 사설 이메일 서버를 사용한 사건에 관한 수사를 종결한다'고 발표했다. 수사관들은 고의적으로 법을 위반한 의도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ETF 뉴스에 따르면, 교황은 "FBI는 … 막강한 힘을 손에 넣은 정치 권력에 의해 부패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라며 “몇몇 사안에 대해서는 트럼프 후보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미국의 연방정부를 부패하게 만든 막강한 정치 권력에 반대표를 던지는 것만이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부를 위한 유일한 선택지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게시된 시점부터 선거일까지 페이스북에서 96만 회 ‘공유하기' 또는 ’좋아요'를 받았다(이 기사를 보거나 클릭까지 한 사용자를 모두 합치면 이보다 10배는 더 많을 것이다). 이는 미국 대선 전 3개월간 가장 많이 공유된 단일 뉴스였다. 반면, 같은 기간 유수의 매체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선거 관련 기사는 <워싱턴 포스트>의 오피니언 면에 게재된 '트럼프의 부패 이력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왜 클린턴을 부패 세력 취급하는가?'였다. 이 글은 849,000회 공유됐다(이 글도 노골적으로 당파적이어서 '뉴스'라 보기는 어렵다. 비록 ETF 뉴스의 날조에 비하면 언론 보도 기준을 훨씬 많이 충족하는 글이지만), 참고로, 클린턴은 18개주에서 25만 표도 안 되는 표 차이로 패배했다. 위스콘신, 미시건, 펜실베이니아에서는 각각 5만 표 미만 차이로 졌는데, 이 세 주에서만 표 차를 뒤집었다면 클린턴이 대선에서 이겼을 것이다.
교황이 정말 트럼프를 지지했다면 수많은 매체가 주요 뉴스로 앞다투어 보도하고 대중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전부 날조된 이야기였으니까.
교황의 트럼프 지지 선언은 미국의 대선 기간 중 가장 큰 '가짜뉴스' 사건이었지만, 예외적인 사건이라 치부할 일은 아니었다. 인터넷 매체 버즈피드 뉴스의 크레이그 실버만의 분석에 따르면, 선거 전 3개월간 20대 가짜 뉴스가 페이스북에서 받은 '공유' 또는 ‘좋아요'는 870만 회나 되었다. 같은 기간 동안 신망 높은 매체의 20대 뉴스가 페이스북에서 받은 '공유하기' 또는 '좋아요'의 횟수는 730만 회였다. 또 다른 연구에서 뉴욕대학교의 헌트 올콧과 스탠포드대학교의 매튜 겐츠코우로 구성된 경제학 연구팀은 선거 전 몇 주에 걸쳐 총 3,800만 회 공유된 친親트럼프 가짜 뉴스 115개와 친親 클린턴 가짜 뉴스 41개를 모아 데이터베이스화했다. 연구팀의 추산에 따르면, 이들 뉴스는 공유되면서 수억 회 클릭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다시 수많은 가짜 뉴스 사이트를 생성해냈다. 10월 8일부터 11월 8일 사이에 이들 사이트의 방문자 수는 총 15,900만 명에 달했다.
특히 ETF 뉴스의 성적이 좋았다. 기사 5개를 20대 뉴스 목록에 올려 해당 기간에 총 350만 회나 ’공유하기' 또는 '좋아요'를 받아냈다. 선거 직전 몇 달간 ETF는 인터넷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뉴스 매체였다. 게시된 글들은 클린턴이 IS 이슬람국가Islamic Stute에 직접 무기를 판매했다거나, 미국 연방법에 의해 직무를 박탈당했다거나, FBI 전직 국장 제임스 코미가 클린턴재단으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뇌물을 받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군 인사들의 급료를 삭감했다는 혐의 등을 담고 있었다.
TV 뉴스 앵커 메긴 켈리에 관한 기사가 페이스북에서 '인기 주제 trending topic'가 되고 페이스북 사이트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퍼뜨린 사건이 있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켈리는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배신자'로 낙인찍혀 폭스 뉴스에서 해고됐다(트럼프와 켈리 간의 신경전은 2015년 8월 6일 공화당 예비선거 토론에서 시작됐다. 당시 켈리는 트럼프에게 그의 여성 비하적인 과거 발언들에 대해 날 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트럼는 “켈리의 비판은 그녀의 생리주기 때문”이라는 뉘앙스로 대응했다).
그러나 이 중 어느 이야기도 사실이 아니었다. 심지어 다른 가짜뉴스 사이트에서 그대로 베껴 쓴 것들도 많았다. 교황의 트럼프 지지 선언은 WTOE 5 뉴스라는 가짜 뉴스 웹사이트에 처음 게시되었다. WTOE 5 뉴스는 유명인들이 미국 내 여러 소도시로 이주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주장하며 트래픽을 유도하는 가짜 뉴스 사이트 네트워크에 속해 있었다 (현재 이 사이트는 사라졌다). 다른 기사들은 수프림패트리어트닷컴supremepatriot.com과 프라우드컨스닷컴proudcons.com 같은 웹사이트에서 출처도 없이 그대로 퍼 나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TF 뉴스에 게시된 기사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원본 기사보다 훨씬 더 많이 공유됐다.
오랜 기간 동안 '식물성 양'의 존재를 믿었던 유럽의 사례는 무해한 호기심의 역사였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및 유럽에서 '식물성 양‘은 주요 정치권력이 됐다. 미국과 유럽연합EU 국가에 약 10억 명이 살고 있고, 이들 국가의 군사 · 무역 · 이민 정책의 영향을 받는 사람은 수십억 명에 달한다. 그런데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일이나 영국이 EU에서 탈퇴(브렉시트Brexit)한 일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졌든 이런 중차대한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뉴스가 거짓에 기반을 두었다고 한다면 매우 심란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궁금한 점 하나가 떠오른다. 민주주의는 가짜 뉴스의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거짓은 어떻게 확산되는가, 케일린 오코너, 제임스 오언 웨더럴, 반니, 2021.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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