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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 생물 절멸 작전 - 고장난 거대기업

by 길찾기91 2022.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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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아프리카의 가난

 

다이아몬드는 땅 속 깊은 곳에서 엄청난 압력을 받아 만들어진 광물입니다. 지구에서 가장 단단한 천연 광물로 알려져 있어서 흔히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할 때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곤 하지요. 하지만 다이아몬드가 이처럼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보석으로 비싸게 팔리게 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닙니다. 100년 전만 해도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다이아몬드는 그저 작고 반짝이는 돌일 뿐이었지요. 백인들이 이 돌을 찾아 아프리카로 몰려오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186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킴벌리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1871,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드비어스 형제가 50파운드를 주고 산 케이프 주 북부의 한 농장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었지요. 드비어스 형제는 이 농장을 되파는 과정에서 이 광산이 영원히 '드비어스 광산'으로 불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드비어스란 이름이 남게 되었습니다.

 

다이아몬드 기업 드비어스의 창업자는 영국인 세실 로즈입니다. 그는 영국 하트퍼드셔 출신의 목사 아들이었지요. 1870년에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주해 와서 다이아몬드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뒤 케이프 주의 수상까지 지냈습니다. 그는 1871년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다이아몬드 채굴 산업에 종사하기 시작해, 1888년 킴벌리 지역의 모든 다이아몬드 광산을 소유했고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드비어스연합광산회사를 세웠어요. 그 뒤 드비어스는 전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 A Diamond is Forever'라는 광고 문구를 들어본 적이 있을 거예요. 일반인들에게 다이아몬드를 영원히 변치 않는 보석으로 인식시켜 준 이 단순하고 명료한 광고 문구는 2000애드버타이징 에이지 매거진으로부터 20세기 최고의 광고 카피로 선정되기도 했지요. 드비어스는 이 광고 문구를 사랑과 결합시켜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약혼이나 결혼 예물로 무수히 팔려 나가게 만들었습니다.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굴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의 일입니다. 1930, 영국의 지질학자인 J. D. 폴렛이 시에라리온에서 다이아몬드를 발견했어요. 당시만 해도 시에라리온은 국토 대부분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밀림이었습니다. 주민들은 대부분 밀림에서 농사를 짓고, 자연의 모든 존재 속에는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었지요. 시에라리온 주민들은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막대한 값어치를 가지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저 다른 돌멩이와 똑같이 취급했지요. 하지만 백인들이 자신들이 돌멩이로 여겼던 것을 찾으려고 여기저기를 파헤치는 모습을 보고 주민들도 차츰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1950년대까지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 생산은 드비어스연합광산회사의 소유였던 '시에라리온셀렉션트러스트'가 독점했습니다. 시에라리온의 무역과 정치, 상업 활동의 중심지였던 프리타운에는 미국과 유럽에서 온 해방된 노예들이 대부분이었지요. 프리타운Freetown이라는 이름도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시에라리온셀렉션트러스트는 프리타운의 행정을 담당하던 영국 정부로부터 98년간 다이아몬드를 채굴할 수 있는 독점적인 채굴권을 얻어 냈어요. 그러나 채굴한 돌의 가치가 알려지자 여기저기서 불법 채굴이 일어났지요. 농부들도 농사는 제쳐 둔 채 너도나도 다이아몬드를 얻으려고 덤벼들었지요. 나중에는 농사지을 사람이 부족해 쌀을 수입해야 할 지경이었어요. 시에라리온셀렉션트러스트는 이런 불법 채굴을 막기 위해 민병대를 조직했습니다. 민병대와 광부들 사이에서는 자주 총격전이 벌어지곤 했지요.

 

하지만 드비어스는 사람들이 다이아몬드를 어떤 경로로 얻든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저 시에라리온에서 나는 아름다운 보석을 자기들이 살 수만 있으면 되었지요. 그래서 드비어스는 다이아몬드를 훔쳐서다른 곳으로 팔아넘기는 사람들에게 다이아몬드를 사들이기 위해 시에라다이아몬드 사를 세웠습니다. 불법으로 다이아몬드를 사고파는 밀수업자와도 거래를 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1961년 시에라리온 정부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그 후에도 다이아몬드 밀수는 계속되었습니다.

 

독립을 했지만 시에라리온은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1991년에는 급기야 시에라리온에 내전이 일어났어요. 군 장교 출신인 포다이 산코가 라이베리아공화국의 지원을 받아 혁명연합전선을 결성한 거예요. 이들을 흔히 시에라리온 반군이라고 부릅니다. 반군은 전 대통령이 임명한 조지프 사이두 모모 정권을 몰아내려고 했습니다. 초기에 반군은 부패한 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고 약속했어요. 또 다이아몬드 수입도 공평하게 나누고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를 실시하며, 억압과 착취를 철폐하겠다고 했지요. 하지만 반군은 이내 다이아몬드에 욕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전쟁을 일으킨 목적이 달라졌어요. 살육과 광기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지요.

 

반군은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광산 지역을 점령하고 다이아몬드를 팔아 무기를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시에라리온 반군은 마을을 약탈하는 과정에서 여자들을 농락하고 2천여 명의 남자들 손목을 잘랐어요. 농경 사회에서 손목이 잘린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까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이아몬드 채굴에 동원되었고, 심지어 일에 지친 사람들에게 마약을 먹여 일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199916일 반군은 '생물 절멸 작전'을 펼쳐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을 공격합니다. '살아있는 것은 다 죽인다'는 뜻의 이 작전명처럼 그날 프리타운은 쑥대밭이었어요. 내전 10년 동안 시에라리온에서는 200만 명의 피란민과 2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요. 다이아몬드는 이제 영원을 의미하는 보석이 아닌 피의 상징이 되고 말았어요. 말 그대로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가 된 것이지요. 이 전쟁은 2002년 유엔평화유지군이 개입하면서 비로소 마무리 되었지만 여전히 시에라리온에는 손목이 잘린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전이 시작되자 다이아몬드의 공식적인 수출은 중단되었어요. 그러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라이베리아의 몬로비아를 중심으로 한 다이아몬드 밀수는 여전했지요. 마침 시에라리온에서 드비어스에게 채굴 독점권을 넘겨주었던 정부가 무너지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어요. 그러자 다이아몬드 채굴을 노린 세력들이 너도나도 개입하기 시작했지요. 우선 라이베리아 대통령이었던 찰스 테일러가 시에라리온 반군에게 돈과 무기를 지급해 다이아몬드 채굴에 개입하려고 했어요. 영국 역시 다이아몬드에 홀려 반군을 지원했고 이에 질세라 드비어스도 시에라리온 반군과 손을 잡았어요. 시에라리온 내전이 10년 이상 지속된 것은 이처럼 라이베리아, 영국, 드비어스라는 탐욕에 가득 찬 국가와 기업이 반군 등 뒤에 있었기 때문이지요.

 

부패한 정치인들과 기업들이 유린하고 지나간 아프리카 지역은 풍부한 지하자원을 소유하고도 여전히 지독한 가난과 싸우고 있어요. 아프리카의 풍족한 자원이 아프리카를 위해 쓰이는 것을 원치 않는 국가와 기업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아프리카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장난 거대기업> 좋은기업센터 기획, 양철북, 2013. 22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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