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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설림과 세상공감

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편 上(상) 24

by 길찾기91 2021.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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紂為象箸而箕子怖以為象箸必不盛羹於土簋則必犀玉之杯玉杯象箸必不盛菽藿則必旄象豹胎旄象豹胎必不衣短褐而舍茅茨之下則必錦衣九重高臺廣室也稱此以求則天下不足矣聖人見微以知萌見端以知末故見象箸而怖知天下不足也

 

폭군인 ()임금이 상아 젓가락을 만들자 箕子(기자)가 두려움에 떨었다. 그가 상아 젓가락을 만든 것은 틀림없이 하찮게 흙으로 빚은 그릇에 국을 담아 먹는 용도가 아니라 반드시 물소 뿔이나 옥으로 만든 잔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옥으로 만든 잔이나 상아 젓가락은 하찮게 콩이나 나물 같은 허드레 음식을 먹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물소 고기나 표범의 胎兒(태아)고기 같은 것을 먹는데 사용할 것이다. 맛있는 물소 고기나 표범의 胎兒(태아) 고기를 먹을 정도면 하찮게 짧은 삼베옷을 입거나 초가집 정도에는 살지 않고 반드시 비단옷을 입고 구중궁궐처럼 넓고 화려한 고대광실에 살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의 요구가 계속되면 세상 모든 것을 갖다 바쳐도 부족하다.

聖人(성인)은 미미한 데서 어떤 일의 징후를 알아내고, 자그마한 단서를 보고 그 일의 결말을 알아낼 수 있다. 그러므로 상아 젓가락을 보고 두려움에 떨었던 이유는 폭군인 ()임금에게 세상 모든 것을 바쳐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기 때문이다.

 

(): 고대에 가난한 사람들이 입던 거친 삼베옷.

󰌚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eternity in an hour.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 꽃에서 천국을 본다.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붙잡는다.

-  William BlakeAuguries of Innocence(순수의 전조) .

 

윌리엄 블레이크와 箕子(기자)의 능력은 조그마한 것에서 거대한 것을 볼 줄 아는 능력이다. 조그마한 단서 하나로 거대한 범죄의 전모를 밝혀가는 노련한 수사관처럼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직관력도 때로 필요하다. 하물며 눈앞에서 노골적으로 선량한 사람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나라를 위해 불철주야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을 음해하며, 매 순간 나라 망하라고 고사를 지내며 자기들만의 이익과 안위만 추구하는 거악 집단을 뻔히 보고서도 아무런 손도 쓸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옳다, 진실, .

聲符(성부)(끝 단)인 형성자(形聲字).

 

(끝 단)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무당의 모습. (설 립)은 자리의 의미. 의식을 거행하는 장소의 정해진 위치라는 뜻. 거기서 바르게 정돈된 위치를 점유한다는 뜻이다. 위치의 단정함을 말하고 거기서 질서가 성립하기 때문에 發端(발단), 端初(단초)의 뜻이 되었지만 원래는 端正(단정), 端嚴(단엄)이 원뜻에 가깝다.

 

 

 

* 위 글은 김동택의 <한비자와 세상공감>(리체레, 2021)을 옮긴 것으로, 저자의 동의 하에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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