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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불법사찰과 직무범위 사이 - 손치득 변호사

by 길찾기91 2020.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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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사찰과 직무범위 사이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의 주요 사건 재판부에 대한 성향분석 보고서는 법무부 주장대로 불법사찰일까, 아니면 검찰 반박대로 직무범위에 속하는 정상적인 업무집행일까.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여부, 행정소송의 승패는 사실 이 문제로 결판이 날 것이다. 불법사찰 여부는 사찰내용, 목적, 수집방법, 동의 여부, 지속성 등을 봐야 한다.

 

1.

먼저, 사찰내용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주요 정치적 사건의 판결내용, 우리법연구회 가입 여부, 가족관계, 세평, 개인취미, 물의 야기 법관 해당 여부 등이 담겨 있다고 한다. 가족관계, 취미도 대상자 입장에서는 썩 기분이 좋을 리 없지만 인터넷 검색이 가능하니 그렇다 치자. 정치적 사건의 판결내용 분석과 우리법연구회 가입 여부는 해당 판사의 정치적 성향을 탐색했다는 점과 인터넷에서 쉽게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아니란 점에서 가볍지 않다. 전화탐문으로 판사의 성향을 알아본 것 역시 정상적인 공판준비에서 멀리 벗어났다.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이 양승태 사법농단 수사 당시 검찰이 확보한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의 활용 여부다. 중앙지검 캐비닛에 있을 판사블랙리스트는 과연 대검과 공유되지 않았을까. 대검이 이 수사자료를 이용하여 보고서를 작성했다면 불법사찰은 그림자가 아닌 검은 실체이겠다. 이에 대해서는 대검이 적극 부인하는 상황이라 좀 더 지켜봐야 할 문제다. 대검감찰부의 압수수색은 수사정보담당관실 컴퓨터에서 이 리스트의 흔적을 찾고 싶어서일 것이다.

 

2.

사찰의 목적에 대해 대검은 공소유지 참고자료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제주지법의 장창국 부장판사는 “검사가 증거로 재판할 생각을 해야지 재판부 성향을 이용해 유죄 판결을 만들어내겠다니 그것은 ‘재판부를 조종하겠다, 재판부 머리 위에 있겠다’는 말과 같다”고 했다. 공소유지를 하는 데 왜 판사의 정치적 성향을 알아야 하는지,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가 재판에 왜 필요한지 나는 알지 못한다. 검찰이 정치관련 수사를 하면서 정치적으로 접근한 것에 대한 자백처럼 들린다.

 

3.

정보의 수집방법은 인터넷 검색이나 공판검사들에게 전화해서 탐문한 정도라고 했다. 전화탐문 수집은 기존 알려진 정보를 정리하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정보를 생산했다는 점에서 단순 인터넷 검색보다는 좀 더 심각하다. 그런데 책상에서 인터넷을 통한 검색은 문제가 없는 것일까. 인터넷에는 일반이 미처 알지 못하는 세세한 개인 정보가 무수히 널려 있고, 이러한 정보들을 종합한 보고서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4.

대검의 정보수집 및 관리는 해당 판사들로부터 전혀 동의를 받지 않은 채 극히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취미 같은 사소한 정보든, 우리법연구회 가입과 같은 주홍글씨든 자신에 대한 사적 정보가 검사의 법정 책상 위에 놓여 있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문제의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성상욱 검사는 "약점을 잡아 악용하려는 게 이른바 '사찰'이지 어떤 처분권자에 관한 유의사항을 피처분자 입장에서 정리한 게 사찰인가"라며 되물었다고 한다. 사찰은 처분권자만 하는 것도 아니고, 보고서가 단순히 ‘처분권에 관한 유의사항’만을 기재한 것이 아니라 해당 판사의 성향을 미리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대비하려는 것이었을 수도 있으며, 패소 시 언론플레이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면 성 검사의 항변은 구차스럽다.

 

5.

검찰의 판사들에 대한 성향보고서 작성 관행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었을까. 이제라도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공소유지를 위한 수집정보도 수사정보의 일환”이라거나 “야구경기에 나선 심판의 스트라이크존 판정 경향이 어떤지 알려준 정도”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검찰은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정보수집 활동, 아니 사찰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6.

국정원의 민간인사찰, 이명박 정권 시절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의 야당의원 사찰 논란, 판사 블랙리스트 사건들이 휩쓸고 지나갔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어딘가에는 음습한 사찰이 자행되고 있는지 모른다. 이번 사안은 불법성 여부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정보수집, 관리가 적절한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더 핵심일 수도 있다. 어쨌든 윤 총장이 집행정지신청을 했으니 여기서 정보의 수집, 관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용인 한도는 어디까지인지 판가름이 나겠다. 집행정지신청이 인용된다면 이런 정도의 사찰은 수인해야 한다는 시그널로 비춰질까 두렵다.

 

2020. 11. 26 오후 1:46 페이스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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